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팀 울린 '4부 리거', 말없이 꼬옥 안아준 '옛 동료들'

김우종 기자 / 입력 : 2019.09.20 05:32 / 조회 :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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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복도에서 마주친 수원 삼성 선수단과 문준호(가운데 주황색 상하의 유니폼). /사진=김우종 기자
비록 자신들을 향해 아픔을 안겼지만 여전한 옛정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지난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2019 KEB 하나은행 FA컵 준결승 1차전. K리그 1부 리그 구단 수원 삼성이 4부 리그 격인 K3리그 화성FC에 0-1로 패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수원 삼성에 비수를 꽂은 선수는 바로 얼마 전까지 동고동락했던 옛 팀 동료 문준호(26·MF)였다. 전반 24분 문준호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감아 찬 오른발 슈팅이 수원 골망에 꽂혔다. 결국 이 골은 결승골이 됐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 앞에 선 문준호는 "저 원래 인기 없는데 진짜"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수원 삼성을 상대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를 갈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준비 잘해 보여줄 것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문준호가 수원을 상대로 이를 악 물었던 이유. 바로 수원 삼성에서 방출된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백암고와 용인대를 졸업한 그는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출전했다. 또 신태용 감독이 이끌던 23세 이하(U-23) 대표팀에도 발탁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프로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문준호는 지난 2016년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하지만 1군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주로 R리그에서 뛰었다. 2016년 R리그에서는 13경기서 3골을 넣었다. 그러다 2018년 FC안양으로 임대됐고, 5경기에 나서 1골을 터트렸다. 지난해 말 수원 삼성으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그는 올해 화성FC에 입단해 활약하고 있다.

문준호는 "수원에서 보여준 게 없다. 축구 인생에서 힘든 시기였다. 이날 경기로 복수 아닌 복수를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며칠 전) 수원에 있는 형들과 연락했다. 처음에는 핀잔을 들었다가, '우리 이렇게 연락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장난스럽게 나눴다"면서 "'서로 멋진 경기 해보자' 이야기를 했다"고 웃었다.

이제 화성FC는 내달 2일 오후 7시 30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2차전 원정 경기를 치른다. 문준호는 "빅버드에서 데뷔전 한 차례만 치른 뒤 이후 엔트리에만 들고 경기엔 출전하지 못했다. 수원에 저라는 선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2차전 준비 잘하겠다"며 특별함이 가득한 각오를 다졌다.

인터뷰를 마친 뒤 문준호는 지인 및 팬들과 다정하게 사진 촬영에 응했다. 순간, 침묵에 휩싸였던 수원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문준호의 옛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복도에서 문준호와 수원 선수들이 마주쳤다. 문준호는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그런 문준호를 본 수원의 옛 동료들은 말없이 그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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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시절의 문준호. 당시 R리그에서 뛰던 모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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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브라질과 4강전에서 문준호(왼쪽)가 드리블을 펼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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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과 2019 FA컵 4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포효하는 문준호(오른쪽).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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