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랜더 노히터는 흔한 기록? 아쿠냐의 역대 5번째 '슈퍼맨' 도전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9.03 16:06 / 조회 : 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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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AFPBBNews=뉴스1
퍼펙트게임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달성하기 힘든 기록 중 하나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상 나온 퍼펙트게임은 총 23번으로 23명의 투수에 의해 기록됐다. 즉 퍼펙트게임을 생애 두 번 기록한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기록상 첫 번째 퍼펙트게임은 1880년에 나왔고 마지막은 2012년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가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의 150년 가까운 역사에서 딱 23번 나왔으니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기록임이 분명하다.

놀랍게도 마지막 퍼펙트게임이 달성된 2012년엔 3번이나 퍼펙트게임이 나와 한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는데 그 해 너무 많이 나온 탓인지 이후 7년이 지난 현재까지 24번째 퍼펙트게임은 나오지 않고 있다. 1982년 리그를 시작한 한국프로야구(KBO)에선 지금까지 14번의 노히트노런이 나왔지만 아직 퍼펙트게임은 없다.

퍼펙트게임에 비하면 노히터(No-Hitter)는 상당히 흔한 편이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공인된 노히터 수는 303개에 달해 퍼펙트게임의 13배가 넘는다. 평균적으로 매년 2~3번 노히터가 나온 셈이다.

또 노히터를 생애 두 번 이상 기록한 선수도 35명이나 된다. 전설적인 ‘라이언 익스프레스’ 놀란 라이언은 제구력 문제로 인해 단 한 번도 퍼펙트게임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노히터는 무려 7번이나 세워 압도적인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을 남겼다. 이 부분 2위인 샌디 쿠팩스(4번)보다 3번이나 많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부분은 한국에서는 한 경기에서 안타와 득점을 내주지 않은 것을 ‘노히트노런’ 기록으로 집계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노히트’만 있고 ‘노런’ 부분은 없다는 사실이다.

1991년 메이저리그의 기록통계위원회는 노히터의 정의를 “한 명이나 다수의 투수가 9이닝 이상의 경기에서 안타를 내주지 않고 경기를 마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즉 실점을 했더라도 안타를 맞지 않았다면 ‘노히터’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메이저리그에선 볼넷이나 실책 등으로 실점을 한 경우에도 피안타가 없으면 노히터로 인정을 받는다. 물론 노히터 중 노히트노런을 따로 추려낼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노히트노런 기록을 따로 집계하진 않는다.

지난 2일(한국시간) 저스틴 벌랜더(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303번째 노히터를 기록했다. 개인 통산 3번째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노히터를 3번 이상 기록한 단 6번째 투수가 됐다. 라이언과 쿠팩스에 이어 역대 랭킹 공동 3위다. 노히터를 2회 기록한 선수는 35명이나 되지만 3개 이상 기록한 이는 6명에 불과하니 생애 3번째 노히터는 ‘군계’ 레벨에서 ‘일학’ 레벨로 진입하는 기록인 셈이다.

벌랜더는 이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원정경기에서 볼넷 1개만 내주고 삼진 14개를 잡아내며 무안타-무실점으로 진짜 ‘노히트노런’을 했다. 1회말 1사 후 케이반 비지오를 볼넷으로 내보낸 것이 말 그대로 ‘옥에 티’가 되면서 MLB 역사상 24번째 퍼펙트게임 대신 303번째 노히터에 만족해야 했다. 볼넷이 1회 두 번째 타자 만에 나왔기에 그나마 아쉬움이 덜 하지만 마지막에 허용했다면 정말 땅을 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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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한국시간) 토론토전에서 노히터를 달성한 뒤 기뻐하는 저스틴 벌랜더. /AFPBBNews=뉴스1
하지만 사실 진짜 아찔했던 것은 이 노히터 기록이 밸런더의 투구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날아갈 뻔했다는 것이다. 휴스턴의 신인 에이브라함 토로가 9회초 2사 후 투런홈런을 때려 0의 균형을 깨지 못했더라면 벌랜더는 9회말에 안타를 맞지 않았더라도 연장 10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르지 않는 한 최소한 개인 노히터는 놓칠 뻔 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인 2007년과 2011년 노히터를 기록했던 벌랜더는 경기 후 “두 번째 노히터 후 지금까지 9회에 2번, 8회에 2번 노히터를 놓쳤다”면서 “이번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우상으로 여겼던 전설적인 선수들과 같은 레벨에 오르게 된 것은 정말 특별하다”고 감격을 표현했다.

아깝게 노히터나 퍼펙트게임을 놓친 경우는 사실 일일이 거론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지만 그 중 퍼펙트게임의 경우엔 정말 특별히 아까운 기록이 몇 개 있다. 우선 1959년 하비 매덕스(피츠버그)가 밀워키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연장 12회까지 퍼펙트게임을 던진 뒤 13회 실책과 희생번트, 고의사구 후 결승타를 맞고 0-1로 패한 것이 첫 손에 꼽힌다.

또 1995년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 소속이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9회까지 퍼펙트를 던진 후 연장 10회에 2루타를 맞고 퍼펙트가 깨진 기록도 있다.

하지만 진짜 아깝고 억울해 땅을 칠 사례는 지난 2010년 6월2일 당시 디트로이트 소속이던 아르만도 갈라라가에게 닥친 일이었다. 당시 갈라라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9회 투아웃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가며 대기록을 눈앞에 뒀으나 마지막 타자의 약한 1루 땅볼 타구 때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는데 간발의 차로 세이프가 선언돼 퍼펙트게임은 물론 노히터까지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억울한 것은 이 세이프 판정이 오심이었다는 것이다. 경기 후 TV 중계 느린 화면을 본 1루수 짐 조이스는 자신의 오심을 인정하고 갈라라가에게 사과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이라면 비디오판독을 통해 판정이 뒤집히겠지만 당시는 그런 방법도 없었다. 9회 2사 후 심판의 오심으로 퍼펙트게임이 날아간 것은 아직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한편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퍼펙트게임 기록보다 더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 하나 있다. 바로 ‘40-40(한 시즌 40홈런-40도루)'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40-40 기록은 지금까지 단 4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198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호세 칸세코가 42홈런과 40도루로 전인미답의 고지에 처음 올랐고 이어 1996년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40홈런-40도루), 199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시애틀·42홈런-46도루),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워싱턴·46홈런-41도루)가 40-40 클럽에 가입했다.

한 시즌에 4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할 만큼 빠르면서 동시에 홈런도 40개 이상을 때리는 파워를 지녔다면 사실상 ‘슈퍼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기록을 세운 선수 중 칸세코와 본즈, 로드리게스가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을 시인했거나 의혹을 받는 대상이어서 엄청난 기록의 가치마저도 상당히 퇴색돼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말도 안되는 ‘슈퍼맨’이 된 것이 약물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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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에 성공하는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AFPBBNews=뉴스1
그런데 그런 대기록에 올해 한 선수가 모처럼 도전장을 내고 있다. 바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만 21세 슈퍼스타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다. 아쿠냐는 현재 36홈런과 33도루로 40-40 고지에 홈런 4개와 도루 7개만을 남겨놓고 있다.

애틀랜타의 잔여경기 수가 23경기이니 대망의 40-40 고지 등정이 현실적으로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그는 이미 30-30 클럽엔 가입을 완료했는데 이는 지난 2012년 당시 만 20세의 나이로 30홈런-49도루를 기록한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른 30-30 가입이다.

하지만 아쿠냐는 40-40 대기록이 눈 앞에 다가오자 타석에서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 26타수 2안타(타율 0.077)라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고 마지막 10경기에서 홈런이 없다. 반면 삼진 수는 162개로 메이저리그 1위로 올라섰다.

애틀랜타의 타격코치 케빈 사이처는 아쿠냐의 최근 슬럼프가 40-40 클럽 도전에 따른 부담감 상승에 기인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엄청난 기록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타석에서 평정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쿠냐는 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도루 2개를 기록하며 제자리걸음 상태였던 40-40 도전에서 모처럼 조금 전진을 했다. 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는 4타수 무안타에 도루도 없었다.

이제 남은 한 달 동안 홈런 4개와 도루 7개가 필요하다. 올해 그의 매월 성적을 보면 홈런보다는 도루가 더 관건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마지막까지 그에겐 매 경기 타석 하나하나가 피를 말리는 긴장의 연속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퍼펙트게임이나 40-40이나 대기록에는 모두 그에 걸맞은 ‘산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과 어려움이 동반되기에 기록의 가치가 인정을 받는 것이다. 과연 아쿠냐가 이를 극복하고 40-40 고지에 오를 수 있을지 남은 한 달간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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