[조하나, 속삭이는 무용]검무 춤사위 시로 풀다

채준 기자 / 입력 : 2020.03.10 17:25
  • 글자크기조절
image


역사가 가장 오래된 춤이라 할 수 있는 검무.....

검무를 잘 표현한 한 편의 시가 있다. 1780년 다산 정약용이 기녀들이 칼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지은 시다. 천재 정약용은 17세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춤사위를 아름답게 표현했다.


검을 들고 추는 춤이라 하여 검무라 칭하게 되었는데 검은 왠지 남자들이 들고 전투력을 불사르는 춤을 출 것 같은 예측을 하게 한다. 다산 정약용 역시 칼을 들고 추는 검무라 해서 살벌할 줄 알았는데 높은 품격이 느껴지면서도 지극히 부드러운 춤에 감동했다. 그가 지필묵을 들어 써내려간 시 ‘무검편증미인,(舞劍篇贈美人)이다. ‘칼춤 시를 지어 미인에게 주다’라는 뜻을 가진 이 시속의 주인공이 추었던 춤은 진주에서 기녀들을 양성하던 기관 교방청(敎坊廳) 소속의 기생들이 춘 진주검무였다.

이 시를 보면, 검무를 추는 장면이 그림을 보듯 연상된다. 이 시는 모두 32구로 되어 있는데, 이를 다시 4줄씩 구분하면 여덟 개의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를 춤사위로 풀어보면 처음 풍악이 울리자 그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조용해지고, 전쟁과 승리를 상징하는 검무의 복식 차림을 한 무희의 모습을 영락없이 남자 같다고 표현하였다.


두 번째 장면으로는 머리에 쓴 전립과 쾌자를 입고 그 위에 가슴 띠로 고정시키는 전대를 갖춘 무희가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검무 춤을 시작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세 번째로는 앉아서 하는 춤사위를 추기 위해 가벼운 몸짓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선녀에 비유하였고, 검을 손에 들지 않은 상태의 맨손 움직임들을 표현한 모습이다.

네 번째 장면은 남색 한복 치마와 홍색 안감이 대어진 남색 전복 차림의 무희 모습을 푸른 뱀으로 묘사했는데 한 개의 칼을 들고 춤을 추는 동작으로 칼을 밖으로 뿌리고, 어깨에 끼우고, 돌리는 등의 춤사위가 마치 뱀이 사람의 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의 모습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두 개의 칼을 잡고 춤사위가 이루어질 때 무희보다는 빛이 나며 현란하게 움직이는 은색 칼에 시선이 집중되었고 일어서서추는 춤사위를 추기 위해 일어나는 장엄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장면은 일어선 춤사위로 양쪽 칼을 들고 이루어지는 여러 춤사위들을 묘사하였고, 마지막 두 개의 장면은 조선시대 기생들의 출중함과 그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심정을 묘사하였다.

image
신윤복의 검무도



우표사랑 캡쳐

(http://www.stamplove.co.kr/product/view.php?cate=&p_idx=2593&&cate=&keyword=%C7%D1%B1%B9%B9%CC%BC%FA5%C3%B5%B3%E2&page=1)


무검편증미인 舞劍篇贈美人

정약용

계루고 한 소리에 풍악이 시작되니 / 鷄婁一聲絲管起

넓디넓은 좌중이 가을 물처럼 고요한데 / 四筵空闊如秋水

진주성 성안 여인 꽃 같은 그 얼굴에 / 矗城女兒顔如花

군복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남자 모습 / 裝束戎裝作男子

보랏빛 괘자에다 청 전모 눌러쓰고 / 紫紗褂子靑氈帽

좌중 향해 절한 뒤에 발꿈치를 들고서 / 當筵納拜旋擧趾

박자 소리 맞추어 사뿐사뿐 종종걸음 / 纖纖細步應疏節

쓸쓸히 물러가다 반가운 듯 돌아오네 / 去如怊悵來如喜

나는 선녀처럼 살짝 내려앉으니 / 翩然下坐若飛仙

발밑에 번쩍번쩍 가을 연꽃 피어난다 / 脚底閃閃生秋蓮

몸 굽혀 거꾸로 서서 한참 동안 춤추는데 / 側身倒揷蹲蹲久

열 손가락 번득이니 뜬구름과 흡사하네 / 十指翻轉如浮雲

한 칼은 땅에 두고 한 칼로 휘두르니 / 一龍在地一龍躍

푸른 뱀이 백 번이나 가슴을 휘감는 듯 / 繞胸百回靑蛇纏

홀연히 쌍칼 잡자 사람 모습 사라지니 / 焂忽雙提人不見

삽시간에 구름 안개 허공에 피어났네 / 立時雲霧迷中天

전후좌우 휘둘러도 칼끝 서로 닿지 않고 / 左鋌右鋌無相觸

치고 찌르고 뛰고 굴러 소름이 쫙 끼치누나 / 擊刺跳躍紛駭矚

회오리바람 소나기가 차가운 산에 몰아치듯 / 颷風驟雨滿寒山

붉은 번개 푸른 서리 빈 골짝서 다투는 듯 / 紫電靑霜鬪空谷

놀란 기럭 높이 날아 안 돌아올 듯하다가 / 驚鴻遠飛疑不反

성난 새매 내리 덮쳐 쫓아가지 못할레라 / 怒鶻回搏愁莫逐

쟁그랑 칼 던지고 사뿐히 돌아서니 / 鏗然擲地颯然歸

호리호리한 허리는 처음 모습 그대로네 / 依舊腰支纖似束

서라벌의 여악은 우리나라 으뜸인데 / 斯羅女樂冠東土

황창무라 옛 곡조 예로부터 전해오네 / 黃昌舞譜傳自古

백 사람이 칼춤 배워 겨우 하나 성공할 뿐 / 百人學劍僅一成

살찐 몸매 가진 자는 흔히 둔해 못한다네 / 豐肌厚頰多鈍魯

너 이제 젊은 나이 그 기예 절묘하니 / 汝今靑年技絶妙

옛날 소위 여중호걸 오늘날에 보았는데 / 古稱女俠今乃覩

얼마나 많은 사람 너로 인해 애태웠나 / 幾人由汝枉斷腸

거센 바람 장막 안에 몰아친 걸 알 만하네 / 已道狂風吹幕府

검무는 신라 삼국통일시대부터 비롯되며 화랑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궁중무용으로 계승 발전되며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전통춤이다

황창랑 설화에 기인한 검무는 민간에서 가면무로 행해지던 것을 숙종 때부터 가면을 벗고 지방 교방 여기가 추게 되었으며, 조선 정조 때 궁중무용으로 채택하여 공연 형식과 내용이 예술성을 띠면서 궁중정재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 들어서면서 궁중검무의 형식이 지방 교방의 검무에 영향을 주어 각 지방의 교방청으로 되면서 궁중에서 춤을 추던 무희들이 낙향하여 지역별로 다양한 특색에 맞게 진주, 통영, 평양, 해주, 밀양, 함흥, 경기 검무 등으로 발전하게 되고 진주지역에서 전승되었던 춤으로 전통 검무의 특징과 원형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춤이 진주검무이다.

검무는 민간에서 궁중정재로, 궁중에서 지방으로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발전한 춤이라 할 수 있다.

image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