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센타' 박용우 "불안해 봤자 소용없다..이젠 안다"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1.16 10:30 / 조회 : 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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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센타'의 박용우/사진제공=프레인TPC


한때 박용우는 영화 1번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휴먼드라마, 로맨틱코미디, 스릴러 등 여러 장르에서 박용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랬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정상을 향해 가다 보면 무작정 오를 때도 있지만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는 순간도 있다. 27일 개봉하는 '카센타'(감독 하윤재)는 박용우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 영화다.

'카센타'는 파리 날리는 한적한 국도변 카센터를 운영하는 재구와 선영 부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로에 날카로운 쇳조각들을 뿌린 뒤 타이어가 펑크난 차들을 수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박용우는 서울 살다가 아내의 고향으로 내려와 온 동네에서 무시 받는 재구를 맡았다.

'카센타'와 박용우는 어떤 점이 닮았다. 한편으로는 찌질과 늘어짐과 선량함과 분노와 웃음과 모멸과 억울함이 모두 담긴 배우 박용우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박용우는 지금 묵묵히 올라가고 있다.

-'카센타'는 왜 했나.

▶처음에 하윤재 감독을 만났을 때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성격의 분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선호한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하고.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생각했던 게 선입견이구나라고 깨달았다. 감독님에게 감동 받아서 '카센타'를 하게 됐다.

시나리오는 되게 묘했다. 너무나도 뻔하고 너무나도 비어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감독)을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비어있는 만큼 궁금증이 많은 시나리오였다.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궁금했다.

난 옷을 잘 사지는 않는데 티가 나지 않지만 고급스런 옷을 좋아한다. 보이지 않는 곳의 라인이 다르다든가. '카센타'는 그런 느낌의 시나리오였다.

-하윤재 감독이 박용우의 팬이어서 주인공 이름도 박용우의 전작에서 가져왔다고 하던데. 박용우의 어떤 점이 끌렸다고 하던가.

▶SBS 2부작 단막극인 '인생 추적자 이재구'에서 '카센타' 재구 이름을 가져왔다고 하더라. 글쎄,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상황과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오해도 있을테고. 내가 왜 좋아, 내가 왜 싫어, 이런 게 내겐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카센타'를 같이 한 조은지를 예를 들면, 난 조은지가 배우로서 마냥 좋다. 왜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첫인상이 좌우하는 것도 같고. 조은지는 임상수 감독 영화 '눈물'로 데뷔했는데 그때 오디션 인터뷰 동영상을 본 게 첫인상이다. 머리를 염색하고 인터뷰를 하는 데 그때 인상이 너무 강렬했다. 그때부터 좋았다.

-그래서 조은지와 '달콤살벌한 연인' 이후 다시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 이렇게 길고 깊게 연기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인데.

▶연기자로서 행복 중 하나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연기란 게 잘 말하고 잘 들으면 된다. 조은지는 잘 말하고 잘 들어주고 잘 표현하는 아주 좋은 배우다.

-한때 영화계에서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주인공으로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그렇지 않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카센타'는 오랜만에 주연을 맡아 여러 가지 모습을 연기하니 어땠는지.

▶한동안 좀 활동을 정력적으로 안 하면서 그 이유가 뭔지 생각을 꽤 많이 했다. 이유가 없더라. 나는 결론을 그렇게 내렸다. 그렇다고 그런 생각을 내려놓지는 않겠지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는 게 의미가 없더라. 내가 알 수 없는 이유에 집중하지 말고 내가 느끼고 즐거운 것들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번 '카센타'를 하면서 쾌감과 재미를 온전하게 느꼈다.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감독, 좋은 동료, 좋은 배우를 만난 게 큰 쾌감을 줬다.

-'카센타'에서 박용우의 얼굴에 털털하고 무심하고 냉소적이고 억울하고 느긋하고 좌절하고, 그런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같이 담겼던데.

▶하윤재 감독이랑 어떤 게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구일지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개인 리딩도 많이 했고. 어떨 때는 털털하게 했고, 어떨 때는 무심하게 했고, 어떨 때는 냉소적으로 했다. 영화 속 모습은 그런 이야기와 리딩들의 결과물인 것 같다. 척하지 않고 매우 즐기며 연기했다.

감독님이 내 눈에서 억울함이 있다고 하더라. 그 눈빛이 너무 좋아서 또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 말이 좋았다. 동의하고. 나도 나를 잘 모르지만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눈빛들 중 하나를 발견해준 것 같아 감사하다.

-'카센타' 속 재구에 대한 생각과 박용우의 지난 어떤 시간들이 닮았다고 생각하나.

▶재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억울함이 있는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지란 생각을 갖고 있고. 그런 점들은 내 어떤 시간들과도 분명 닮았다. 그런 생각들을 내려놓지는 못하지만 내버려두게 됐다.

-'카센타' 지금 엔딩 말고 바로 직전 장면인 박용우의 클로즈업이나 조은지의 모습으로 끝을 냈다면 또 어땠을까 싶던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카센타'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님이 한 말이다. 감독님이 그 장면으로 엔딩을 해도 좋을 것 같다며 자기 마음 속의 엔딩은 그 장면이라고 하더라. 그 뒤는 영화를 위한 보너스고. 난 지금 엔딩도 좋다. 재구도 나쁜 놈이다. 이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들은 다 나쁜 놈이다. 재구는 최대한 줄타기를 잘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지금 엔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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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센타'의 박용우/사진제공=프레인TPC


-'카센타'에 팬이 됐다고 하던데.

▶시나리오를 봤을 때 느낌과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과 지금 상영 버전 느낌이 다르다. 시나리오는 원단이었다면 부산영화제 버전은 다 갖춰져 있지만 핏이 안 맞는 느낌이 있었다. 자꾸 계산하면서 보게 되고. 그런데 지금 상영 버전은 이 영화에 적절한 핏이다. 계산 없이 완전히 몰입해서 봤다.

난 '카센타'가 되게 씁쓸하고 쓸쓸한 영화였으면 했다. 그런데 웃음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찌질함. 그 찌질함의 웃음이 최대한 많이 살았으면 했다. 멀리서 봤을 때 웃음이 보여야 가까이 봤을 때 슬픔이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 게 지금 상영 버전에 정말 잘 담겼다.

-'카센타' 블랙코미디 많은 부분을 박용우와 조은지가 현장에서 감독과 상의해서 만들었다고 하던데.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독님이 무한신뢰를 줬다. 하윤재 감독이 원래 자기 생각과 고집이 대단한 사람인데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마음껏 연기하라고 했다. 나와 많은 대화를 하고 리딩을 같이 하면서 어떤 신뢰를 갖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매 테이트마다 연기가 다 다르고 대사가 다 달랐다. 예컨대 조은지와 개싸움을 할 때는 마음대로 해도 되니 "그래도 우리도 사람이잖아"라는 대사만 꼭 해달라고 했다. 조은지에게도 마음껏 해도 되니 "지렁이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냐" 이 대사만 해달라고 했고.

어떤 컷이 영화에 쓰일지도 몰랐고, 내가 어떻게 했는지도 몰랐다. 난 언제부터인가 드라마든 영화든 현장에서 모니터를 안 본다. 개인적인 욕심이 생길까봐. 내가 욕심이 많은 배우인 걸 스스로 잘 아는데 그렇게 욕심이 생긴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불안해 자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됐다. 감독님이 나보다 몇십배 더 고민하는 사람이니 필요하면 이야기할 것이란 것도 알게 됐고.

-영화에서 마을 청년회장에게 어떤 말을 듣는 장면은, 설명 없이 박용우의 얼굴만으로 관객을 납득시켜야 하는 장면인데. 그걸 잘 해냈긴 했지만 쉽지 않았을텐데.

▶그 컷도 즉흥적인 것이었다. 원래 시나리오는 격렬하게 둘이 싸운 다음 아내를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찍기 전에 이 장면은 "용우 선배 말대로 별다른 설명 없이 타이트하게 얼굴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촬영하기 전에 감독님과 수다를 많이 떨면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곤 했다. 청년회장과 몸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눈치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감독님이 깊이 생각하고 그렇게 가자고 맡기더라.

-조은지와 싸우는 장면도 그랬나.

▶그렇다. 이 장면은 개싸움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은 "우리도 사람이잖아" "지렁이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냐" 그 대사만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개싸움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절대 여자를 때려선 안된다. 욕도 해선 안된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다"라고 하더라. 그 말에 나도 동의했다. "대신에 많이 맞겠습니다"라고 했다. 조은지에게 많이 때려달라고 해주세요라고 했다. "우리도 사람이잖아"라는 대사를 과연 재구가 아내에게 할 자격이 있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버전은 이가 흔들릴 정도로 맞았고 어떤 버전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맞기도 했다. 탈진할 만큼 헉헉 하고 있는데 "컷"이 없으니 조은지가 뒤통수를 퍽 하고 때리기도 했다. 연극하는 기분이었다. 영화에는 너무 맞지도 그렇다고 너무 덜 맞지도 않은 장면이 담겼더라.

-마을청년 회장인 문사장(현봉식)과 치고받는 장면도 절묘했는데.

▶감독님은 알아서 잘 싸워달라고 하더라. 원신 원테이크라 매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신발을 던지고 싶었는데 영화에 쓰인 그 장면, 딱 한 번 그 신발이 문사장 입에 맞았다. 진짜 애정하는 장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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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타' 박용우 스틸


-'카센타'에서 재구는 뾰족한 못들을 뿌리고 그걸로 먹고 사는데.

▶'더 헌트'를 좋아한다. 그 제목처럼 세상은 사냥을 하거나 사냥을 당하거나 인 것 같다. 그런데 사냥꾼과 사냥감이 매번 바뀐다. 그게 인생인 것 같다. 어떨 때는 사냥꾼이었다가 어떨 때는 사냥감이 된다. '카센타'의 재구도 그런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영화 속에서 몸에 잘 맞는 슈트를 입는데 찌질했던 모습들과는 전혀 달리 배우로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고, 원하는 게 뭘까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80세까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남을 위해, 나 이 정도야 과시하려고 운동을 했다. 지금은 정말 내가 좋아서 운동을 한다. 80세까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다면 그때 멋진 몸을 보여주고 싶다. 영화 속 슈트를 입는 장면에서 보여준 그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인한 결과다.

최근에 극장에서 '람보: 라스트워'를 일부러 찾아서 봤다. 완성도를 떠나서 감동적이더라. 스크롤이 올라가는 데 실베스타 스텔론이 어떻게 살았고, 람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소개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배우로 갖게 되는 기분이 뭘까란 감동도 있었고.

-차기작 '유체이탈자'는 '카센타'와 전혀 다른 모습인데. 전혀 달라서 선택했나.

▶그렇지 않다. 그건 이제 내게 별 의미 없다. 이제는 한 가지만 만족하면 가려 한다. '카센타'를 감독님이 반전의 매력이 있어서 한 것처럼. '유체이탈자'는 여러 면에서 만족해서 하게 됐다. 배우에게 그 역에 잘 어울린다는 말이 가장 좋은 말 같다. 이번에도 잘 어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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