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감독 "'지푸라기' 짐승이 된 사람들과 포식자 이야기"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0.02.23 11:00 / 조회 : 4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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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용훈 감독/사진제공=메가박스 (주)플러스엠


잘나가던 대기업 직원이었다. 김용훈 감독은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기획 인턴으로 CJ ENM에서 일을 시작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덕분인지, 정식으로 입사해 기획과 투자쪽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키웠다.


그랬던 안정적인 직장을 돌연 그만뒀다. 영화감독을 하기 위해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히치콕과의 대화'를 읽고 꿨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19일 개봉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김용훈 감독의 첫 단추다. 그의 단추가 마지막까지 잘 채워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새로운 감독을 세상에 알린 영화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합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꿈을 위해 그만둔다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닌데. 가정도 있는데.

▶아내와 처음부터 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35살을 기점으로 영화감독에 도전할 테니 2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내가 신뢰해준 덕이다.

-데뷔작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선보이게 됐는데. 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선택했나.


▶회사를 막 그만두고 난 뒤에는 조급한 마음에 시나리오를 썼다. 나름대로 기획,투자팀에 있으면서 이런 영화들이 투자가 되더라 싶은 것들을 담은 시나리오를 썼다. 상업성이 듬뿍 담겼다고 느끼기 마련인. 그런데 어느 분이 "그런 영화들은 네가 굳이 아니어도 된다. 네 색깔이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큰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았다.

그러던 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만났다. 원작 제목에 꽂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원작을 어떻게 각색하느냐가 관건이었을텐데.

▶돈가방을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돈가방으로 끝내고 싶었다. 원작도 그렇지만 선형과 비선형 구조를 어떻게 맞춰 나가느냐가 관건이었다. 핵심은 등장인물들이 짐승이 되어가는 과정을 중반까지 보여주고, 그 이후에는 이들이 짐승이 됐을 때 또 다른 포식자가 나타나는 걸 보여주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었다.

-등장인물이 많은 건 자칫 캐릭터를 얇게 만들 수도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런 위험에서 잘 벗어났는데.

▶각 캐릭터들의 전사를 보여줄 수도 없으니 고민이 많았다. 우선 미술감독님과 협의해서 공간으로 그 캐릭터를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다. 예컨대 미란(신현빈)의 집은 낡은 아파트인데 소파는 새 것이다. 아직 비닐을 뜯지도 않은 가구도 있다. 이들이 신혼인데 갑작스럽게 그렇게 돼버린 듯한 상황을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태영(정우성)의 원룸도 마찬가지다. 방 바로 맞은 편에서 네온사인이 비친다. 화려한 뭔가를 갈망하지만 자신이 사는 곳은 쓰레기가 가득한 원룸이다. 그런 식으로 연출적으로 준비를 하고, 배우들이 각 캐릭터들을 훌륭히 창조해줬다.

-태영을 맡은 정우성과는 어땠나. 정우성의 기존 이미지와 태영은 사뭇 다른데.

▶정우성은 내가 처음에 생각한 태영과는 거리가 있었다. 난 태영을 어딘가 비어 보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은 자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허술한 부분이 많은. 그런데 정우성을 알면 알수록 그런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관객이 보지 못한 정우성의 그런 모습을 담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난 태영이란 인물은 믿음이라는 테마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속았는데도 계속 믿고 싶은. 행운을 준다고 믿는 럭키 스트라이크도 그렇고, 연희(전도연)에 대한 것도 그렇고.

-전도연이 맡은 연희는 그간 한국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캐릭터인데.

▶전도연과 영화 전반을 놓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전도연을 만났을 때 그녀의 첫 마디가 "단 한 신도 제 분량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였다. 정말 감사했다. 이 영화는 앙상블이고, 합주고,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했다. 전도연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앙상블이 두드러져야 하기에 혼자만 튀거나 과잉 돼도 안된다. 그런데 전도연은 "힘주지 않을 거에요"라고 하더라. 이 영화의 목표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배우다.

대신 전도연은 각 신마다 다채로워야 했기에 각 신미다 헤어와 의상에 변화를 줬다. 모든 신에서 의상을 갈아입었다. 시나리오 이상을 표현해낸 건, 전적으로 전도연의 공이다.

-영화가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승전기결 구조인데. 이 구조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자칫 쫓아가다가 헷갈릴 수 있는 위험도 있는데. 원래 시나리오는 지금처럼 막 구조가 아니었는데.

▶원작도 이런 구조이긴 했다. 난 각 단락이 각 인물들에게는 '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이야기에선 '기'라고. 흔치 않은 서술트릭이고 이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10개월 가량 편집을 했다. 이 버전이 시나리오와 가장 같고 가장 지키고 싶었던 버전이다. 내러티브 순서대로 있는 버전도 있었는데 그건 제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막 구조는 시나리오 단계에선 없었다. 막 구조는 장단점이 너무 뚜렷하다. 막 구조는 관객이 쉽게 따라올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반면 막 구조가 아니었다면 모든 퍼즐이 맞춰졌을 때 더 임팩트하고 더 시네마틱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든다. 편집 마지막 즈음에 막 구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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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용훈 감독/사진제공=메가박스 (주)플러스엠


-영화가 중반부부터 달려가기 시작하는데, 전반부에서 보여지는 어떤 묘사들이 자칫 불편함을 자아낼 수도 있는데. 그래서 미란과 관련한 어떤 장면들은 편집되기도 했다던데.

▶전반부와 후반부의 접점이 폭력의 피해자가 극한 상황까지 몰렸다가 가해자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게 영화에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극한 상황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불편한 지점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앞선 상황을 통해서 관객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기도 하고. 또 그런 장면들이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야 하는데 계속 피해자로 보이게 하는 것 같아 편집을 했다. 힘들게 찍은 배우에게 미안한 부분이기도 하다.

-진태(정가람)는 중국교포인데 흔히 한국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았다. 그 캐릭터의 전사일 뿐이다. 이 영화는 다른 범죄자들도 그렇고 선입견을 남용하지 않았는데.

▶진태 같은 경우 한국사회에 빨리 적응하려는 중국 동포 모습을 떠올렸다. 그간 영화 속에서 접한 중국 동포 이미지를 활용하고 싶진 않았다. 진태는 반지하방 벽에 보면 지코 포스터가 있다.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연예인을 동경하는 청년이다. 그렇기에 연변 사투리도 진하게 쓰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현실적이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 맥거핀으로 혼란을 주는 요소들도 있는데.

▶처음부터 태영이 기다리는 친구인 동팔은 맥거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도 안 보여준다. 미란 남편 대신 실종된 사람도 전단지로만 나오길 바랐고. 이것들이 이 영화에 크게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도 그렇게 됐어야만 하는 당위성만 줬다.

-영화가 블랙코미디와 스릴러, 드라마를 오가고 그게 잘 교차되는데.

▶캐릭터 라인들마다 다른 장르라고 생각했다. 태영의 라인은 블랙코미디, 미란 라인은 스릴러, 중만(배성우) 라인은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 장들이 섞이고 연희가 그 장르를 넘나들도록 계획했다.

-형사로 등장하는 윤제문의 퇴장은 연희가 말한 이유 때문인지, 아닌지, 영화에서 불분명한데.

▶원래는 전도연의 허벅지를 더듬는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했다. 그래야 연희가 그 이유를 말했을 때, 미스터리한 느낌을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관객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엔딩도 돈가방이길 바랐다고 했는데. 해피엔딩인 것인가.

▶수미쌍관 구조이긴 하지만 해피엔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극한에 몰렸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관객이 응원하는 마음이 드는 캐릭터가 돈가방을 갖고 가길 바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해피엔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돈가방을 들고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원래는 집으로 가는 엔딩이 있었지만 편집했다. 그 돈가방을 행운이라고 생각할지, 재앙이라고 생각할지, 관객이 판단하길 바랐다.

-왜 상어인 샌드타이거 문신을 선택했나.

▶원작은 호랑이 문신이었다. 그런데 어미 뱃속부터 잡아먹고 잡아먹히다가 한 마리가 태어나는 샌드타이거 이야기가 재밌더라. 그래서 그 이야기를 연희 입을 통해 하고, 그 문신을 새겼다.

-영화 톤 전체를 마치 밤바다 같은 다크 블루로 했다. 그러면서 각 인물마다 색도 다르게 설정했고.

▶인물마다 라이팅을 다르게 했다. 연희는 화이트, 태영은 블루, 중만은 우드와 태양광. 진태는 보라 등등. 이 인물들이 섞일 때 그 색들이 어떻게 융화되는지를 그리려 라이팅 디자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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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용훈 감독/사진제공=메가박스 (주)플러스엠


-각 인물들의 퇴장이 몇몇을 빼고 느닷없는데.

▶죽음을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이 영화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인물들이기에 그냥 개죽임이야.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런 동정도 들지 않도록. 쓰레기차에 치어 죽는 것처럼. 설마 저 배우를 저렇게 죽여, 그 뒤로는 보여주지도 않아?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었다.

-전도연의 퇴장을 담은 화장실 장면이 인상 깊은데.

▶화장실은 일상적인 공간이다. 그 뻔한 공간을 어떻게 뻔하지 않게 보여줄까를 고민했다. 중국 동포가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고. 원샷으로 찍은 것도 그런 이유다.

-음악 설계는 어떻게 했나.

▶중만은 클라리넷 같은 관악기로, 태영은, 기타, 미란은 현악기, 연희는 왈츠 느낌에 믹스된 음악으로 설계했다. 각 인물마다 다른 음악으로 캐릭터 설명에 도움을 주길 바랐다.

-중만의 어머니로 나온 윤여정은 좀 더 많은 장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던데.

▶배성우가 윤여정의 어떤 행동 때문에 주저앉는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했다. 흐름과 맞지 않은 것 같았다. 그만큼 윤여정 선생님의 연기가 너무 좋았기에 더 보고 싶단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윤여정 선생님의 엔딩은 테이크를 두 번 갔다. 첫 테이크는 윤여정 선생님이 하고 싶은 대로 했고, 두 번째는 내가 좀 더 담담하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그렇게 했다. 결국 첫 번째 테이크를 영화에 썼다. 가만히 보면 그 장면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희미하게 웃는다. 치매인지, 아닌지 모를 얼굴이다. 너무 좋았다.

-CJ ENM에서 투자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시나리오를 봤을텐데. 그렇기에 자기 시나리오를 쓸 때는 자기검열 같은 게 있었을 법도 한데.

▶처음에는 자기검열이 분명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벗어나게 되더라. 투자, 기획 일을 하면서 만났던 시나리오와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은 전혀 다르더라. 옆에서 많은 훌륭한 감독님들을 보면서 그분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본 것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예컨대 황동혁 감독님은 본인이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킨다. 그 뚝심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그런 것들을 배웠다.

-차기작은.

▶서스펜스와 유머가 담긴 작품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운 시도를 한 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걸 하고 싶다가도 그 매력을 알았기에 또 해보면 어떨까란 욕심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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