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우승 비결, 휴스턴 사인 훔치기 철저 대비 '적지서 4승'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11.15 16:02 / 조회 :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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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는 워싱턴 선수단. /AFPBBNews=뉴스1
미국 메이저리그(MLB)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이 지난 13일(한국시간) 전 휴스턴 선수 마이크 파이어스의 폭로를 통해 2017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인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 의혹을 보도한 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들과 추가 폭로 등이 계속 나오고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당시 휴스턴에 있었던 현 보스턴 레드삭스 감독 알렉스 코라와 뉴욕 메츠 감독 카를로스 벨트란도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 문제가 휴스턴 한 구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를 뿌리째 뒤흔들 초대형 스캔들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코라는 2017년 휴스턴에서 벤치코치였고 우승 직후 2018년 보스턴 사령탑으로 부임, 보스턴을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7년 휴스턴에서 지명타자로 뛰었던 벨트란은 이번에 새로 메츠 감독으로 임명됐다.

현재까지 나온 보도를 종합해 보면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뤄졌다. 홈구장 미닛메이드파크 관중석에 포수의 사인을 잡을 수 있는 비밀 카메라를 설치한 뒤 휴스턴 더그아웃에서 클럽하우스로 가는 통로 쪽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상대 사인을 훔쳐내 빠른 볼인지, 변화구인지를 해독해내면 선수들이 미리 약속한 방법으로 타자에게 이를 알려주는 것이다.

변화구일 경우 큰 휘파람을 불거나 쓰레기통을 배트 등으로 두들겨 요란한 소리를 내고, 빠른 볼일 경우는 조용히 있는 방법이 그 중 하나다. 또 다른 방법은 불펜에 있는 불펜 포수에게 이어폰으로 이 정보를 전달해 불펜 포수가 손을 펜스 위로 들어 올리면 빠른 볼, 들지 않으면 변화구 식으로 타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구장이 관중들이 내는 소음으로 너무 시끄러워 더그아웃에서 전달하는 소리가 타자에게 잘 들리지 않을 때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사인 훔치기 문제는 사실 최근만의 일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포수의 사인을 볼 수 있는 2루에 주자가 나갈 경우 수비팀 배터리들은 투구 사인을 보다 복잡한 것으로 바꿔 상대의 사인 훔치기에 대비해 왔다. 만약 2루 주자에게 포수 사인을 간파당해 피해를 봤다면 그것은 사인을 훔친 팀이 아니라 상대의 사인 훔치기를 막지 못한 팀의 잘못으로 간주돼 왔고 이런 사인 훔치기는 사실상 경기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구단 차원에서 첨단기술을 동원해 사인 훔치기에 나섰다면 그것은 2루 주자의 육안을 이용한 사인 훔치기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제는 주자가 2루에 있든 없든 관계없이 항상 사인을 훔칠 수 있고 그를 통해 타자가 투수가 던지는 공이 빠른 볼인지, 변화구인지 미리 알고 타석에 임한다면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밖에 없다. 휴스턴의 이런 사인 훔치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경기의 결과가 뒤집혀졌는지는 판단하기가 불가능하지만 공정한 승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동안 휴스턴이 불법적인 사인 훔치기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은 이번 보도가 나오기 전부터 MLB에서 상당히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구단들이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휴스턴이 아닌 다른 구단들도 그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심지어 휴스턴은 경기장에서 사인 훔치기에 동원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직원이 적발되자 “그는 사인을 훔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상대의 사인 훔치기 시도를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3년간 모두 정규시즌 100승 이상을 올리고 2017년과 올해 월드시리즈에 진출, 2017년 우승을 차지했던 휴스턴은 도대체 얼마나 이 사인 훔치기의 덕을 본 것일까.

많은 LA 다저스 팬들은 이미 2017년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에 두 차례나 초반에 난타 당했던 전 다저스 선발투수 다르빗슈 유에게 당시 그를 비난했던 것을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도둑맞았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시 다르빗슈가 난타 당했던 시리즈 최종 7차전은 다저스의 홈구장인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졌으나 그럼에도 의심의 눈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또 그해와 올해 모두 휴스턴에 패해 월드시리즈 진출이 무산됐던 뉴욕 양키스 팬들도 격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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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1일(한국시간) 워싱턴과 월드시리즈 7차전을 앞두고 국민의례를 하는 휴스턴 선수들. /AFPBBNews=뉴스1
휴스턴을 의심할 만한 정황 증거는 더 있다. 우선 2016년 휴스턴 타자들은 23.4%의 삼진율로 메이저리그에서 4번째로 삼진을 많이 당한 팀이었다. 그런데 휴스턴이 카메라를 동원한 사인 훔치기를 시작했다고 보도된 2017년 시즌 휴스턴 타자들의 삼진율은 직전 시즌보다 훨씬 낮은 17.3%로 낮아져 순식간에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삼진을 적게 당하는 팀이 됐다. 1년 사이에 급격히 달라진 것만으로도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해 휴스턴 타자들의 삼진율을 홈과 원정으로 나눠 비교하면 홈에서 16.7%, 원정에서 17.9%로 차이가 아주 크진 않아 섣불리 단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휴스턴이 원정구장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사인 훔치기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에 승리한 워싱턴 내셔널스는 과연 어떻게 이런 상대의 반칙을 극복한 것일까. 더구나 워싱턴은 월드시리즈에서 놀랍게도 4승을 모두 적지인 미닛메이드파크에서 거뒀다. 과연 워싱턴이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 작전을 깨뜨린 비결은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미 워싱턴은 월드시리즈 진출이 확정된 직후부터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의 투수코치 폴 멘하트는 모든 투수들이 자신만의 투구 사인을 만든 뒤 이 암호 사인을 래미네이트해 포수들인 얀 고메스와 커트 스즈키가 손목에 차고 숙지했다고 밝혔다.

이 사인들은 한 세트가 아니라 여러 세트로 만들어졌고 경기나 이닝마다, 심지어는 매 타자마다 서로 다른 세트의 사인을 사용했다고 한다. 사인을 보더라도 그 자리에선 해독이 불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또 2루에 주자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암호사인을 계속 바꿔가며 사용했다고 한다.

워싱턴은 또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런 암호 사인도 어떤 사인이 진짜 사인인지를 계속 바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닝에 ‘아웃 플러스 1’을 약속했다면 원아웃 상황에선 포수가 보내는 두 번째 사인, 투아웃 때는 3번째 사인이 진짜 사인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2를 따라가라(chase the two)“는 것으로 이 경우는 포수가 여러 신호를 보내던 중 손가락 두 개(2)를 내보이는 사인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그 다음 사인이 진짜 사인이 되는 방식이다.

워싱턴의 이 같은 사인 보호하기 전략이 과연 월드시리즈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워싱턴은 이런 복잡한 사인 시스템을 밀워키와의 와일드카드 라운드나 세인트루이스와 디비전시리즈, 다저스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선 활용하지 않고 오직 휴스턴과 월드시리즈에서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히 다른 팀과 다르게 휴스턴에 대해선 뭔가 특별한 의혹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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