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나, 속삭이는 무용] 발레를 추는‘태양왕’

채준 기자 / 입력 : 2020.02.11 17:58 / 조회 :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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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을 신축하고 왕립 무용 아카데미를 설립한이는 ‘태양왕’ 루이 14세다.

내가 루이 14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1년 개봉된 영화,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의 ‘왕의 춤’을 본 이후부터였다.

실존했던 인물이자 영화 속 인물의 왕실 극단 연출자 '몰리에르' 와 왕실 악단 지휘자 '륄리'가 만든 음악과 연극을 통해 루이는 절대 권력의 태양왕의 자리에 오른다.

이 영화에서 루이 14세가 금빛의 분장과 의상 그리고 금색의 신발을 신고 강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장면이 있다.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왕이 추는 춤이 바로 권력과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어쩌다 왕이 춤을 추다 중심이라도 흔들리게 되면 왕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귀족들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휘청 되는 나라꼴이라니”라는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만큼 춤을 왕 자체로 여겼던 시대였다.

17세기 프랑스가 영화의 배경이었던 이 시기에는 프랑스는 상위의 나라 이태리는 하위의 나라로 취급되었던 때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군림하던 시절은 프랑스 궁정은 유럽에서 가장 사치스러웠다. 루이 14세는 이태리 출신의 작곡가 장 밥티스트 륄리의 음악에 매료되어 자신을 위해 작곡하게 하고 자신의 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에 열정을 쏟는다. 그렇다면 발레가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어린 시절부터 열정적으로 춤추기에 몰두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태양왕은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 왕비 사이에서 혼인 후 23년만에 태어난 왕자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신의 선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겨우 여섯 살의 나이에 루이 13세가 세상을 떠나 루이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프랑스 왕이 되었다.

모후 안 도트리슈가 국왕을 대리해서 국가의 통치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섭정직을 맡았으나 사실 모든 국정은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재상 ‘쥘 마자랭’이 실질적인 권력을 움켜쥐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루이에게 주어진 건 춤과 음악뿐이다. 물론 어려서부터 라틴어, 역사, 수학, 이탈리아어 등 왕이 되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받아왔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고 소질을 보였던 분야는 예술 분야였다. 무엇보다도 발레에 큰 관심을 보였고 특히 일곱 살부터 발레를 배우면서 20년 동안 매일 두 시간씩 춤 연습을 했다고 한다. 15세의 나이에 ‘밤의 발레’라는 작품에서 빛과 태양신 아폴로 역할로 직접 출연하면서 '태양왕'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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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pixabay


이십여 년간 나라를 쥐고 흔든 마자랭이 1661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 22살의 루이 14세는 드디어 직접 나라를 다스리며 본격적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때로는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20년간 재상 마자랭의 권력 집권 영향으로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을 뼈저리게 겪었던 루이 14세는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행위에 나섰다.

고등법원의 권한을 축소하고 왕족과 대귀족의 정치 참여를 제한했으며, 지방에 지사를 파견하여 중앙집권을 강화했다.

또 십수 년 동안 여흥을 즐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그는 권력을 잡은 후에도 호사스러운 취미 생활이 계속되었으며 실권을 쥐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파리 근교 베르사유에 거대한 궁전을 신축하고, 왕립 무용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현재의 국립음악무용 아카데미인 ‘파리오페라극장’의 전신이다.

그는 정사를 보는 틈틈이 연극과 음악, 발레를 즐겼는데 궁정이나 광장에서 열리는 발레 무대에 직접 출연하여 아폴로나 마르스 신으로 분장한 모습으로 수준 높은 춤 솜씨를 선보여 수많은 관중을 사로잡기도 했다.

루이 14세는 본인이 좋아하는 발레를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였는데 춤을 춘다는 것은 자신의 팔다리와 신체를 이용해 최고의 은총과 조화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라 여겼다. 귀족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본인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왕은 혼자 빛이 나야 한다며 자신에게 떨어져서 춤을 추게 하는 등 무대에 서면서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궁정 발레는 100년 이상이나 왕의 측근들이 가장 즐기는 활동이었고 각종 의상, 장식, 기계장치가 총동원된 대규모의 화려한 예술이었다.

1682년 태양왕으로서의 자신을 빛내 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인 베르사유 궁이 완성되어 국민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갖기 위하여 루브르 궁전에서 베르사유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서 루이 14세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를 궁정으로 자주 초청했고 태양왕으로 만들기 위한 온갖 사업들을 위한 큰 비용을 들이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원래 궁정 발레를 왕의 발레로 변형시켜 루이 14세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졌다.

태양왕은 무대 위에서 직접 발레를 추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갔고, 이러한 발레는 오늘날 미디어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없이는 명분과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 미디어의 위력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루이 14세는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잘 이해하여 발레를 적합하게 활용한 이미지 전략으로 성공을 구가하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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