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구 "'판소리복서' 이상하고 웃기고 슬픈 이야기"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0.11 14:22 / 조회 : 2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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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엄태구가 '판소리복서'(감독 정혁기)로 돌아왔다. 한때 판소리복싱으로 세계 제일을 꿈꿨으나 이제는 펀치드렁크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남자 병구를 맡았다. 엄태구는 '판소리복서'에서 순한 얼굴과 멍한 얼굴과 독한 얼굴과 각오한 얼굴을 보여준다. 이 배우의 넓은 스펙트럼을 114분에 고루 담아냈다. 더 넓어진 배우 엄태구를 만났다.

-'판소리복서'는 왜 했나.

▶정혁기 감독의 단편 '뎀프시롤'부터 팬이었다. ('판소리복서'는 정혁기 감독의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을 장편으로 만든 영화다) 장편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는데 내게 제안이 와서 기분이 좋았다.

-'뎀프시롤'은 이상하고 좋았던 단편이다. 왜 이 장편 프로젝트에 끌렸나.

▶바로 그 이상하고 좋은 게 좋았다. 이상하고 웃긴 데 슬프기도 하고, 쟤네 뭐하지, 그렇게 기분이 이상해지는 게 좋았다. 내 취향이었던 것 같다. 관객들도 이런 기분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편에서 주인공을 맡은 조현철과는 '차이나타운'부터 인연을 갖고 있었는데.

▶단편에서 워낙 조현철이 잘했다. 그래서 팬으로서 정혁기 감독님에게 단편에서 장편으로 만들어질 때 "이건 현철이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씀 드리기도 했다. 감독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잘 할 것이라고 믿어주셔서 하게 됐다.

-시간 순서대로 찍지 않았다. 첫 촬영이 교환(최준영)과 그의 할머니와 만나는 장면이었고, 방에서 찍은 장면은 각 테이크마다 감정이 다 다른데 몰아서 찍었다. 교회에서 찍은 장면도 몰아서 찍었고. 매 장면마다 감정폭이 매우 달라 순서대로 찍지 않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매 신을 찍을 때 제일 크게 생각한 건, 전 상황이었다. 바로 직전에 뭐 했지, 그걸 계속 생각했다. 거기에 감독님이 더 디렉션을 주면 덧붙이려 했다.

-상대역인 혜리와 호흡은 어땠나.

▶너무 좋았다. 혜리는 밝은 에너지가 있다. 촬영할 때, 촬영하지 않을 때, 둘 다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거기에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캐릭터 안과 밖에서 다 밝은 에너지를 줘서 내가 거기에 업혀서 넘어갔다. 나도 그렇고, 내가 연기한 병구도 그렇고 혜리에게 감사한 부분이다.

-'안시성'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설현과는 어떻게 다르던가.

▶둘 다 너무 달라서 그래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설현과는 둘 다 낯을 많이 가려서 평소에도 대화를 잘 안하고 캐릭터로 만났다. 그 점이 영화 속 캐릭터와 많이 닿아서 좋은 영향이 있었고 많이 배웠다. 혜리는 평소에도 편하게 사람을 대해서 그런 편안함이 지금 이 캐릭터와 호흡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과거 판소리복싱으로 세계 제패를 같이 꿈꿨던 지연 역의 이설과 호흡은.

▶이설은 영화 안에서는 어둡지만 실제로는 혜리만큼 밝다. 조금 다른 밝은 지점이 있다. 내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 점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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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복서' 스틸


-복싱 연습은 어떻게 했나. 어깨 부상도 입었다던데.

▶2~3달 정도 꾸준히 배웠다. 선수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정말 힘들더라. 가르쳐주신 코치님과 목표를 높게 잡았다. 진짜 선수들이 봐도 가짜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운동 안 하던 사람이 매일 5시간씩 복싱 연습을 하다보니 몸에 무리가 오긴 했다. 몸 안에 염증이 생기기도 했고. 지금은 다 좋아졌다.

-영화에선 플라이급이라 61kg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많이 빠졌을 때 66kg까지 빠졌다. 지금 박훈정 감독님의 '낙원의 밤'을 찍고 있어서 72kg으로 늘렸다.

-판소리 복싱이라는 게 특이한데. 어떻게 구현하려고 했나.

▶촌스럽지만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조현철과 동기인데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누가 판소리를 하는데 현철이가 그 장단에 맞춰서 복싱을 하는 걸 보고 착안했다고 하더라.

판소리복싱이 판타지로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장단을 들으면서 복싱 동작을 배운 것과 접목시키려 했다. 전문가분들에게 보여주면서 의견을 구했다. 한신 한신 진짜처럼 최대한 보이도록 최선을 다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보시는 분들에 따라 판소리복싱이 택견이나 탈춤처럼 느끼진다고 하더라. 그것도 좋은 것 같다.

판소리복싱을 연습하는 장면은 롱테이크로 많이 찍다보니 한 번 하면 쓰러질 것 같긴 했다. 평소 운동을 더 많이 할 걸 그랬다.

-마지막 복싱 경기 장면 촬영이 정말 중요하고 한편으로는 어려웠을 법한데.

▶최대한 타이트하게 찍었다. 매 라운드마다 감독님과 무술감독들과 상의를 했다. 특히 4라운드는 판소리복싱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라 고민이 많았다. 아예 옆돌기 같은 말도 안되는 액션을 할까, 실제랑 흡사하게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두 가지 버전을 다 찍고 섞어서 편집했다.

-강아지인 포먼과 연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강아지는 강아지이기에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었다. 예컨대 강아지가 아파서 누워있는 장면을 찍는데 꼬리를 흔들어서 다시 찍었다. 될 때까지 계속 했다.

-강한 역할을 한 영화들이 더 잘 알려지다보니 상대적으로 코믹한 연기는 덜 알려졌는데. 이번에는 두 모습을 다 보여주는데.

▶각각의 연기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악역을 할 때는 안에서 계속 화난 것 같은 감정을 유지해야 해서 힘들다. 반면 코믹한 걸 한 때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 대신 코미디는 누군가를 웃긴다는 게 대단히 부담스럽다. 그저 진실되게 하는 게 목표였다.

-약점으로 꼽혔던 딕션이 이번 영화에선 한층 좋아졌는데.

▶항상 그렇듯 매일 성경을 또박또박 읽었다. 그런 연습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박관장으로 나온 김희원이 영화에 울타리 같은 역할을 했는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에 항상 앞에 장면을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런 점에서 김희원 선배님의 연기가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진짜처럼 해주셔서 병구 같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선배님은 사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분이다. 여러 면에서 정말 배울 점이 많고, 도와주시고 챙겨주시고 아껴주신다. 둘 다 술을 잘 안해서 찻집을 옮겨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 보듯, 아들 보듯 하는 관계라 더 깊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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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판소리복싱처럼 실제 엄태구가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연기라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고 있다. 매 작품이 도전이다.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붙잡고 있다. '판소리 복싱'에서 언제가 다 사라지고 잊혀진다는 대사가 있다. 온 몸으로 그 대사가 와닿았다. 깊게 고민하고 생각했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나도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에 더 많은 생각이 들더라.

-그런 생각과 걱정을 어떻게 이겨냈나.

▶이겨냈다기 보다는 그래서 (성경) 말씀을 매일 보는 것 같다. 믿음이 부족해서.

-작품을 할 때 다치거나 아픈 일이 많은데. 아파서 작품을 못한 적도 있고. 건강에 대한 걱정은 없나.

▶2년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건강하다고 하더라. 아픈 건 다 나았고, 예전보다 비타민 많이 챙겨 먹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죽기 전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일은.

▶결혼이다. 로망이 있다. 집에 함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한다.

-'낙원의 밤' 박훈정 감독과 작업은 어떤가.

▶깡패로 이렇게 길게 나온 적이 없어서 신기하고 새롭다. 박훈정 감독님의 느와르를 정말 해보고 싶었다. 재밌고 즐겁다.

-형인 엄태화 감독의 작품에는 출연할 의향은 없나.

▶형이 불러줘야 한다. 지금까지 형의 작품에 먼저 출연하고 싶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형이 이거 너 해, 라고 하면 했다. 거부할 수는 있지만 거부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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