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우희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며 '버티고'

김미화 기자 / 입력 : 2019.10.1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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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버티고' 포스터


남몰래 사내 연애 중인 계약직 직원. 지방에 홀어머니를 두고 수도권에서 홀로 자취하며 살아가는 30대 여성. 재계약은 불안하고, 믿고 있던 남자친구는 충격적인 이유로 자신을 떠난다. 엄마는 딸에게 경제적 정신적인 부양을 바라기만 하고, 과거 아빠에게 맞아서 터진 고막에서는 계속해서 이명이 들리고 현기증이 난다.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는 삶의 끝자락에 놓인 30대 여성 서영(천우희 분)의 삶을 스크린에 풀어냈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고, 사회에 휘둘리고 가족과 사랑에 휘둘리는 서영의 모습은 때로는 공감 가고, 때로는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진다.


고층 빌딩의 사무실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서영은, 가녀린 외형만큼 인생도 아슬아슬하다. 어쩜 그녀에게는 이렇게 힘든 상황만 이어지는지, 옆에 있다면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다.

천우희는 그 힘든 삶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견디는 서영의 모습을 오롯이 표현해냈다. 동료 같지만 남인 사람들을 대하는 무표정, 서영에게만 유난히 버거운 고통, 흘러내리는 눈물을 숨기고 울 곳을 찾아다니는 현대인의 애처로운 표정까지. 도화지 같은 천우희의 얼굴에 하나씩 펼쳐진다. 그동안 카리스마 강한 역할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천우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힘든 세상에서 버려진 것만 같은 서영의 일상을 차분하게 표현해낸다. 쉴 새 없이 들이대는 카메라 클로즈업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고 서영의 감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더욱 아프고, 고통스럽다.

서영에게는 가족도 힘이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딸을 때려서 고막을 찢어지게 한 아버지 때문에 서영은 이명과 현기증에 시달린다. 엄마는 끊임없이 남을 원망하며 딸을 괴롭힌다. 자신을 남미로 데려가 줄 것이라고 믿었던 남자친구는, 위선자다. 그렇게 일상을 버티게 했던 서영의 끈이 하나씩 끊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잔인하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다. 그런 서영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순간 로프공 관우(정재광 분)가 구원이 됐다.


'버티고'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힘든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손을 잡아주고,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관계에서 얻은 고통을, 또 다른 관계로 회복할 수 있다고도 암시한다. '버티고' 속 서영에게는 그 존재가 바로 고층 빌딩을 청소하던 로프공 관우였던 것이다.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관우는 고층 건물 밖에서 바라보던 서영에게 마음을 주고, 그녀의 손을 잡아 준다.

천우희가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 덕에, 로프공의 등장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독한 현실에 뿌리내린 서영의 구원이 '고공의 키스' 같은 판타지로 표현되며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은 관객에게 닿기 힘든 듯 하다. 쌓아온 감정을 폭발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이명 증상에 괴로운 서영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관객을 어지럽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멀미가 나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버티고'는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버티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천우희가 보여준 새로운 얼굴이 이 영화의 버팀목이다. 멜로 영화를 하게 돼 좋다고 말한 유태오의 캐릭터 진수는 중반 이후 매력을 잃고 사라져 버린다. 로프공 연기를 위해 자격증까지 딴 정재광의 캐릭터는 건물 밖 유리창에 매달려 부유한다. 천우희의 연기력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극단적인 서영의 선택과 판타지적 결말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이 갈릴듯 하다.

10월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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