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재기 #박경 #콘크리트차트 #브로커[가요결산]

[2019 가요총결산]

공미나 기자 / 입력 : 2019.12.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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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플랫폼 멜론의 2019년 7월 월간 차트 /사진=멜론 캡처


가요계 해묵은 논쟁인 '음원 사재기'가 2019년도 이어졌다. 먼저 지난해 사재기 의혹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숀과 닐로 등에 대해 조사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올초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자료가 제한적이고 부족해 사재기 행위를 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사재기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못하면서 올해 차트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올 한해 의심스러운 차트 1위들이 계속해서 등장한 가운데, 대중은 합리적 의심을 멈추지 못했다.


◆ 뜨거운 여름날 발라드 열풍? 축하받지 못한 1위 가수들

올 여름 차트는 유독 더웠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의 2019년 7월 월간 차트를 살펴보면 상위 10곡 중 7곡은 발라드였다. 이중 2곡이 팝송, 댄스곡은 단 1곡 뿐이었다. '여름=댄스곡'이라는 공식이 2019년에는 성립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올 여름 차트를 휩쓸만한 댄스곡이 없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차트 분위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히 이름조차 생소한 아티스트들이 곡을 내자마자 실시간 차트 1위에 등극하고, 장기간 차트 상위권에 집권한 현상이 자주 목격됐다. 이들은 1위에 올랐다는 이유로 '사재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고,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 때문에 1위를 하고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가요계는 어느 때보다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 "요즘 차트, 콘크리트 차트"..가수들도 불신

한때 CD와 MP3 시대를 지나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오며 음악의 수명이 더 짧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19년 차트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말이 됐다.

"요즘 사재기가 많아서 차트가 콘크리트다. 뚫리지 않는다."

래퍼 딘딘은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음원 차트를 '콘크리트 차트'라고 표현하며 사재기 이슈를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좀처럼 상위권 순위가 바뀌지 않는 '콘크리트 차트'에 대한 의구심은 올 들어 꾸준히 제기됐다. 몇몇 가수들의 노래는 발표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차트 상위권에서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뚫기 어려운 차트지만 일부 가수들은 신곡 발표와 함께 손쉽게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심지어 거대 팬덤을 가진 가수들에게서나 볼 수 있다는 지붕킥(실시간 차트 점유율에서 집계 최대치)까지 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거나 무명 가수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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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 바이브, 송하예 /사진=스타뉴스


◆ "나도 음원 사재기 좀 하고 싶다, ○○○처럼"

음원 사재기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가수 박경의 트위터였다. 지난 11월 24일 박경은 "나도 음원 사재기 좀 하고 싶다"라며 바이브, 임재현, 송하예, 황인욱, 전상근, 장덕철 등 가수들을 직접 거론했다. 해당 트윗은 금방 삭제됐지만, 현직 가수가 동료 가수의 이름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름이 거론된 가수들은 일제히 박경에게 유감을 표하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이에 박경의 소속사 측은 "실명으로 언급된 분들 및 해당 관계자 여러분께 불편을 드린 점 양해 말씀드린다"고 사과했지만 박경을 법적으로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음원 사재기 이슈를 두고 양측 간 법적 공방이 예고됐다.

박경의 발언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섣부른 실명 거론이 "경솔했다"고 지적한 반면, 박경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박경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그가 3년 전 발표한 곡인 '자격지심'을 스트리밍하며 주요 음원 플랫폼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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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성시경 /사진제공=에스케이재원(주)



◆ 성시경·술탄..잇따른 사재기 브로커 증언

박경 이후 음원 사재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사제기 업체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성시경은 지난달 27일 KBS 해피FM '매일 그대와 조규찬입니다'에 출연해 음원 사재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일화를 전했다. 그는 "(대행업체에서) 작품에도 관여를 한다고 하더라. '전주를 없애고 제목을 이렇게 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인디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멤버 김간지도 팟캐스트에서 직접 겪은 사례를 언급했다. 소속사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는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했다. 고 대표는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노래를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차트 100위 안에 들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투자 비용은 낼 필요 없고 이후 수익을 업체와 기획사가 8대2로 나누자고 했다"며 "업체 쪽에서는 '사재기는 아니며 이를 계약서에도 명시해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이런 마케팅만으로 차트 안에 들 수 없기에 사재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 거절했다"고 전했다.

사재기 업체와 브로커를 파헤친 보도도 쏟아졌다. 모니터 화면에 수많은 음원 플랫폼 플레이어를 띄워놓은 사재기 업체의 사무실 사진이 공개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이미 여러 차례 음원 사재기에 대한 증언과 보도가 이어졌지만 여전히 실체를 잡아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스타뉴스에 "요즘은 직접적인 사재기 대신 바이럴 명목으로 차트에 올려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면서 "이걸 마케팅으로 볼지 사재기로 볼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당한 방법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며 사재기 업체들이 과거보다 더 교묘해졌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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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사진=뉴스1


◆ 차트 폐지가 답?

결국 근본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은 실시간 차트 폐지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측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이대로 가다간 K팝이 몰락한다"며 실시간 음원 차트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글을 올렸다. 가수 윤종신도 지난해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어떻게 하든 올리는 게 목표가 된 현실"이라고 실시간 차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음원 플랫폼들은 실시간 차트 폐지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측은 실시간 차트 문제와 관련해 "아티스트, 산업 내 관계자,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꾸준히 개선·보완하며 발전시키겠다"고 전했다.

관계부처와 업계 관계자들도 음원 사재기 의혹을 뿌리 뽑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콘텐츠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등 음악 산업 단체들도 움직였다. 이들은 지난 11월 22일 '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캠페인 윤리 강령 선포식'을 열고, 공정한 유통 환경 조성과 원활한 시장경제 활성 확립을 위한 윤리 강령을 발표하며 한 목소리를 냈다.

문체부는 보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놨다. 지난 8월 콘진원과 음원 사재기 근절을 위해 콘진원 산하 콘텐츠 공정 상생센터에 신고 창구를 개설했으며, 내년 5월까지 음원사재기 이슈대응 매뉴얼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회도 음원 사재기 의혹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지난 5월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불공정 거래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음원 사재기를 통한 차트 순위 조작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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