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기 감독이 밝힌 #판소리복서#엄태구#혜리#최준영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0.14 11:16 / 조회 :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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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복서' 정혁기 감독/사진=이동훈 기자


강원도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뒀다. 그냥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뭘 해야 할지를, 무엇을 하고 싶을지를 생각했다. 영화가 하고 싶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다가 저렇게 감동 주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영화과와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서울로 통학을 하면서 영화과 입시를 준비했다. 다 떨어졌다. 그러다가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본 한예종에 덜컥 붙었다. 그렇게 영화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정혁기 감독(35)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판소리 복서'를 만든 것도 닮았다. 스스로 뚜벅뚜벅 걷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쌓아 그렇게 세상에 선보였다. '판소리 복서'는 판소리 복싱으로 세계 최고를 꿈꿨던 병구가 과거의 실수로 모든 걸 잃었다가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복싱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정혁기 감독의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을 장편으로 만들었다. 장편으로 만들면서 더 풍성한 이야기로 결이 다듬어졌다. 정혁기 감독의 영화삶과 닮았다.

-'판소리 복서'는 어떻게 하게 됐나.

▶시작은 한예종 동기인 조현철 때문이었다. (조현철은 '뎀프시롤: 참회록' 각본과 주연으로 참여했다) 운동장에서 조현철과 같이 앉아있었는데 어디선가 장구 장단 소리가 들렸다. 당시 조현철이 복싱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 장단에 맞춰 쉐도우 복싱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영화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다. 판소리 복싱을 하는 이야기로 짧게 시놉시스를 쓰고, 거기에 다시 살을 붙였다.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여러 아이디어를 냈는데 '뎀프시롤: 참회록'이 가장 좋다는 의견이 많아서 그렇게 했다. '뎀프시롤'은 일본만화 '더 파이팅'으로 익히 알고 있었는데, 조현철이 판소리 복싱을 하는 모습이 뎀프시롤과 비슷해서 따왔다. 참회록은 그때 단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미안함이어서 그렇게 담았다.

-어떻게 장편 프로젝트가 됐나.

▶2015년에 제작사 플룩스 안은미 대표가 단편을 보고 연락을 줬다. 장편으로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단편에서 장편으로 만드니 이야기를 덧붙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단편에서 삭제한 이야기를 덧붙이다보니 설명하는 이야기가 돼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서를 더 확장시키자고 생각하고 지금 이야기로 만들어갔다. 단편에서 미안함을 담았다면 장편에서 미안을 넘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다시 링에 서기까지 주위에서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런 정서를 담으려 했다.

-주인공이 단편에선 조현철이었는데 장편에선 엄태구로 바뀌었는데.

▶조현철은 처음부터 시나리오에만 참여하고 빠진다고 했다. 당시 건강도 안 좋았고, 그 뒤에 배우로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실 엄태구도 처음에는 조현철이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엄태구도 단편을 좋게 봤다고 하더라. 엄태구는 화제가 된 작품들에선 강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단편과 독립영화들에선 정말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다. 순박하고 착한 모습. 이 영화의 병구 같은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강한 이미지를 반전시켜서 보여주면 관객에게 더 새롭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다.

-병구는 영구, 맹구 같은 이름들과 비슷하게 만든 것인가.

▶그렇다. 영구, 맹구처럼 코믹하게 들리길 바랬다.

-'판소리 복서'의 다른 이름들은 어떻게 지었나.

▶단편에 출연한 배우들 이름을 그대로 썼다. 단편에는 배우들이 본명으로 출연했으니깐.

-판소리 복싱이라는 게 자칫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걸 영화 속 세계관에 어떻게 녹이려 했나.

▶애초에 판소리복싱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고 전제하고 들어갔다. 이걸 영화 속에서 구구절절 설명하게 되면 너무 늘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병구가 펀치드렁크가 있다고 설정했으니, 이 설정을 영화적인 도구로 활용하자고 마음먹었다. 펑치드렁크 증상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이 번쩍 들어오는 것처럼 활용했다.

-판소리 복싱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며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한 패러디도 사용했는데.

▶YS가 한 말을 코미디로 인용한 것인데 요즘 관객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나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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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와 혜리, 김희원 '판소리 복서' 스틸


-병구 역의 엄태구, 민지 역의 혜리, 박관장 역의 김희원 등은 영화에 개성을 잘 살리는 동시에 시너지가 아주 좋았는데.

▶캐스팅을 한 뒤 일대일 리딩, 셋이 함께 하는 리딩 등 리딩을 많이 했다. 배우들의 개성을 최대한 끌어내려 했다. 엄태구는 늘 진심을 다하려 하고 순수하다. 혜리는 특유의 주위를 밝게 해주는 기운이 있다. 김희원은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찍기 전에 프리 프로덕션에서 최대한 리딩을 많이 해서 톤을 정하고 다시 촬영을 할 때는 장소와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담아 애드리브 등을 정했다.

-롱테이크가 많고 편집이 판소리 장단과 붙어있는데.

▶판소리를 소재로 하기에 편집도 그런 리듬을 담으려 했다. 내용과 형식을 맞추려 편집했다.

-지연 역의 이설은 늘 하얀색 한복을 입고 등장해 장구를 친다. 가장 이질적인데 오히려 이질적이지 않고 당연한 듯 녹아들었는데.

▶이설은 오디션을 통해서 캐스팅했다. 하얀 한복처럼 흰색 계열 옷을 입고 왔다. 아우라가 너무 좋았다. 지연은 영화 속에서 자칫 붕 뜰 수 있는 캐릭터다. 병구의 옛 연인이었을 수도 있고, 귀신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다. 어쨌든 병구에게만 보이는 존재니깐. 그래서 왜 한복을 입지, 왜 이상하게 그렇게 등장하지, 란 생각이 안 들도록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판소리복싱처럼 지연도 하얀 한복 입고 장구 치는 게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연기해달라고 했다. 이설이 정말 잘했다.

-교환 역의 최준영은 자기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영화에 잘 녹아있는데.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인데.

▶정말 대단한 배우다. 오디션 마지막 즈음에 만났다. 감사하게도 교환 역에 관심을 가진 좋은 배우들이 많았다. 최준영을 만나기 전에 그 배우들 중 한 명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다. 그런데 최준영은 자기 색깔을 넣으면서도 묘하게 영화에 맞춰서 살린다. 특유의 억양이 있는데 그걸 영화에 맞게 완급 조절을 잘 한다.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원래는 몸집이 좀 더 있는데 영화에 맞춰 감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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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복서' 정혁기 감독/사진=이동훈 기자


-'판소리 복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것들을 담았다고 했는데.

▶이 영화는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갖고 링에 같이 올라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공통된 것들이 있어야 했다. 병구에게는 복싱, 민지에게는 필름 카메라, 박관장에게는 낡은 체육관, 그렇게 세월에 밀려가는 것들을 공통점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세월에 밀려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담으려 했다.

-강아지 포먼을 출연시킨다는 건 그만큼 강아지 연기에 맞추기가 쉽지 않은 걸 알고서 들어간 선택일텐데.

▶우선 내가 유기견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만큼 포먼에 대한 이야기를 꼭 넣고 싶었다. 약한 병구가 더 약한 포먼과 같이 살고, 포먼이 그렇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이어지게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강아지와 연기를 같이 하는 게 쉽지 않아서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었다. 영화에 대단히 중요한 장면은 아닐지라도 그 이야기를 꼭 넣고 싶어서 다들 같이 고민해줬다.

-영화 순서대로 촬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같은 장소 장면은 다 몰아서 찍었다던데. 같은 장소라도 감정들이 다 달라서 배우들이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처음부터 순서대로 찍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컨대 오프닝 장면과 엔딩 장면도 바로 이어서 찍었다. 그렇기에 리딩을 철저히 하면서 각 장면의 감정을 다잡았다. 그걸 배우들이 정말 잘 해줬다. 엄태구는 자기 방인 콘테이너 장면을 하루에 몰아서 찍었는데 각 장면마다 다른 감정을 정말 풍부하게 연기해줬다.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복싱 장면은 매 라운드마다 어떤 콘셉트로 찍었나.

▶1. 5회차 정도로 찍었다. 1라운드는 여느 복싱 영화처럼 샷을 쪼개서 경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실제 경기를 옆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담으려 했다. 2라운드는 처음으로 병구가 판소리복싱을 시작하는 걸 담으려 스테디캠으로 찍었다. 3라운드는 처절하게 맞는 모습을 담으려 핸드헬드로 찍었다. 4라운드는 판소리 복싱이 터지는 모습을 담기 위해 달리와 풀샷, 부감으로 풍성하게 담았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한풀이, 흥의 폭발 같은 걸 담으려 했기에 마지막 펀치를 그렇게 설정했다.

-다음 작품은.

▶사랑과 희생, 이런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난 사라져가는 것들, 놓치고 있는 것들, 낡은 것들에 대해 끌리는 것 같다. '판소리 복서'는 우걱우걱 한 걸음씩 걷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완성했다. 이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닮았다. 그래서 다음 영화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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