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2' 스크린독과점 논란..'블랙머니'는 있고 '윤희에게'는 없다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1.22 11:28 / 조회 : 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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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이 될 것 같다. '겨울왕국2' 스크린 과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비판을 받을 것 같다.

영화다양성확보와 독과점해소를위한 영화인대책위(이하 반독과점영대위)는 22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겨울왕국2'가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에 이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빚은 작품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2' '캡틴 마블' '극한직업' '기생충' 등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독과점영대위는 "스크린 독과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그간 영비법 개정 및 바람직한 정책 수립을 촉구해왔다"고 밝혔다. "'겨울왕국2'로 인해 영화 향유권과 영화 다양성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따라서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는 영화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영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과 부산영화협동조합 황의환 대표, 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 C.C.K픽쳐스 최순식 대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안병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이은, 반독과점영대위 운영위원 권영락, 반독과점영대위 대변인 배장수 등이 참석했다.

앞서 반독과점영대위는 '겨울왕국2' 개봉일인 21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이튿날인 22일 열겠다고 공지했다. 이 자리에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과 제작진이 참석한다고 전했다.

영대위의 주장처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제도로 풀어야 하는 것도 타당하다. 그럼에도 '겨울왕국2' 경쟁작이자 '겨울왕국2' 개봉 전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켜온 '블랙머니' 감독이 전면에 나서야 했는지, 의아하다. '블랙머니' 제작자 질라라비 양기환 대표는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이기도 하다.

정지영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블랙머니' 제작진이 되도록 이 자리에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왜 그러냐고 하니 비난하는 댓글이 많고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왜 역풍을 맞았냐고 하니, 많은 이가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하더라. 역풍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라고 강조했다. "'블랙머니' 좌석수가 어제(21일) 기준 90만 석에서 30만 석으로 하루 만에 줄었다. 관객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고 토로했다.

피해자가 전면에 나서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블랙머니'는 분명 '겨울왕국2'가 개봉하면서 스크린수와 상영횟차가 크게 줄었다. 분명한 피해다.

그렇다면 '블랙머니'가 개봉할 때 다른 영화는 그런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블랙머니' 하루 뒤 개봉한 '윤희에게'는 박스오피스 1위인 '블랙머니'를 비롯해 '신의 한수: 귀수편'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82년생 김지영' 등 상위권 영화들에 더 많은 스크린과 상영횟차를 몰아준 극장들 탓에 첫날부터 '퐁당퐁당'(교차 상영을 뜻하는 영화계 은어)을 극심하게 겪었다. 극장들은 당연히 박스오피스 1위인 '블랙머니'에 가장 많은 스크린과 상영횟차를 몰아줬다.

'윤희에게' 관계자는 '블랙머니' 상영 사흘째이자 '윤희에게' 개봉 이틀째인 지난 15일 늦은 밤, 기자에게 "극장들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스크린독과점이 상업영화에는 문제가 되고, 다양성영화에는 문제가 안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블랙머니'가 피해를 받았을 때는 문제고, '블랙머니'가 피해를 줬을 때는 문제가 아닌 것이 아닐 것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문제고, 스크린 과점은 문제가 아닌 건 아닐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 상영이 스크린 3분의 1을 넘지 않게 해달라. 모범이 돼 준다면 한국 영화계가 박수치고 정책 당국이 깨달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봉 감독이 '배급사의 일에 관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라 죄송하다. 50% 이상 안 넘게 노력해보겠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제도적으로 개선되면 좋겠다'는 답이 왔다고"도 했다.

'블랙머니'가 '윤희에게' 퐁당퐁당에는 어떤 영향을 줬을지,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정지영 감독과 반독과점연대는 영비법 개정으로, 규제로, 스크린독과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하게 주장했다. 반독과점연대에 참여하는 여러 인사들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취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 장관이 CJ ENM 사외이사를 거쳤기에 대기업 이익을 우선해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반대로 의제를 선점했기 때문인지 박양우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스크린독과점을 해결하기 위한 스크린 상한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독과점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힌 영비법 개정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 등이 기준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6편 이상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할 수 있는 복합상영관에서 같은 영화를 오후 1∼11시 프라임 시간대에 총 영화 상영 횟수의 50%를 초과해 상영해서는 안된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겨울왕국2'를 비롯해 '어벤져스: 엔드게임' '기생충' '극한직업' 같은 영화가 향후 상영될 경우 극장에서 한 영화로 줄 세우는 현상은 사라지게 된다. 얼핏 블록버스터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에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럴 경우 '윤희에게' 같은 영화는 오히려 극장에서 상영될 기회조차 얻기 힘들게 된다. '겨울왕국2' 같은 할리우드영화와 '블랙머니' 같은 한국 상업영화들이 최대한 수익을 내기 위해 장기 상영을 하게 돼 스크린과 상영횟차를 과점하게 된다. 스크린 독과점은 사라지는 대신 스크린 과점이 형성될 수 밖에 없다. 과점 시장에서 작은 영화가 상영될 여지가 사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스크린 상한제가 방향은 옳지만 규제 정책은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지영 감독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기업 수직계열화를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그의 말과 행동은 늘 한결같았다. 그런 정지영 감독의 차기작 '고발'은 CJ ENM에서 투자,배급한다. 정지영 감독은 스크린독과점 문제와 대기업 수직계열화를 비판해왔는데 '고발'을 CJ ENM과 같이 작업하는 건 모순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두고 우리끼리 논란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지금 하기에는 이른 것 같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다. 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스크린독과점을 반대하면 CJ랑 일하지 말아라,라고 하면, 그걸 위해 싸울 사람들이 적어진다. 봉준호 감독이 CJ와 일하면서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줘야 한다. 우리가 전두환 정권 반대를 이민 가서 한 게 아니지 않나."

정지영 감독의 말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아야 했다. '겨울왕국2'가 개봉한 다음 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 전에, '블랙머니' 개봉 하루 뒤에 '윤희에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먼저 살폈어야 했다.

씁쓸하게 양비론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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