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봉준호 "아카데미 수상? 본업은 창작..차기작 키워드는 '생명'"

2019 영화 결산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2.16 11:19 / 조회 : 3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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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사진 제공=CJ ENM


다사다난했던 2019년을 마무리하며 스타뉴스가 올 한 해 영화계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2019년,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단연 봉준호 감독이다.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괴물'에 이어 두 번째 천만영화 타이틀을 안았다.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 관심도 뜨겁다.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봉준호 감독에게 이메일로 물었다. 봉 감독은 질문 하나하나에 음성을 녹음해 파일로 전달했다.

-먼저 '기생충'의 북미를 비롯한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축하한다. 반응이 뜨거우면서 미국 언론이나 한국 언론에서 앞다퉈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점치고 있다. 이런 기대는 부담인가? 아니면 즐기고 있는지? 아카데미는 그저 로컬 영화제일 뿐이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지?

▶일단 뭐 여러 가지 예측 기사에서 '기생충'이 거론되고 있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기대가 커져서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과거에 '괴물'과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을 쭉 해외에서, 늘 북미에서 북미배급사를 통해 정식 개봉도 했었고 홍보 과정에서 미국 매체, 평단에서 여러 차례 경험을 해봤다. '설국열차' '옥자'는 미국배우, 스태프와 작업해봐서 제게는 미국이 한국과 또 다른 활동무대이긴 하다. 그런데 지금 오스카 관련 홍보와 캠페인들은 그동안 해왔던 것과는 무척 차원이 달라서 경험이 쌓여가고 있다. 부분적인 것들만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데 저 자신이 SNS를 하지 않아서 언젠가 오스카 캠페인 관련한 여러 가지 재밌는 경험과 디테일을 한번 차분히 자세히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이 할 날이 올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본업은 아니다. 부업이라 할까, 본업은 창작이다. 그래서 이 캠페인이 빨리 끝나고 본업인 창작으로 돌아가고 싶다. 복잡한 캠페인 일정 속에서 비행기나 숙소에서 조금씩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기생충'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객들 반응이 뜨거운 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에 공감이 컸기 때문일 텐데요. 이 이야기의 힘에 왜 그렇게 반응했다고 생각하는지. 또 여러 나라 관객 중 특별히 기억이 나는 반응이랄지, 한국 관객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랄지, 너무 닮아서 놀랐다든지 등이 있었나요?

▶빈부격차, 가난한 자와 부자의 이야기가 보편적이다, 유니버셜한 이야기라 여러 나라에서 다 통하는 게 아니냐, 이런 평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음. 사실은 빈부격차를 다른 이야기는 너무 많잖아요. 워낙 흔한 이야기라 그게 여러 나라에서 좋은 반응에 대한 해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보다 오히려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즉각적인 반응은 스토리 전개가 정말 예상 불가능했다는 것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전개였다. 그게 제가 즉각 겪었던, 개봉한 여러 나라에서 공통된 반응과 대답 같은 것이었다. 한치 앞을 예상 못하는 전개와 스토리텔링, 그 부분이 모든 나라에서 똑같은 반응이었던 것 같다.

대만에서는 카스테라, 이태리에서는 칸소네, 독일은 맥주랑 소시지 등 자잘한 디테일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소시지와 맥주의 고장인 뮌헨영화제에서 그 장면에서 엄청난 폭소가 나오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한국에서 가진 인터뷰 중 누군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어느 가족'이 그의 최고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생충'은 과연 봉준호 감독에게 최고작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때 봉준호 감독은 "그렇네요. 나도 '어느 가족'이 고레에다 감독님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깐요"라며 "내게 '기생충'이 어떨지는 개봉하고 시간을 보낸 뒤 천천히 생각해볼 것"이라고 했다. 이제 '기생충'을 떠나 보낼 시간이 점점 다가올 텐데, 과연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인가요? 최고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다르다면 '기생충'은 봉 감독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그동안 7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 중 어느 것이 최고고, 어느 것이 두 번째고, 이런 부분은 사실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를 본 관객이나 평자들이 이야기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 자신에게 '기생충'은 직업감독으로서, 직업작가로서 늘 해왔던 대로 평상시 같은 마음으로 최대한 차분하게 만들었던 영화다. 이번 영화는 이래야 한다며 특별한 목적으로 깃발을 치켜든 게 아니었다. 해오던 대로 담담하게 했다. 그렇기에 굳이 의미를 따져본다면 '기생충'은 감독이기 이전에 시나리오 작가라는 정체성에, 시나리오 작가로서 20년 세월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동안 스스로를 코너와 벼랑 끝으로 몰아놓는 자학을 해왔다. 그걸 자칭 정신분열이라고도 부른다. 그런 고통 자체를 신비화하고 싶진 않은데, 아무튼 시나리오를 쓸 때는 너무 미칠 것 같다. 고통스럽다. 그런데 '기생충'은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상대적으로 자학이 적고, 비교적 빠른 4개월 반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여전히 과거처럼 외롭고 고독한 작업이긴 하지만 시나리오를 차분하고 담담하고 빠른 속도로 썼다. 그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시나리오를 많이 쓰게 될텐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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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사진 제공=CJ ENM


-'기생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안긴 것과 동시에 봉준호 감독도 '기생충'으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인생에 한 잣대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텐데. 앞으로 영화인생에 '기생충'은 사자 뱃 속의 벌레 같을까요? 아니면 디딤돌이 될까요? 둘 다 아닐까요?

▶평상심에 대한 것인데, 늘 하던 대로 했던 것인데 영화가 제 손을 떠난 뒤에 많은 사건들이 벌어진 것이다. '기생충'은 저 자신의 7번째 영화고, 6번째 영화의 다음 작품이며, 8번째 영화 전 작품이다. 넘버 세븐. 그냥 일곱 번째 영화다. 그냥 평상심을 지키고 싶다.

난 영화를 구상하는 시간이 길다. '설국열차'도 '마더' 이전 '괴물' 할 때 이미 구상했던 영화고, '기생충'도 '옥자' 이전에 '설국열차' 후반작업 중에 지금의 '기생충' 제작사랑 협의했다.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들도 이미 '기생충' 촬영 전부터 준비해온 것들이다. '기생충'을 하나의 사건이라 본다고 해도,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준비하던 상태로 그대로 한다. '기생충'으로 인해 방향전환을 한다거나 새로운 준비를 하는 건 없다. 차분히 하던 대로 계속 정진하려 한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 때 시네마의 미래는 잘 모른다, 나는 그저 영화감독일 뿐이라고 했지만 어찌 됐든 봉 감독의 행보는 시네마의 미래를 세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길을 걷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지금 시네마는 마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들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기생충'은 특히 올해 세계영화계에 그렇지 않은 영화들의 대표격이 됐기도 했고. 이창동 감독은 '시'로 칸영화제 시나리오상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이런 영화들은 시처럼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봉준호 감독은 그렇지 않은 영화들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거는 글쎄요. (콜록콜록) 범세계적인 관점에서 어떤 경력 40년 이상 평론가 분께서 넓고도 깊은 통찰력으로 대답을 해주셔야 할 것 같다. 전 늘 발등의 불을 끄려고 하는, 다음 영화 또 다음 영화 준비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 전 세계 영화 산업, 문화에 대한 어떤 관점이 있어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전 작은 칼 하나 쥐고 밀림 한복판에서 당장 제 앞을 가로막은 풀이나 나무를 안간힘으로 헤치려 전진하는 사람이라 제가 헤매고 있는 숲의 정글과 덤블이 멀리 하늘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른다. 높은 하늘에서 바라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전 잡초와 나무 베어내기에 정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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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사진 제공=CJ ENM


-차기작은 영어 영화 또는 한국 영화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영화가 먼저 들어가게 될까? 만일 아카데미에서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 영어 영화가 더 탄력을 받게 될까요?

▶그간 인터뷰에서 몇차례 이야기했지만 한국어영화와 영어영화 두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준비해온 지 꽤 시간이 지난 프로젝트들이다. 한국영화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공포영화다. 영어영화는 2016년 런던에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한다. 작은 사건 기사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다. 두 작품 다, '기생충' 정도 아담한 규모의 영화다.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오스카와 전혀 관련 없다. 스토리를 숙성시키고 리서치를 준비하고 그 진도에 따라 이야기가 어떻게 풀려나갈지에 판가름이 날 것 같다. 내년 4월이나 5월 어떤 작품을 먼저 할지 확정 지으려고 한다.

-이어지는 질문인데요. '기생충'에 냄새가 하나의 키워드였다면 차기작에는 어떤 게 키워드 중 하나가 될까요?

▶생명. 차기작 키워드는 생명.

-'마더'의 원빈, '설국열차'의 크리스 에반스, '기생충'의 조여정처럼 차기작에서 관객들에게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얼굴을 끄집어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배우가 현재 있나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 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지난해 작고하신 일본배우 키키 키린이었다. 그분을 모시고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연기의 내공을 가늠하기 힘든 분이었는데 너무 안타깝게도 작년에 작고하셨다.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가족을 제외하고 올해 가장 감사를 전하고 싶은 세 명이 있다면. 왜 감사를 전하고 싶은지.

▶일단 2018년 2019년을 통으로 함께 했던 '기생충' 가족들, 모든 배우와 스태프, 아티스트, 제작사 바른손, 투자배급사 CJ ENM, '기생충' 팀에 감사의 마음이 0순위다. '기생충' 팀을 제외하고 세 분을 꼽자면 요즘에 저와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세 분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첫 번째 CJ ENM 해외배급팀장인 최윤희 팀장.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저와 북미 배급 및 오스카 캠페인을 잘 이끌어주고 있다. 그리고 미국 홍보담당자인 마라 벅스바움. 오스카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는 백전노장이다. 또 미국에서 언어의 아바타처럼 모든 통역을 완벽하게 해주는 놀라운 최성재씨. 이 세 분에게 현재형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올해 '기생충'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세 편을 꼽을 수 있을지요? 더 적어도 좋고 더 많아도 좋습니다.

▶네 편을 이야기하고 싶다. '행복한 라짜로'(감독 알리체 로르와커). 오랜만에 극장에서 눈물을 흘렸던 영화다. 영화로 보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체험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 과거 옛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과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영화다. 남자 주인공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도 그랬고 언제나 그랬지만 정말 노아 바움백 감독님의 사려 깊은 시나리오를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시나리오를 잘 쓰는 감독이다. 저 또한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로서 부러움과 질투심이 느껴진다. 놀라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정말 신들린 연기를 했다. 스칼렛 요한슨 정말 좋았고, 변호사 세 명도 연기 앙상블이 대단했다.

'아사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요즘 일본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묵직하면서도 진중한 어떤 힘이 있는. 그런 되게 독특한 사랑 이야기였다.

'아이리시맨'(감독 마틴 스콜세지). 거장은 왜 거장인가, 대배우는 왜 대배우인가, 정말 관록의 작품이었다.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정말 새롭다. 조 페시 연기는 정말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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