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판소리 복서' 이상하고 재밌는 판소리 복싱의 세계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10.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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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재밌다. 서사와 맥락은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판소리 복싱으로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이름도 색다른 '판소리 복서'다.

병구(엄태구)는 오늘도 전단지를 돌린다. 다 쓰러져가는 복싱 체육관 전단을 열심히 돌린다. 병구는 착하다. 체육관의 유망주이자 자신보다 어린 교환(최준영)이 반말을 찍찍하며 수건 빨아오라고 얼굴에 던져도 그저 웃는다. 전단지 보고 찾아온 민지(혜리)에게 쭈뼛거리며 복싱을 가르친다. 그래도 병구는 스스로를 나쁜 남자라 한다.


병구에겐 꿈이 있다. 다시 복싱을 하는 것. 어릴 적 친구 지연(이설)과 함께 키운 꿈을 이루고 싶다. 지연은 장구를 치고, 병구는 그 장단에 맞춰 복싱을 한다. 판소리 복싱. 우리 것으로 세계를 제패하고자 한다.

하지만 박관장(김희원)은 그런 병구의 꿈에 심드렁 한다. 전단지 돌리고, TV고치고, 빨래하라고 한다.

민지는 착하디착한 병구의 꿈을 응원한다.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후회할 것이라며. 펀치드렁크로 약을 먹던 병구는 진심으로 다시 복싱을 시작하고자 한다. 판소리 복싱을. 얼쑤.


'판소리 복싱'은 정혁기 감독의 26분 분량 단편 영화 '뎀프시롤: 참회록'을 장편으로 만든 영화다. 시작부터 다르다. "쿵덕 쿵덕 쿵더더덕" 장구 소리와 함께 어스름한 새벽 공기 속에서 주먹이 바람을 가른다. 장단에 맞춰 춤을 추듯 복싱을 한다. 하얀 한복을 입은 여인의 장구 가락에 맞춰 동이 트기 전 어둡고 푸른 색 속에서 신명 나게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

'록키' 같이 출발하지만 '내일의 죠' 같다. 그래도 비장함은 간데없다.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말랑말랑하다. 비참한 상황들이지만 그래도 밝다. 아픈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 발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회는 있어도 밀고 나간다. 얼쑤하며.

'판소리 복싱'은 비장한 과거와 웃픈 현실과 행복한 환상이 교차한다. 정혁기 감독은 세 개의 타래를 나선으로 꼬았다. 판소리 장단에 맞춰서. 배우들은 정색하고 연기하고 해맑게 연기한다. 이 정색과 해맑음이 꼬인 나선과 어울려 좋은 매듭으로 이어진다. 곳곳에 울리는 랩 같은 판소리가 해학을 더한다. 안 어울리는 조합이 장단에 맞춰 화합하며 춤춘다. 이상하고 재밌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선하다. 유기견 포먼까지, 각자의 사연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한다. 이 합이 좋다. "쿵덕쿵 쿵덕"한다. 거창한 이유 붙이지 않아도, 사연팔이로 눈물 짜내지 않아도, 좋다. "쿵더덕 쿵더덕"한다.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하지만, 어색해도 낯익다. 통영의 풍광과 어울린다. 가보지 않았어도 기억의 고향 같다.

병구 역의 엄태구는 매우 좋다. 선한 얼굴과 무서운 얼굴과 멍한 얼굴과 멋진 얼굴이 공명한다. 한 배우가 한 작품에서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약점으로 꼽혔던 딕션도 좋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적확하게 귀에 꼽힌다.

박관장 역의 김희원은 좋은 울타리다. 그가 쳐놓은 웃음과 드라마 속에서 다른 배우들이 노닌다. 영화 속 낡지만 정겨운 체육관이 곧 김희원이다. 민지 역의 혜리는 혜리로서 영화에 기능했다. 혜리는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할 때 매력이 120% 발휘된다. 엄태구와 혜리의 해맑고 멍한 호흡은, '판소리 복서'의 매력이기도 하다. 교환 역의 최준영은 미래가 기대된다. 영화에 녹아들면서도 존재를 드러내는 매력을 갖고 있다.

'판소리 복서'는 여느 영화와는 다른 리듬을 갖고 있다. 편집 리듬이 반 박자 빠르거나 늦거나 엇박자가 나곤 한다.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지만 어색해도 낯익다. '판소리 복서'의 매력이다. 정혁기 감독의 다음 작품도 이 리듬을 유지할지, 기대된다.

10월 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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