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잠든 연봉조정... '승률 5%' 선수는 이길 수 없을까 [★취재석]

한동훈 기자 / 입력 : 2020.02.1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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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욱. /사진=삼성 라이온즈
KBO 야구규약 제 9장 연봉의 제 75조 '조정신청'은 9년째 잠들어 있는 조항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매년 활발하게 선수와 구단이 조정위원회를 통해 연봉 타협에 나서지만 KBO리그엔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다. '해봤자 손해'라는 인식 탓에 선수가 신청조차 하지 않는다. 최근 삼성과 재계약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구자욱(27) 측도 연봉조정신청은 고려하지 않았다.


◇ 타격 7관왕 이대호도 7000만원 차 패배

마지막 조정 사례는 2011년 롯데 자이언츠와 이대호(38)다. 그는 2010년 타격 7관왕에 등극했다. 타격 부문 8개 항목 중 도루를 제외한 타율, 홈런, 타점, 안타, 득점, 장타율, 출루율을 휩쓸었다. 시즌을 마치고 2011년 연봉 계약 때 구단과 의견이 엇갈렸다. 이대호는 7억원을 원했고 롯데는 6억 3000만원을 제시했다.

이대호의 2010년 연봉은 3억 9000만원이었다. 이대호가 바란 7억원은 당시 기준으로 비FA 최고액이었다. 2011년까지 연봉 7억원 이상 받은 선수들은 정민태(2004년 7억 4000만원), 심정수(2006년 7억 5000만원), 양준혁(2008년 7억원), 김동주(2008년 7억원) 손민한(2009년 7억원) 등이었는데 모두 FA였다.


롯데의 제시액은 선수 측과 7000만원 차이가 났으나 나름 명분은 있었다. 2억 4000만원을 올려주기로 했는데 이 또한 FA를 제외하면 역대 최대 인상 폭이었다. 조정 신청 결과 구단이 승리했다. 이대호는 2011년 6억 3000만원을 받고 뛴 뒤 FA 자격을 얻어 일본으로 진출했다.

재계약 합의가 어려우면 구단과 선수 모두가 연봉 조정 신청이 가능하다. 1월 10일까지다. 선수의 경우 4년차부터 자격이 주어진다. 조정 신청이 접수되면 그 때 '조정위원회'가 구성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전문위원회 8개를 두고 있는데 조정위원회는 신청이 발생한 경우에만 만들어진다. KBO 총재가 선임하며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한다. 이대호 사례 때에는 KBO 사무총장을 비롯해 최원현 변호사,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박노준 해설위원, 김종 야구발전연구원 원장 등이 참가했다.

선수와 구단은 신청 마감일부터 5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한 쪽만 자료를 제출하면 그쪽이 원하는 연봉으로 결정된다. 양 측 모두 자료를 내지 않았다면 합의된 것으로 간주하고 위원회는 열리지 않는다. 2012년 LG와 이대형이 그랬다. 선수가 조정에 불복하면 임의탈퇴가 되고 구단이 거부하면 선수는 자유계약선수로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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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사진=뉴스1
◇ 같은 구단 내 선수와 비교하면 '승산'

역대 KBO리그에서 선수 연봉이 조정위원회를 통해 결정된 사례는 총 20회 있었다. 그 중 선수가 승리한 것은 2002년 유지현(당시 LG 트윈스) 단 한 번뿐이다. LG는 1억9000만원을 제시했으나 조정위는 2억2000만원을 요구한 유지현의 손을 들어줬다.

선수의 승리 확률은 단 5%인 셈. 그렇다면 연봉조정신청에서 선수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7관왕' 이대호도 무릎 꿇게 한 2011년 조정위원회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약간의 참고사항을 얻을 수 있다.

선수가 유의해야 할 점은 '타 구단과 비교'다. KBO 관계자는 "구단마다 고과 산정 체계가 다르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구단에서 비슷한 성적을 낸 선수와 비교는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11년 회의록에도 타 구단과 비교 자료는 근거로 삼지 않기로 했다고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즉, 같은 기준으로 평가한 팀 내 다른 선수와 비교를 해서 자신의 연봉을 주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KBO에 따르면 2011년 연봉 조정 위원회는 이대호 대신 구단 손을 들어준 근거로 "이대호가 7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대호의 고과 평점에 따른 활약도와 구단 내 타 선수와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에는 구단 제시액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명시했다.

결국 선수 측에서 자료 준비만 잘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다. 투수라면 팀 내 비슷한 보직의 다른 투수와, 야수라면 팀 내 같은 포지션의 다른 야수와 비교, 분석하면 된다.

올 해는 이미 기한이 지나기는 했으나, 앞으로 선수나 에이전트가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KBO 관계자는 "이제 시대가 많이 변했다. 무조건 구단이 유리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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