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의 독하고 솔직한 대답 #블랙머니#론스타#검찰개혁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1.13 11:04 / 조회 :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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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사진=이기범 기자


한국 나이 74세. 만으로 72세.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정지영 감독은 여전히 현역이다. '남부군' '하얀전쟁' 등 과거의 영화들뿐 아니다. 정지영 감독의 건재를 알린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도 날이 시퍼렇다.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 부조리한 면에 카메라를 시퍼렇게 들이댔다.

13일 개봉하는 '블랙머니'도 마찬가지다. 5년 만에 선보이는 '블랙머니'는 론스타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다. 외국 사모펀드가 헐값에 한국의 주요 은행을 사들였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 온갖 이권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짚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그의 영화는 펄펄 끓는다. 정지영 감독의 독하고 솔직한 대답을 가감 없이 전한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약간 포함합니다.

-'블랙머니'는 왜 만들었나.

▶이 이야기는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건 아니다. 이 영화 제작자이기도 한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이 "이거 어떠세요?"라고 추천했다. 론스타 먹튀 사건을 공부해보니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블랙머니'는 제작자의 집념이 아니면 못했다. 내가 딴짓하다 가보면 이렇게 진행해놓고 그러면 다시 토론하고, 다시 딴짓하다 가보면 더 발전해놓고 그러면 다시 토론하고, 그렇게 만들어졌다.

-론스타 사건의 어떤 점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나.

▶우리는 금융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경제란 게 어려우니깐. 그렇기에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는 몇몇에 농락당하기 쉽다. 론스타 사건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작고 초라하구나란 걸 입증하는 사건이다. 일개 외국 사모펀드가 먹고 튀었는데 그것도 속 터지지만 우리나라를 상대로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그게 다 우리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다.

-이 복잡한 사건을 2시간 남짓한 영화에 담기 위해 선악이 뚜렷한 이분법적인 구분을 택했는데.

▶그렇다기보다 정지영이란 사람의 시각을 담으려 했다. 금융자본주의 속성, 미국 월가에서 비롯된 커넥션,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쁘고 그런 시스템에 대한 지적을 하려 했다. 기득권자들을 나쁜 놈으로 그렸다는 건 일부분이다. 복마전 같은 상황이 안타고니스트다. 잘못된 제도가 문제고, 그 제도에 접근하기 쉬운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게 문제다.

이 영화에서 기득권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을 피아로 구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자기들 나름의 변명과 이유를 설명하게 만들었다. 국부유출을 막는다든지, 국가 신뢰도를 위해서라든지. 사실 그게 더 얄밉다.

쉽고 편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았다. 이놈은 착하고 저놈은 나쁘다고 한 게 아니다. 더 큰 차원에서 보자는 마음에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도 넣은 것이다.

-조진웅이 맡은 양민혁 검사는 거악을 잡기 위해 소악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불법감청에 불법연행, 불법침입까지.

▶그것도 합리화다. 거악을 잡기 위해 소악을 행하는 건 괜찮다는 건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양민혁 검사는 그냥 그런 검사였던 것이다. 어느 정도 보수적이고 보통 사람인. 그런 검사가 자기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정의로워진다.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 이 영화 속에서 양민혁 검사(조진웅)와 김나리 변호사(이하늬)의 선택을 각각 보여주고 싶었다.

-양민혁 검사 이름은 어디서 가져왔나.

▶양기환 대표 아들 이름이다.

-금융을 잘 모르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양민혁을 검사로 설정했는데. 검사니깐 사건의 실체를 추적할 수 있었을테고. 그런데 왜 굳이 검사였나. 기자나 다른 직업일 수도 있었을텐데.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전문가의 시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기자면 경제 전문 기자일테고. 그러면 전문가의 시점과 관객의 시점을 맞추기가 힘들다. 경제를 잘 모르는 검사여야 관객과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랙머니' 속 설정과 실제 론스타 사건은 어느 정도 같고 어떤 부분이 허구인가.

▶영화처럼 두 명이 죽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둘이 영화처럼 어떤 관계가 있는 건 아니고 영화처럼 죽은 것도 물론 아니다. 이 영화는 모티프가 있고, BIS를 조작해서 외환은행을 헐값에 넘긴 사실이 있고 결과가 있다. 그게 팩트다. 그 팩트를 드라마로 뀄다. 관객이 어느 게 사실이고 어떤 게 허구인지를 직접 찾아보는 재미도 주고 싶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당시 론스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 중 한 명이었다. 영화 속에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양민혁 검사를 맡은 조진웅과 외모가 닮기도 했다. 영화 속에선 사건을 조사하는 검사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 중에서 착안한 게 있는지.

▶일단 윤석열 총장은 당시 론스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 중 간부였으니 양민혁 검사와는 맞지 않다. 외모가 조진웅과 비슷하긴 하지만 전혀 다르다. 실제 론스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과 영화 속 검사들이 닮았을 수도 있고 전혀 아닐 수도 있다. 그건 관객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그때 검사들이 "쟤는 나를 모델로 했네" 이러면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윤석열 총장은 지인을 통해서 내 영화팬이라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블랙머니' 시사회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시사회 초대는 불발됐다.

실제 인물을 영화 속 캐릭터로 참고하기보다는 재밌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부러진 화살'을 하면서 실제 인물들 속에서 캐릭터를 가져왔다. 그랬더니 영화가 재밌어지더라. 그건 실제 인물이 재밌어서 그런 것이었다. 재밌는 캐릭터가 영화를 재밌게 만든다는 걸 배웠다. '블랙머니'도 재밌는 캐릭터가 그래서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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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에게 디렉션을 하는 정지영 감독/'블랙머니' 스틸


-'블랙머니' 속 캐릭터들은 전형적이다. 전형적이기에 관객들이 이야기에 몰입하기 쉽게 만드는데. 물론 그 전형적인 캐릭터들을 각 배우들이 입체적으로 만들기도 했고.

▶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조진웅을 빼고 다 전형성을 갖고 있다. 김나리는 불법을 용납하지 않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보수다. 그런데 우리는 건전한 보수가 나쁜 보수로 바뀌는 걸 일상에서 종종 목격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선 선택의 순간을 준다. 반대로 아무런 의식이 없던 사람이 시민운동을 하게 되는 걸 본다. 다 전형이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게 될 때 저절로 그런 전형을 찾게 된다.

-김나리는 마지막 선택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캐릭터인 것도 같은데.

▶그렇다기보다 그 선택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진웅과는 어떻게 하게 됐나.

▶원래 예전부터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라 프러포즈를 했다. '독전'이나 '완벽한 타인' 등 전작들에서 보여준 조진웅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진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친구구나 싶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정말 잘했다. 다만 안타까운 건 조진웅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배우인데, 더욱 그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하게 하려면 살을 좀 빼야 한다. 살 때문에 그 좋은 다양성이 희석되는 게 안타깝다.

-김나리를 맡은 이하늬는 계속 고민했다던데.

▶김나리에 어떤 배우가 좋겠냐고 주위에 물어봤는데 다들 이하늬를 추천하더라. 그런데 내가 본 작품 속 이하늬는 '극한직업'과 '열혈사제'였다. 거기에선 지성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하늬를 만나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추천하는 데 난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김나리 이미지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하늬를 봤는데 음 다르더라. 이야기를 길게 나눠보니 상당히 지성적이더라. 그래서 이 배우의 지성미를 끌어내면 되겠구나 싶었다. 외모부터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지 말고 당신의 당당한 지성을 캐릭터로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영화 속 김나리는 옷도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고 안경을 쓴다. 머리를 풀어헤치는 것도 딱 한 번 밖에 없고.

-론스타 먹튀 사건은 아직도 실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블랙머니'에선 기승전결로 이 사건을 다뤄야 하기에 그 사건의 뒤에 모피아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블랙머니'는 사건이 벌어지고 양민혁 검사가 얽힌다. 그래서 이 친구가 하나씩 사건의 실체를 캐는 걸 관객이 따라가면 되도록 설계했다. 이 친구가 성질이 급해서 영화도 속도있게 전개된다. BIS 조작을 소개하고 불방된 'PD수첩' 부분이 나오고 은행을 팔아넘기는 데 한국인이 배후에 있다는 걸 빠르게 알려준다. 그런 정보를 누가 알고 누가 접근해서 할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모피아라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다가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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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사진=이기범 기자


-거대 로펌도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데. '블랙머니'에선 3억짜리 술을 먹으면 악이고, 소주를 먹으면 선인 것처럼 그려지는데. 3억 짜리 술도 총각김치랑 같이 먹으면 선인 것처럼 그려지고.

▶그런 이분법보다는 3억짜리 술과 소주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3억짜리 술이 있다더라. 가진 자의 과시를 의도했다. 그걸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을테고, 뭐 저런 놈이 다 있나라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3억짜리 술을 양민혁이 그냥 갖고 와서 총각김치랑 먹는다. 버리고 와도 되는데 굳이 갖고 와서 먹는다. 그런 괴짜 같은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문성근이 맡은 거대 로펌 대표, 연봉 1000억원을 받는다는. 양민혁 검사와 대화하는 도중 VIP의 전화를 받는데. 당시 VIP면 MB인가.

▶MB다.

-부시 전 대통령은 영화 속에서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MB는 실명이 아닌 VIP로 거론한 이유는.

▶대사랑 안 맞아서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 전화입니다,라기 보다 VIP입니다,가 더 좋은 대사 아닌가.

-검찰 개혁이 최근 화두인데. 이 영화 속에서도 그런 부분이 담겨 있기도 한데.

▶검찰 개혁은 요즘에 화두가 돼서 그렇지,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했다. 영화 속에선 검찰 간부의 모습은 전형성이 있다. 조한철이 그걸 입체적으로 잘 표현해서 검찰 개혁과 맞닿아 있도록 보이게 했다.

-정지영 감독은 스크린독과점과 대기업 수직계열화를 반대해왔다. 그런데 차기작인 '고발'은 CJ ENM과 같이 한다. 모순 아닌가.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두고 우리끼리 논란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지금 하기에는 이른 것 같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다. 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스크린독과점을 반대하면 CJ랑 일하지 말아라,라고 하면, 그걸 위해 싸울 사람들이 적어진다. 봉준호 감독이 CJ와 일하면서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줘야 한다. 우리가 전두환 정권 반대를 이민 가서 한 게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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