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2년생 김지영' 2019년 최고 화제작에 걸맞다 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0.15 10:20 / 조회 :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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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최고 화제작에 걸맞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사실만으로 두들겨 맞았다. 배우 출연 소식에 악플이 쏟아졌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제작을 못하게 해달라는 글이 올랐다. 수없는 비토보다 더 중요한 건, 원작을 어떻게 영화로 만들고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있었을 터. '82년생 김지영'은 그 벽을 훌륭히 넘었다.

김지영은 오늘도 정신없이 아기를 돌본다. 밥을 먹이면 허리를 펼새 없이 빨래를 한다. 울다 지친 아기를 업고 청소를 한다. 간신히 잠든 아기를 뒤로 하고 노을 지는 하늘을 본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숨을 제대로 토해내지도 못했는데 다시 아기가 운다.

남편 대현은 그런 지영이 안쓰럽다. 퇴근하자마자 아기 목욕을 맡는다. 이번 명절에는 시댁에도, 친정에도 가지 말자고 한다. 지영은 "진작 그렇게 하자고 하지 그랬냐"며 웃는다.

시댁은 어렵다. 좋은 남편이 돕는다고 도우면 시어머니의 빈정이 뒤따른다. 이제야 친정에 가나 싶었는데, 시집간 시어머니 딸이 막 도착했다. 상을 다시 차려야 한다. 어느 순간 김지영에게서 보고픈 친정 엄마가 튀어나온다. "사부인, 저도 우리 딸 보고 싶어요. 보내주셔야 보죠."

지영은 외롭다. 지영이 외로운 건 육아를 오롯이 떠안으면서 자기를 잃은 탓이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선 남자들에 치여 기회를 놓치곤 했다. 그래도 존경할만한 여자 상사가 있고, 동료가 있었다. 자기가 자기로 존재할 수 있었다. 파트 타임 알바라도 한다면, 숨을 쉴 수 있을까. 지영은 대현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좋은 남편 대현은 "누가 하고 싶지도 않은 일 하라고 했냐"고 한다. 어느 순간 김지영에게서 대학 시절 친한 선배, 애 낳다가 죽은 언니가 튀어나온다. "우리 지영이, 외롭게 하지 마.."

'82년생 김지영'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기획부터 제작, 개봉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감자였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보편적인 사실을 나열한 게 누군가에게는 못 견디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 점이 '82년생 김지영'의 힘이다. 못 견디지 말라며 손을 내민다. 담담하게 공감토록 한다. 절반에는 위로와 응원을, 절반에겐 공감을 전한다. 배우 출신인 김도영 감독은 상업영화 데뷔작에서 놀랍도록 감정의 밀도를 조율해 공감토록 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스릴러 같다. 화장실에 설치된 몰카와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데 뒤에서 '맘충'이라 욕하는 사람들, 유모차 주위에서 들려오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집에서 편하게 먹고 살면 좋겠다는 말들만 공포가 아니다. 보편적인 상황의 나열을, 단지 상황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따뜻해야 할 집의 색을, 때로는 밝게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주홍빛으로 나눠 공포를 전한다. 그리고 그 빛들을 김지영을 맡은 정유미의 말간 얼굴에 포갠다. 배우 얼굴을 담은 클로즈업이 유독 많은데도 버겁지 않고 끌려 들어가는 건, 정유미의 연기뿐 아니라 빛을 포갠 덕이다. 그리하여 공포지만 공감시킨다.

'82년생 김지영'은 김지영을 통해, 김지영으로, 대한민국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직접적이다. 원작처럼 빙의 또는 해리성 장애를 통해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오빠들 공부시키려 자기 꿈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한 엄마, 똑같이 공부하고 귀하게 자랐건만 승진에서 치이는 여자 동료들, 애 낳다가 죽은 친한 언니, 밤거리가 무서운 여고생, 당신은 힘들게 살았지만 힘든 딸 아기 키우는 건 제 몫이라며 우는 엄마. 주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건, 자칫 위험하다. 설교나 훈계나 교육이 되기 쉽다. '82년생 김지영'은 이 주제를 호소력 짙게 전달한다. 배우들의 공이 매우 크다.

김지영을 맡은 정유미는 매우 매우 좋다. 보편적인 얼굴로 어느새 공감시킨다. 악을 쓰지도, 감정을 토해내지도 않는다. 꾹꾹 눌러 담았다가 스르륵 감염시킨다. 정유미가 가슴이 막히면 같이 막히고, 자존감이 낮아지면 같이 낮아지고, 웃으면 같이 웃게 만든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면 그건 네 탓이 아니라고 위로를 건네고 싶게 만든다.

김지영의 엄마 미숙 역을 맡은 김미경은, 엄마 같다. "내 새끼"라는 말의 울림을 진심으로 전한다. 좋은 남편 대현 역의 공유는 아쉽다. 공유는 아직 좋은 남편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좋은 남편을 연기하진 못했고, 좋은 사람을 연기했다. 그 덕에 영화가 한층 부드러워지긴 했다. 그건 공유란 배우가 가진 미덕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은 강요하지 않는다. 상황을 포개되 웃음을 잊지 않는다. 감정을 쌓되 절규하지 않는다. 그저 알고 있는 사람에겐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알고 있지만 모르며 살아온 사람에겐 같이 알자고 권한다. 스르륵 감염되고, 공감하게 만든다. 2019년에 당도한 게 아쉽고, 반갑다.

10월 2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추신. 원작과 결말이 다르다. 정신과 의사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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