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랜더-콜, '못 받으면 억울할' 역대급 사이영상 경쟁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10.01 14:23 / 조회 : 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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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벌랜더(왼쪽)-게릿 콜. /AFPBBNews=뉴스1
올해 메이저리그 시즌은 한국 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기쁨과 의미를 안겼다.


류현진(32·LA 다저스)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 투수로 사상 첫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ERA) 1위라는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시즌 시작하기 전 올해 목표를 20승이라고 밝혔던 류현진은 비록 그 목표엔 도달하지 못했지만 20승에 못지않은 ‘시즌 ERA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사실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4경기에서 총 19이닝 동안 21실점을 하는 슬럼프가 없었더라면 역대 최고급 시즌이라는 신화를 쓸 뻔했다. 그 때 잠깐 삐끗했던 것 때문에 손 안에 들어왔던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이 조금 멀어진 감이 있지만 그래도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시즌을 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류현진과 그의 NL 사이영상 레이스에 집중하느라 조금 소홀했지만 아메리칸리그(AL)에서는 사이영상을 둘러싸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한솥밥을 먹는 두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36)와 게릿 콜(29), 두 오른손 투수의 레이스가 정말 역대급으로 펼쳐졌다. 이들은 사실상 거의 모든 피칭 부문에서 리그 1, 2위 자리를 나눠 가졌다. 이 두 선수의 시즌 성적을 비교해 보자. (NL 류현진과 뉴욕 메츠 제이콥 디그롬의 성적은 참고 차원에서 첨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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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L-NL 사이영상 유력 후보 성적.
벌랜더와 콜 사이에선 아무리 뜯어봐도 누가 더 잘 했다고 선뜻 판단할 수가 없다. 벌랜더는 다승과 이닝, WHIP(이닝당 안타+볼넷)에서 AL 1위를 차지했고 콜은 평균자책점과 탈삼진(K),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수비무관 평균자책점)에서 1위에 올랐다.


이들은 또 1위를 놓친 부문에서는 상대에 이어 2위이거나 매우 근접한 순위에 자리했다. 콜은 벌랜더가 1위에 오른 부문인 다승과 WHIP에서 2위, 이닝에선 3위에 올랐다. 벌랜더는 콜이 1위를 차지한 ERA와 탈삼진에서 2위를 차지했고 FIP에서만 조금 뒤떨어진 4위를 기록했다.

보다 진보된 다른 세이버 메트릭스 수치에서도 여러 부문에서 이들의 차이는 우열을 가리기가 무의미할 정도로 박빙이다. 구장 팩터를 감안한 보정 ERA+에서는 콜(185)이 1위, 벌랜더(179)가 2위이며 WPA+(승수 추가 확률)에서는 벌랜더(5.6)가 1위, 콜(4.7)이 2위다. 사이영상 투표권이 있는 미 야구기자단(BBWAA) 멤버라면 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데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즌을 마쳤지만 누가 사이영상을 가져갈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사이영상 투표에서 공동수상이라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현실적으로 둘 다 상을 받는 것이 가장 공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누가 사이영상을 받든, 올해 한솥밥을 먹은 동료에게 미안함을 느낄 것이고 받지 못한 선수는 아쉬움과 허탈함, 억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전망이다. 두 선수별로 각자 사이영상을 받아야 할 당위성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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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벌랜더. /AFPBBNews=뉴스1
■ 저스틴 벌랜더

2011년 만 28세였던 벌랜더는 AL 투수 트리플 크라운(24승, 2.40 ERA, 250K)을 달성하며 그 해 AL MVP와 사이영상을 휩쓸었다. 그것이 아직까지 그가 받은 유일한 사이영상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벌랜더는 꾸준하게 리그 최고의 에이스 중 하나로 활약해 왔다.(벌랜더는 2012, 2016, 2018년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런 그가 만 36세 시즌인 올해 남긴 성적은 8년 전 ‘트리플 크라운’ 성적과 비교해도 별로 뒤지지 않는다. 사실 ERA+를 보면 올해 성적(179)이 2011년(172)보다 더 좋다. 그는 올해로 14번째 풀 시즌을 보냈는데 올해를 포함해 12번이나 시즌 200이닝 이상을 던졌다.

벌랜더는 올해 34번의 선발등판에서 17번을 7이닝 이상 던졌고 생애 처음으로 한 시즌 탈삼진 300개를 달성하기도 했다. 30세 후반으로 이제는 커리어 후반기에 접어든 투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숫자다.

올해 벌랜더의 성적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닝당 출루 허용률이다. 그의 WHIP 0.80은 1920년 라이브볼 시대가 시작된 이후 역대 랭킹 2위의 기록이다. 지난 100년간 올해 벌랜더보다 더 낮은 WHIP을 기록한 투수는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스(0.74) 한 명뿐이었다.

올해 벌랜더의 유일한 약점은 피홈런이 많았다는 것이다. 총 36개의 홈런을 허용해 커리어 최다를 기록했다. 그가 올해 단 137안타만을 허용, 생애 최소 기록(풀시즌 기준)을 세웠다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이지만 올해 메이저리그 시즌이 역대 최고의 홈런 풍년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큰 흠은 아니다. 경쟁자인 콜도 올해 29개의 홈런을 내줬다.

벌랜더는 올해 생애 3번째 노히터를 달성했다. 벌랜더와 콜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투표자에겐 어쩌면 이 노히터가 그를 찍을 이유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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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릿 콜. /AFPBBNews=뉴스1
■ 게릿 콜

벌랜더가 사이영상 수상 자격이 충분한 것과 마찬가지로 콜의 시즌 역시 당연히 사이영상을 받아야 할 만큼 눈부신 것이었다. 우선 전체적으로 콜의 모든 성적 수치는 벌랜더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해 가장 압도적인 투구를 보인 투수를 꼽으라면 그 수상자는 당연히 벌랜더가 아니라 콜이 될 것이다.

콜은 올해 326개의 탈삼진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9이닝당 13.8개씩을 뽑아낸 엄청난 페이스다. 특히 올해 콜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선 타자 가운데 무려 39.9%가 삼진으로 돌아섰는데 이는 1999년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기록한 종전 역대 최고 기록 37.5%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벌랜더가 올해 상대한 타자의 35.4%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9이닝당 탈삼진 수 12.1개를 기록한 것도 눈부신 성적이지만 콜과 직접 비교하면 체감 위력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올해 콜의 시즌이 밥 깁슨의 역사적인 1968년 시즌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압도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도 콜과 벌랜더의 시즌 성적에서 사실 뚜렷한 우열을 가리기는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특히 올해 시즌 후반기에 보여준 콜의 압도적인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콜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14경기에서 11승무패, 평균자책점 1.79를 기록했다. 또 마지막 9번의 등판에서 모두 두 자릿수 탈삼진을 뽑아내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후반기의 이런 압도적인 모습이 콜에게 생애 첫 사이영상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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