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잭슨, 데뷔 2년 만에 쿼터백 역사를 바꾸다 [댄 김의 NFL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12.20 15:50 / 조회 : 6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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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잭슨. /AFPBBNews=뉴스1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프로 2년차 쿼터백 라마 잭슨(22)이 미국프로풋볼(NFL) 쿼터백으로 역대 최고급 시즌을 써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때 너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쿼터백보다는 와이드 리시버가 더 적합한 포지션이라고 했던 선수가 데뷔 2년 만에 NFL 쿼터백의 ‘스탠다드’를 바꿔가고 있다.


잭슨은 지난 주 시즌 15라운드 경기에서 뉴욕 제츠를 상대로 5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팀의 42-21 압승을 이끈 뒤 19일(한국시간) AFC '이주의 공격수‘로 선정됐다. 잭슨이 이주의 공격수로 뽑힌 것은 이번 시즌 들어 벌써 5번째로 이는 NFL 역대 최다기록과 타이를 이룬 것이다. 지난 2007년 톰 브래디(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2015년 캠 뉴턴(캐롤라이나 팬서스)가 모두 5번씩 '이주의 공격수’로 뽑힌 바 있는데 그 기록을 매치했다. 이제 정규시즌 남은 두 라운드에서 한 번이라도 이 상을 추가한다면 NFL 기록을 홀로 보유하게 된다.

이주의 공격수는 NFL에서 양대 콘퍼런스별로 그 라운드 모든 경기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같은 선수가 한 시즌에 두 번 받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무려 5번을 받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역사적이고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경우에만 가능하다.

NFL 역사상 첫 5회 수상자인 브래디의 경우 소속팀 뉴잉글랜드가 2007년 정규시즌을 16전 전승으로 마쳤고 두 번째 5회 수상자인 뉴턴의 소속팀 캐롤라이나는 2015년 15승1패를 기록했다. 볼티모어는 현재까지 12승2패를 기록하고 있다. 브래디와 뉴턴은 모두 그 해 리그 MVP로 뽑혔고 잭슨은 사실상 MVP 수상을 예약해 놓은 상황이다. 왜 이들이 5번씩이나 ‘이주의 선수’로 뽑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잭슨은 브래디와 뉴턴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는 것은 MVP 수상까지만이기를 원하고 있다. 브래디와 뉴턴은 각각 그 시즌 슈퍼보울에 진출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셔 준우승에 그쳤기 때문이다. 브래디의 뉴잉글랜드는 슈퍼보울 XLII(42)에서 뉴욕 자이언츠에 14-17로 패해 역사상 두 번째 전승우승 일보 직전에 좌절했고 뉴턴의 캐롤라이나는 슈퍼보울 50에서 덴버 브롱코스에 10-24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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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브래디(가운데). /AFPBBNews=뉴스1
키 188cm, 몸무게 96kg의 다부진 체격을 지닌 잭슨은 천부적인 러싱 능력은 물론이고, 단 2년차 만에 패싱 능력에서도 리그 톱클래스임을 입증하며 랜들 커닝햄, 스티브 영, 마이클 빅, 뉴턴으로 대표되는 ‘이중 위협(dual-threat)' 쿼터백의 계보를 잇는 차세대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중 위협’ 쿼터백이란 뛰어난 패싱 능력과 출중한 러싱 능력을 동시에 보유한 쿼터백을 일컫는 말로 상대 디펜스 입장에서는 오펜스의 실수가 없는 한 사실상 효과적인 방어가 거의 불가능하다. 뛰어난 이중 위협 쿼터백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디펜스 포메이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잭슨은 이번 시즌 14경기에서 러싱으로 1103야드를 달려 빅이 2006년 시즌에 세운 1039야드의 쿼터백 한 시즌 최다러싱 기록을 깨뜨렸다. NFL 역사상 최고의 이중 위협 쿼터백으로 꼽히는 빅은 이번 시즌 전까지 한 시즌에 1000야드 러싱을 넘어선 유일무이한 쿼터백이었는데 잭슨은 자신의 두 번째 시즌 만에 빅의 역사적인 기록을 두 경기나 남겨놓고 돌파했다. 역대 가장 빠른 스피드의 쿼터백으로 명성을 날린 빅이 13시즌 동안 뛰면서 세운 최다 러싱기록을 잭슨을 단 두 시즌 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이미 EA스포츠의 비디오게임 매든 NFL은 지난달 새로운 업데이트를 통해 잭슨의 러싱 스피드를 빅의 기록을 넘어선 쿼터백 사상 역대 최고로 세팅했다.

현재 그의 러싱기록 1103야드는 NFL 전체에서 쟁쟁한 러닝백들을 제치고 러싱랭킹 8위에 올라 있다. 러닝백이 아닌 선수로 잭슨에 이은 러싱랭킹 2위는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한국계 쿼터백 카일러 머리로 지금까지 504야드를 기록, 잭슨의 절반 이하다. 한 시즌에 패싱으로 2500야드, 러싱으로 1000야드를 넘긴 쿼터백은 잭슨이 NFL 사상 유일무이하다.

물론 잭슨의 패싱 2889야드는 리그 19위로 하위권이다. 하지만 이는 패스 시도 자체가 다른 쿼터백들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고 패스의 효율성에선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잭슨의 패스 시도 수는 리그 전체에서 25위에 불과하지만 그의 터치다운 패스 33개는 2위인 제이미슨 윈스턴(탬파베이·30개)보다 3개나 많은 리그 전체 1위다. 잭슨은 올 시즌 러싱으로 7개의 터치다운을 추가해 총 40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고 있는데 남은 두 경기에서 터치다운 패스 1개만 추가하면 볼티모어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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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잭슨. /AFPBBNews=뉴스1
현재 그는 터치다운 패스와 쿼터백 레이팅(81.3)에서 모두 NFL 전체 1위이며 패싱 능력만 측정하는 패서 레이팅에선 112.8로 리그 3위에 올라 있다. 단순히 러싱 능력만 걸출한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쿼터백임을 입증하고 있다. 톱 쿼터백의 대명사인 브래디와의 비교에서도 그는 패싱야드에서만 뒤질 뿐 다른 모든 분야에서 브래디를 압도하고 있다. 그는 또 볼티모어 쿼터백으로는 처음으로 프로보울 출전선수로 선발됐고 볼티모어는 잭슨을 포함, 무려 12명이 프로보울에 뽑혀 한 팀 최다 선발 신기록을 세웠다.

잭슨의 터치다운 패스 33개는 과거 위대한 쿼터백들의 기록(페이튼 매닝-2013년 55개, 패트릭 마홈스-2018년 50개)과 비교하면 다소 처지지만 그의 러싱 능력을 보탠 패싱+러싱 합계에선 역대 최고 쿼터백 시즌 대열에 올라 있다는 찬사가 나오고 있다. 믿기 어려운 러싱 능력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그는 이번 시즌에 3경기에서 5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던졌는데 이는 NFL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NFL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는 잭슨은 이번 프로보울 투표에서도 70만표 이상을 받아 2위보다 10만표 이상 앞서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ESPN은 그가 전설적인 러닝백 배리 샌더스처럼 뛰고 전설적인 쿼터백 브래디처럼 터치다운 패스를 던지고 있다며 ‘퍼펙트 무기’라고 찬사를 보냈고 명예의 전당 멤버인 전 리그 MVP 수상 쿼터백 출신 해설자인 커트 워너는 “이런 활약이 이어진다면 잭슨은 NFL 역사상 최고 시즌을 보낸 쿼터백 대열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찬사는 풋볼 관계자에게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설적인 배우 알 파치노도 “잭슨의 뛰어남과 진지한 자세는 배우들에게도 영감이 되고 있다”고 격찬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쏟아지는 극찬 퍼레이드에도 잭슨은 자신을 자랑하고 부각시키는 요즘 상당수 젊은 스포츠 스타들과 달리 매우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잭슨의 역사적인 시즌에 힘입은 볼티모어는 현재 리그 최고 성적으로 슈퍼보울 우승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브래디와 뉴턴의 역사적인 시즌도 슈퍼보울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던 만큼 잭슨의 도전은 과연 어떤 결실을 만들어낼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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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잭슨.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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