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 한국영화 100년 영광의 순간 ~20세기 ②

강민경 기자 / 입력 : 2019.09.04 14:40 / 조회 :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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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화(왼쪽), 나운규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지난 1899년 미국인 여행가 버튼 홈즈가 조선에 처음 영화를 소개했다. 이어 일제강점기인 1907년 유일한 조선인 극장 '단성사'가 처음 탄생했고, 1919년 최초의 한국영화로 알려진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가 상영됐다.

1962년 공보부가 '의리적 구토' 상영 시기를 한국영화 기원으로 선정한 이래 2019년을 한국영화 100주년으로 인정하고 있다.

스타뉴스가 한국 영화사 10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영광의 순간을 되짚어봤다.

'의리적 구토'에 이어 1923년에는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의 맹세'(감독 윤백남)가 상영됐다. '월하의 맹세'는 윤백남 감독이 이끌던 민중극단 단원들을 동원해 만든 작품이다.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계몽영화로서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제작됐다.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세'를 통해 최초 여자 배우가 탄생한다. 바로 이월화다. 이월화는 '월하의 맹세'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신극 여배우 최초의 영화 여배우로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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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홍콩 최초 합작 영화 '이국정원' 스틸컷

'월하의 맹세'가 개봉하고 3년 뒤인 1926년에는 '아리랑'(감독 나운규)이 울림을 선사했다. 항일 정신과 민족의 정서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단성사에서 상영이 끝난 뒤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아리랑'은 감독, 각본 및 주연을 맡았던 나운규를 스타로 만들어줬다. 1942년 조선인들이 징용으로 끌려와 있던 훗카이도의 탄광에서도 상영돼 조선인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일화가 있다.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감독 이명우)이 탄생했다. 영화 역사가 일천하고 주변 장비가 넉넉하지 못했던 환경에서 제작 한계를 절감하는 상황에서 과감한 도전으로 꼽히는 영화다. 1955년에는 최초의 여성 감독이 등장했다. '미망인'을 연출한 박남옥이다. 박남옥은 '미망인'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남겼지만, 1997년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를 계기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재조명됐다.

1957년에는 한국과 홍콩 최초의 합작 영화이자 컬러 영화인 '이국정원'(감독 전창근·도광계·와카스기 미츠오)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처음 상을 받은 것도 '이국정원'이 공개된 해이다. 영화 '시집가는 날'(감독 이병일)은 제4회 아시아 영화제에 출품됐다. '시집가는 날'은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상인 희극영화상을 수상, 한국영화 최초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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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수연 /사진=이동훈 기자

이후 조용하던 한국 영화계에도 낭보가 전해졌다. 배우 강수연이 1987년 영화 '씨받이'(감독 임권택)로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

강수연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아시아 여배우로서 처음이었다. 강수연은 "선배들도 많은데 저에게 영광이 돌아와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당시 소감을 밝혔다. 이후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 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 탄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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