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했기에, 인간적이었기에, 더욱 그리울 '코비' [댄 김의 NBA 산책]

댄 김 재미저널리스트 / 입력 : 2020.01.28 17:08 / 조회 : 5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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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의 추모 공간. /AFPBBNews=뉴스1
코비 브라이언트가 홀연히 떠나갔다. 향년 42세. 너무나 젊은 나이에, 너무도 갑자기 떠났기에 더욱 충격이 크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세 딸을 남기고 둘째 딸과 함께 세상을 뜬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를 추모하는 팬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뒤에 남겨진 가족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슬픔과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흔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로 불리는 코비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최고의 선수인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inspiration)을 안겨준 ‘영웅’이었다.

코비는 선수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었지만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재능의 크기와 관계없이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집중하며 혼신의 열정을 쏟아 넣었던 강인한 정신력에서 나왔다.

코비의 이런 자세는 농구 선수가 아닌 삶의 다른 분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고 그것이 팬들은 물론 동료들에게도 엄청난 영감의 근원이 됐다. 그의 사망 소식에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많은 팬들이 마치 자신의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그가 20년간 몸담으며 말 그대로 구단의 전설이 된 LA 레이커스가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레이커스는 26일(한국시간) 필라델피아 76ers와 원정경기를 마친 뒤 27일 LA로 돌아오는 도중에 비행기 안에서 코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팀 전체가 말 그대로 완전한 ‘멘붕’ 상태에 빠졌다.

날벼락 같은 뉴스에 충격에 빠진 선수단은 28일 팀 훈련을 취소한 데 이어 29일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던 LA 클리퍼스와 홈경기도 클리퍼스측에 양해를 구하고 NBA 사무국의 허가를 받아 취소시켰다.

NBA는 “레이커스의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의 딸 지안나, 그리고 또 다른 7명의 사망으로 엄청난 충격에 빠진 레이커스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경기 취소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레이커스 선수들은 물론 구단 직원들 전체가 너무도 큰 충격에 빠져 도저히 경기를 치르기가 힘들어 내려진 결정이라고 한다.

NBA가 날씨나 기술적인 문제 외의 이유로 경기를 취소시킨 것은 지난 2013년 4월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 사건 직후 보스턴 셀틱스의 경기 이후 약 7년 만이다. 레이커스는 또 충격에 빠진 구단 임직원들을 위로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전문 정신치료 상담원들을 초빙해 1대1 개별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레이커스의 직원들에게 사실상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과 맞먹는 엄청난 충격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당시 샬롯 호네츠와 트레이드를 통해 만 17세였던 코비를 레이커스로 데려온 뒤 그를 한동안 자기 집에 데려와 사실상 아들처럼 대한 전 레이커스 단장이자 NBA 전설 제리 웨스트 역시 “내 인생 최악의 날 중 하나다. 아들을 잃은 것 같다”면서 “다음 며칠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한 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코비가 죽기 하루 전날 그를 넘어 NBA 통산 득점 랭킹 3위로 올라선 르브론 제임스(레이커스)도 코비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르브론은 코비가 세상을 떠난 뒤 하루가 지난 2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올린 첫 공식 반응에서 “일요일 아침에 필라델피아에서 LA로 날아오기 전에 형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뭐라고 (애도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형과 조카 지지(지안나)를 생각할 때마다 울음이 터져 나와 계속 쓸 수가 없었다”고 애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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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와 그의 등번호 24번을 새겨넣은 농구공. /AFPBBNews=뉴스1
물론 코비 역시 결코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역시 사람이었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약점과 결점이 있었으며 큰 잘못도 저질렀다. 지난 2003년에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결과적으론 형사법상 기소를 면했고 민사소송에서 피해자와 합의해 사건은 종결됐지만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이름에 결코 씻어낼 수 없는 큰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코비는 이 부끄러운 사건을 통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인간으로서 도리를 배웠고 이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 사건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코비는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빠, 그리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선한 사람이라고 세상으로부터 확실하게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의 마지막 길이 된 27일 헬리콥터 여행도 둘째 딸 지안나(13)의 농구 경기를 위해 떠난 것이었다. 네 딸의 아빠인 코비는 그 누구보다도 바쁜 삶을 살았지만 그 와중에도 딸들의 일이라면 만사 제쳐 놓고 나서는 전형적인 ‘딸 바보’였다.

특히 아빠를 닮아 농구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둘째 지안나를 위해서는 직접 딸을 데리고 다니며 팀의 코치까지 맞아 지도하는 등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장차 WNBA(미국여자프로농구) 선수를 꿈꿨던 지안나를 데리고 여러 WNBA 경기장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서 뛴 한국인 선수 박지수와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코비는 그 어떤 NBA 스타들보다도 열정적으로 WNBA 지원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는 바로 지난 주 CNN과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NBA에서 뛸 수 있는 WNBA 스타선수가 2명은 된다. 정말이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다이아나 투라시, 마야 무어, 엘레나 델리 돈나 등은 (NBA에서 뛸 만한) 기술을 갖고 있다”면서 “충분히 NBA 선수들과 겨룰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NBA와 비교해 인기도는 물론 선수들의 대우에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열악한 WNBA 입장에선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였던 코비의 갑작스런 죽음이 더욱 더 아쉽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코비의 죽음은 NBA는 물론 스포츠계 전체에 엄청난 구멍을 남겼다. 농구선수 코비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가 NBA는 물론 스포츠 전체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선수 중 하나였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미 NBA 로고에 담긴 선수의 모델을 현재의 ‘제리 웨스트’에서 ‘코비 브라이언트’로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이룰 것들이 그가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오히려 더 많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있다(인명재천·人命在天)'는 말이 정말 실감 나게 느껴진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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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숨진 코비(아래)와 그의 딸 지안나의 생전 모습.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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