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유미 "나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이게 내 속도다"

2019 영화 결산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2.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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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올해의 영화인 정유미 인터뷰/사진제공=숲엔터테인먼트


다사다난했던 2019년을 마무리하며 스타뉴스가 올 한 해 영화계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첫주자 봉준호 감독과 '극한직업' 류승룡에 이어 '82년생 김지영' 정유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은 2019년 가장 뜨거웠던 영화 중 하나였다.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만으로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제작을 막아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출연을 결심한 배우들에겐 악플이 쏟아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이 현상의 중심에 정유미가 있었다.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을 공감시켰다. 또래의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 적대심을 품은 관객마저 뒤흔들었다. 배우의 힘이다.

2004년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데뷔하고 정유미가 단숨에 스타가 된 건 아니었다. 채이기도 하고, 밀리기도 했다. 상관 없어 했지만, 쉬운 길은 결코 아니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유미는 한때 일을 그만두려고도 했다. 정유미는 그 시간들을 "나의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이게 내 속도인 것 같다"고 했다.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하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는 내가 주연을 해도 관객들이 받아 들여주지 않으실까"라고 했다. 그 말의 행간에는 자신의 속도를 확인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결기가 담겨있다. 2019년 올해의 여배우로 정유미를 만났다.


-'82년생 김지영'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저한테 일어나는 큰 변화는 없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꼈던 감정 그대로 영화에 나와줬고, (이슈를 꺼리지 않고) 봐주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할 뿐이다. 덤덤 보다는 차분하다.

이런 건 있었다. 무대 인사를 할 때 원래 무척 긴장한다. 인터뷰도 마찬가지지만 어렵고 잘 못한다. 예전에는 무대 인사를 할 때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번 꼬이면 버벅거리기도 했고.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은 관객분들이 너무 좋은 기운을 주셔서 그 기운을 받은 대로 다시 돌려드리니깐 너무 좋았다. 진심을 주시고, 따뜻하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연령대도 다양했고, 성별도 다양한 분들이 뭉클하게 봐주시니깐, 뭉클뭉클 하더라.

-크레딧에 1번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번이란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에 1번으로 이름을 드디어 올리게 됐는데.

▶이제 한 번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웃음) 우선 1번이 나한테 떳떳해야 했다. 스스로 1번을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설득이 되냐, 안되냐가 먼저였다. 내가 떳떳해야 관객이 받아 들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내가 떳떳하고, 관객들도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나는 느려, 다른 배우들에 비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내 속도였던 것 같다. 그래, 나는 느려, 느리게 가자고 마음 먹었다. 이게 내 속도니깐. 그런 내 속도를 인정할 즈음에 '82년생 김지영'이 찾아와줬다.

-'82년생 김지영'을 놓고 공유가 남편이란 게 판타지가 아니냐는 말들이 있었다. 정유미가 김지영인 건 판타지가 아닌가 싶으면서도 어느덧 정유미는 현실로 관객을 납득 시키는 배우가 된 것 같았다. 사실 예전에 정유미 이미지는 강하거나 여리거나 그런 것들이었는데.

▶강해 보인다고 했을 때도 있었고 여리여리하다고 했던 때도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청순가련한 역할을 많이 했다. 실제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랑니'로 상업영화에 데뷔하고 '가족의 탄생'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더라. 왜 그럴까, 진짜 잘 모르겠더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애 있잖아. 왜 좋은데 사귀고 싶지는 않은" 그게 내 역할 속 이미지로 보였나 보다. 그냥 이렇게 가는 나 같은 배우도 있는 것 같았다.

-그랬던 정유미는 어떻게 지금의 정유미가 되어 갔나. 사람들 속으로.

▶데뷔할 때부터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연기가 나쁘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제일 잘 아니깐, 여기에 속으면 안 돼, 늘 자기 객관화를 하려 했다. 그렇게 매번 부족한 걸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러다가 '로맨스가 필요해'를 하면서 스스로에 떳떳해지기 시작했다. 나한테 칭찬해주기 시작했다. 좀 부족해도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뛰어든 이상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도 나를 칭찬해주는 법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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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올해의 영화인 정유미 인터뷰/사진제공=숲엔터테인먼트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때 일을 그만두려 서울살이 접고 고향으로 내려간 적도 있었는데.

▶당시는 상황이 주는 괴리가 너무 컸다. 연예계와 나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리스펙 했던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연기, 영화, 작품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무너졌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런 생각도 내가 만든 편견이었겠지만. 그러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그게 너무 어렵고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와 홍상수 감독 영화들을 하고 또 여러 드라마들을 하면서 느리게 걷는 법을 배운 셈인데.

▶떨어져 있어보니 보이는 게 있더라. 돌아와 홍상수 감독님 작품들을 하면서 자존감을 채워갔다. 이렇게 해도 영화가 되는구나, 많은 걸 배웠다. 영화라는 걸 너무 대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만든 틀로 가둬놨던 것 같다. 시야가 넓어진 계기였다. 그리고 '로맨스가 필요해'를 만났다. 사람들에게 정유미를 내 친구 같고, 언니 같고, 동생 같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리고 '윤식당'을 만났다.

▶지금까지 내 개인을 노출한 적이 없었다. 예능이랑 연기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두려움도 있었고. 그런데 '윤식당'은 그런 나를 더 자유롭게 해줬다. '윤식당'을 하면서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했던 강박이 완전히 부서진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나를 더 편하게 받아들여 주신 것도 같고. 예능이지만 묵묵히 자기 역할을 잘하면, 그게 또 전체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시간들이 힐링이었다.

-호사다마랄까, 말도 안되는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생기기도 했는데. 유명해진다는 건,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자기를 둘러싼 좋은 말과 나쁜 말이 더욱 커지는 걸 뜻하기도 하는데. 그걸 당연하게 받아 들여서는 안되지만.

▶나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때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루머도 없었고. 안 일어났으면 좋았을 일들이 일어났다. 나보고 감당하라고 하면 감당하겠지만, 가족들이 아닌 걸 아니라고 해명해야 하는 게, 그 시간들이 서글펐다.

-그런 시련은 정유미를 단련시켰나.

▶지나간 모든 게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성장하기 위해 꼭 그런 시련을 겪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난 좋았던 순간들을 잘 즐기지 못했다. 좋은 때는 즐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있을 때, 더 크게 다가온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려 한다.

그 모든 게 저의 시간이지만 일과 다른 걸 분리시키려 한다. 그렇게 떳떳한 나여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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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올해의 영화인 정유미 인터뷰/사진제공=숲엔터테인먼트


-떳떳한 정유미가 만난 '82년생 김지영'은 그래서 어땠나.

▶이 영화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자기 길을 걸어갔다고 생각한다. 정말 겸양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다 열심히, 그리고 잘했기에 자기 길을 잘 걸어갔다고 믿는다.

-'82년생 김지영'의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라는 수식어는 누군가에는 자랑스럽게 여겨질 테고, 누군가에게는 경원시하는 꼬리표로 다가갈 수 있을 텐데.

▶음. 이해가 안 되는 건 이해를 안 하려 한다. 이 영화는 내가 이해를 했으니 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냥 난 늘 하던 대로 내 갈 길을 갈 것이다. 다음 작품을 할테고, 또 다음 작품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작품들 속 캐릭터 때문에 각각 다른 반응들이 있었다. '82년생 김지영'도 다르지 않다. 늘 있는 일이고, 늘 있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은 정유미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은가.

▶하길 잘했다. 작품을 선택한 순간부터 촬영과 개봉까지 순리대로 흘러갔다. 매 작품을 할 때마다 항상 이렇길 바란다. 시나리오를 볼 때 첫 느낌 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이 영화 현장은 이슈와는 별개로 너무 편안하고 따뜻하고 되게 소박했다. 정말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영화도 관객과 잘 만난 것 같다. 그런 시간을 보내게 된 게 다행이라기보다는 감사하다는 마음이 제일 크다.

그런 마음이 저를 어딘가로 데리고 가겠죠. 이 마음을 잘 갖고 다음 작품을 잘 만나고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은 다 찍었고,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를 내년 상반기 찍을 때까지 쉬는 시간이 잠시 있는데.

▶일을 안 하는 평범한 하루를 보낼 계획이다. 배우 일을 하면서 작품을 안 할 때 쉬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진다. 티는 안내지만 잘 못 쉬고 다치면서도 계속 하다 보면 연기를 하는 감정과도 연결이 되더라. 그래서 잘 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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