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건 감독 "'신의 한수: 귀수편' 내 삶과 닮았다"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1.07 14:50 / 조회 :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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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수: 귀수편'을 연출한 리건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영화밥을 먹기 시작한 지는 오래다. 중학교 때 '영웅본색'을 보고 영화일을 꿈꿨다. 영화로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구에서 영화 공부하려 서울 와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대학교 재학 시절 영화아카데미부터 시작해 2000년부터 상업영화판에서 본격적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2006년 장률 감독의 '경계'에 조감독으로 몽골에서 함께 하다가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 원래라면 3개월 정도 치료받고 쉬면 완치될 수 있었지만 현장 상황상 계속 일하다 병을 키웠다. 완치하는데 2년,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다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미 좋은 후배들이 빈 자리를 꿰찼다. 3D영화 일을 하면서 버텼다. 상업영화판에 복귀하기까지 5년이 흘렀다. 그때 '신의 한수: 귀수편'을 만났다. 2015년 여름, 인연이 있던 PD의 연락으로 '신의 한수: 사활편' 제작자 황근하 대표와 연이 닿았다. 황 대표와 유성협 작가, 리건 감독 셋이서 '신의 한수: 귀수편'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한국 나이 마흔다섯, 리건 감독은 첫 상업영화 연출작 '신의 한수: 귀수편'을 11월 7일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리건 감독은 "귀수란 캐릭터와 동질감이 컸다"고 했다. 그의 삶과 닮고, 그의 삶을 담아 그렇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약간 포함합니다.

-왜 '신의 한수: 귀수편'을 연출했나.

▶2015년 여름, 인연이 있던 PD의 연락으로 황근하 대표를 만났다. 연출 제안을 받고 '신의 한수: 사활편'을 쓴 유성협 작가님과 1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유 작가님과 1년 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했다. '귀수편' 이야기는 안 했다. 내 삶과 귀수란 캐릭터에 동질감이 컸다. 그러다가 2016년 가을 즈음에 작가님이 이제 리건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시나리오를 고치자고 하더라. 난 '신의 한수: 귀수편'이 도장깨기 형식의 단순 플롯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귀수(권상우)를 무협영화 최고수처럼 연출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작가님과 대표님이 그러면 인물마다 다른 장르로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하더라. 15~60세까지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하더라.

-정적인 바둑을 어떻게 동적으로 그리려 했나. '신의 한수: 귀수편'은 각 스테이지마다 중간 보스들을 깨고 마지막에 최종 보스와 만나는 형식인데.

▶바둑이란 게 앉아서 두는 것이니 이걸 어떻게 동적으로 보이게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각 인물마다 장르적인 색깔을 입혔다. 각 캐릭터마다 바둑 스타일과 공간까지 같이 고려했다.

장성무당(원현준)은 귀수가 누나를 극복하고, 잡초(허성태)는 아버지를 극복하고, 외톨이(우도환)는 귀수가 마지막 대결 전 과거의 자신을 보게 하고, 황사범(정인겸)과 싸워 결론을 내는 그런 각각의 의미도 담았다. 사실 편집이 됐는데 귀수와 잡초가 대결하는 기찻길은 귀수가 친아버지를 잃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야기한 것처럼 각 중간보스들이 캐릭터도 명확 할 뿐더러 장르도 다른데. 이런 캐릭터들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반복되는 도장깨기 구조를 흥미진진하게 이끄는데.

▶장성무당은 이 영화의 문지기다. 영화의 톤을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키이기도 하다. 좀 더 만화 같은 채색으로 이야기를 안내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환영도 보이고 한가지 색으로 두는 일색바둑이란 설정을 뒀다. 일색바둑은 인생이 한판의 바둑이라지만 누가 이기고 지는지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도 불나방처럼, 마치 내 인생처럼, 이기고 지는지도 잘 모르겠는 싸움을 하는 걸 담고 싶었다.

잡초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똥선생(김희원)의 음지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잡초는 귀수와 기찻길 대결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이 "기나긴 터널에서 잡초처럼 살아간다"며 속을 드러낸다. 그런 그의 성질 급한 속기 스타일과 달려 오는 기차와 충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귀수가 아버지를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도 담으려 했다.

외돌이는 귀수의 거울 같은 아이다. 내기 바둑으로 아버지를 잃은. 귀수가 최종목표를 이루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 영화에선 외톨이가 사석바둑을 두는데 실제로 사석바둑은 잘 두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만든 건, 외톨이가 아버지의 죽음에 갇힌 아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사석바둑판은 사실 외톨이의 아버지가 떨어진 용광로의 쇳물로 만들었다는 설정이다.

황사범과 대결은 프로기사 100명과 다면기다. 정말 말이 안되는 설정이다. 바둑을 조금만 아는 사람은 프로기사 100명과 다면기라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이고 말이 안 되는지 알 것이다. 그만큼 귀수가 절대 고수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전편인 '신의 한수: 사활편'은 바둑보다 액션이 전면에 있었는데 '신의 한수:귀수편'은 바둑이 전면에 있고 액션은 뒤에 있는데. 그러면서도 액션마다 바둑대결처럼 콘셉트가 명확한데.

▶작가님과 대표님이 '신의 한수: 사활편'에서 어차피 싸울 거면 바둑은 왜 두냐는 지적에 가슴이 아팠다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보다 바둑에 초점을 뒀다. 총 3개의 액션이 있는데 전제는 "명분을 지키자"였다. 졌다고 판을 뒤엎는 것은 없도록 하자였다.

귀수와 처음 맞붙는 갈고리눈은 그동안 귀수가 참았던 분노를 표출하는 콘셉트였다. 어린 귀수가 좁은 골목에서 얼굴을 갈리면서 도망갔던 걸 반대로 돌려주는 장면이다. 이제 액션을 시작합니라,라는 안내이기도 하고.

두 번째 화장실 액션 장면은,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맘껏 즐기시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한 번 졌던 갈고리눈이 부하들과 찾아오는데 암흑 속에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싸운다. 이 어둠 속의 불빛은, 이 장면에 앞선 기차 불빛과 연동돼 느껴지길 바랐다.

외톨이와 용광로 액션 장면은 전편에서 정우성의 냉동고 액션이 시그니처였으니 이번에는 정반대인 액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외톨이는 약한 아이다. 그래서 송곳으로 한 번 찌르고 승부를 벌인다. 우도환을 캐스팅할 때부터 아이 같고 순수한 모습이 그런 점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을 결합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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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수: 귀수편'을 연출한 리건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신의 한수: 귀수편'은 많은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남자 주인공의 복수를 위해 여자 캐릭터가 희생된다. 또 그의 복수를 위해 최종보스의 딸을 납치하고. 꼭 그래야 했나.

▶정말 많이 고민했고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전편에서 형의 복수였기에 이번에는 아버지와 누나의 복수로 생각했는데, 편집과정에서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누나가 더 부각 됐다. 난 내 삶에 담긴 것들이 있기에 끊임없이 가족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가족 이야기의 연장이다.

악인이 주축이 되는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신 피해 당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를 일부러 하지 않았고, 설명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더라도 최대한 편집했다. 황사범의 딸 같은 경우는 아들도 고려했다. 그 역할을 놓고 남자, 여자 모두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스테파니 리가 제일 잘했다. 더 잘하는 사람이 없더라.

-똥선생과 홍마담(유선)의 러브라인은 굳이 있어야 했나.

▶이 영화에선 똥선생만 실존 인물이고 다 가상의 인물이다. 똥선생은 유성협 작가의 지인 중 한 분을 모델로 했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영화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둘의 행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협 서사 형식이라 그런지, 귀수와 똥선생의 여정이 '타짜'와도 닮은 듯 한데. '타짜' 역시 무협 서사를 바탕으로 했고.

▶'타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첫 영화니깐 정면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구조를 택한 건 만화적인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무방하지만, 영화 속 기보는 실제 바둑 기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던데. 그렇다면 그 기보의 흐름대로 연출도 해야 했기에 쉽지 않았을 법한데. 마지막 황사범과 대결 기보는 엔딩을 보면 흐름까지 연출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했을테고.

▶실제 프로기사님의 도움으로 기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보대로 연출 리듬을 맞췄고. 기사님이 일주일이면 된다고 했는데 6개월 걸렸다. 실제 있는 기보도 있고, 만든 기보도 있다. 100면 대국의 기보도 하나하나 만들고, 실제 있는 기보를 차용하기도 했다. 나중에 그 기보를 프로기사 30분에게 감수를 받았다.

-아이디어 중 영화에 담지 못한 설정은 어떤 게 있나.

▶알파고 같은 인물과 대결이 있었다. 중국에서 온 마치 기계같이 모든 기보를 외우고 풀어내는 인물. 그런데 준비하다 보니 알파고가 현실에 나와서 고심 끝에 뺐다. 바둑알 대신 사람이 서 있는 걸 고민하기도 했다. '해리포터'의 체스처럼 각 바둑알 대신 서 있는 사람들과 액션을 결합시키는 걸 생각해서 콘티까지 짰다. 그러다가 결국 여러 이유로 빼고 100면 바둑으로 바꿨다.

-만화적인 영화란 건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좋다는 평과 말이 안된다는 평을 동시에 받을 수 있고. 이 양날의 검을 뚝심 있게 밀고 간 것 같은데.

▶만화적인 톤을 안착시키기 위해 장성무당 장면부터 달리기 시작한다고 결정했다. 그렇게 뚝심있게 이건 이런 이야기입니다라고 밀어붙이려 했다. 대신 이야기가 만화 같으니 연기만큼은 정극으로 하자고 했다. 그래서 똥선생을 맡은 김희원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감초 역할이고 웃겨야 하는 역할인데 진지하면서도 웃겨달라고 했으니깐.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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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와 잡초의 기찻길 장면/'신의 한수: 귀수편' 스틸


-영화 속 색이 전반적으로 어둡다. 반면 귀수(권상우)가 마지막 황사범과 대결에서 입는 옷은 전편에 정우성이 입었던 것처럼 하얀색인데.

▶귀수의 인생이 길고 긴 터널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참 힘들 때 오늘이 제일 힘든 날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늘이 매일 반복됐다. 귀수의 인생처럼 이 영화가 보여지길 원했다. 어둡기만 하지는 않고 좀 더 묵직한 느낌이길 바랐다.

흰색 옷은 전편의 결을 맞추는 것이기도 하고, 귀수가 영화에서 처음으로 흰 돌을 쥐는 걸 더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바둑은 고수가 흰 돌을, 하수가 검은 돌을 잡지 않나. 프로 최고수인 황사범과 대결인데 흰 돌을 잡는 걸 보여줘서 그 순간부터 귀수가 최고수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누이의 단추색깔이랑 맞기도 하고.

-귀수 역을 맡은 권상우는 어땠나.

▶1편의 정우성과 견줄만한 배우여야 했다. 준비할 때 사람들이 바둑 최고수인데 싸움도 잘하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그런데 권상우가 캐스팅되니 그런 소리를 안 하더라. 우리 영화에 누가 제일 어울릴까를 생각할 때 눈빛에 서정성이 담겨 있어야 했다. 권상우는 그런 눈빛을 갖고 있고, 액션에 대한 믿음을 준다. 권상우는 몸이 나갈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그래서 거기에 맞는 액션을 디자인했다. 정말 성실히 열심히 최고로 잘 해줬다. 자기가 카메라에 안 잡히는 장면에도 상대 배우들의 연기에 일일이 현장에서 리액션을 다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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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무당을 맡은 원현준/'신의 한수: 귀수편' 스틸


-장성무당을 한 원현준은 정말 잘했는데.

▶사수인 곽경택 감독님에게 추천을 받았다. 곽 감독님 모친상에 갔는데 준비 잘 되고 있냐면서 "재밌는 놈이 있는데 만나볼래"라고 하셨다. '암수살인'에 짧게 등장하는데 뭔가 있다는 것이었다.

장성무당이 매우 중요했기에 계속 오디션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원현준과 미팅을 했다. 앞에 앉아있는데 영화 이야기할 때 두 번 빼고는 눈을 안 마주치더라. 바로 하자고 했다. 그런 모습에서 뭔가를 느꼈다. 난 촬영하기 전에 배우와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고 현장에선 별로 이야기를 안 한다. 자칫 내 디렉션이 배우가 현장에 준비해온 것을 어그러뜨릴 수 있으니깐.

원현준과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일주일에 3~4번씩 만났다. 준비한 걸 보기도 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지켜봤다. 그가 하는 가게에 몰래 가서 숨어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 연기하지 말고 그냥 자기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영화에 쓰인 장면은 원래 오케이컷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남아 카메라 감독님과 상의한 뒤 원현준에게 이야기했다. 카메라 두 대로 클로즈업을 할 테니 다 쏟아내보라고. 거기서 지금 영화에 쓰인 장면이 나왔다. 권상우가 카메라 밖에서 그대로 연기해줬다. 원현준이 그 연기를 마친 뒤 나와서 펑펑 울더라.

-'신의 한수' 다음편이 또 나온다면 연출할 생각이 있는가. 한중일 바둑 삼국지 같은 이야기랄지.

▶현재로선 없는데 좋은 이야기로 불러준다면 다시 생각해볼 것 같다. 다음 영화도 가족 이야기로 생각하고 준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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