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어스필드서 '맞혀잡아' 무실점, 정말 놀라운 류현진 [국민감독 김인식의 MLB 通]

콜로라도 원정 6이닝 쾌투... 한 달 전 악몽도 씻어내

신화섭 기자 / 입력 : 2019.08.01 17:42 / 조회 :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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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한국시간) 콜로라도전에서 투구하는 류현진. /AFPBBNews=뉴스1
근래 보기 드문 투수전이었다. 더욱이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쿠어스필드에서 선발 투수 두 명이 모두 이렇게 잘 던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류현진(32·LA 다저스)은 1일(한국시간) 콜로라도와 원정 경기에서 6이닝을 3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비록 승패는 남기지 않았으나 지난 6월29일 쿠어스필드 콜로라도전에서 4이닝 7실점한 아픔을 깨끗이 씻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 호투였다.

상대 선발인 우완 헤르만 마르케스(24)의 피칭도 뛰어났다. 6이닝 2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기록에서는 류현진보다 오히려 더 나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두 선발의 투구가 무척 대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마르케스는 공이 원체 빠른 투수다. 시속 99마일(약 159km)에 달하는 강속구에 너클 커브를 섞어 던지는 ‘투 피치’ 스타일이다. 초구에 낮게 깔리는 빠른 볼로 스트라이크를 잡고 너클 커브로 타자를 현혹시킨다.

더욱이 이날 경기 구심의 스트라이크존도 마르케스에게 유리했다. 다저스 타선의 주축을 이룬 좌타자들을 상대할 때 바깥쪽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많이 잡아줬다. 가뜩이나 구위가 좋은데 스트라이크존까지 넓으니 다저스 타자들은 삼진을 10개나 헌납하며 꼼짝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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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선발투수 헤르만 마르케스. /AFPBBNews=뉴스1
반면 류현진은 탈삼진이 단 1개였다. 왼손 투수라 구심의 덕을 보지는 못했지만, 늘 그랬듯 빼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맞혀 잡는 투구로 상대 타자를 요리했다. 특히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류현진으로선 다저스 내야진에 새로 가세한 2루수 크리스토퍼 네그론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이날 땅볼 3개, 뜬공 1개 등 2루수쪽 타구가 많았는데 네그론은 어려운 공도 실수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냈다. 1회 찰리 블랙먼과 2회 데이비드 달의 땅볼도 까다로운 타구였으나 아주 쉽게 잡아냈다. 만약 맥스 먼시가 2루수로 나왔다면 몇 개는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내야 수비가 탄탄하면 투수로선 실점하지 않는 것 외에 좋은 점이 또 있다. 투구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먼시가 2점 홈런을 친 뒤 수비에서 실책을 해 2점을 내줬다고 치자. 2-2나 0-0이나 같은 동점이지만, 실책이 나오면 투구수는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땅볼 유도형 투수인 류현진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날은 내야 수비가 안정되고 3회 우익수 코디 벨린저의 홈 호송구도 나와 류현진은 80개의 공으로 6이닝을 책임질 수 있었다.

네그론의 합류로 불안했던 다저스 내야가 강화된 것 같아 반갑다. 이제 시즌 중 트레이드도 마감됐으니, 다저스는 포스트시즌에서 내야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잘 구상해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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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에 새로 영입된 타일러 화이트와 크리스토퍼 네그론(오른쪽). /사진=OSEN
류현진은 이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온 듯했다. 한 달여 전 쿠어스필드에서 겪은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속도 6회까지 시속 93마일(약 150km)이 나올 정도로 힘 있는 투구를 했다.

특히 주목할 장면은 4회에 나왔다. 2사 후 달에게 2루타를 맞은 뒤 이언 데스먼드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데스먼드는 류현진에게 비교적 강했던 타자이기 때문에, 사실상 일부러 거르고 후속 욘데르 알론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1루 땅볼로 무실점 이닝 종료.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천적’이라 불리는 놀런 아레나도도 땅볼 2개와 뜬공 1개 등 세 타석 모두 범타로 가볍게 요리했다.

류현진이 볼넷을 내주는 것에 주변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지만, 무엇보다 결과가 좋아야 한다. 정면 승부를 하다가 안타나 홈런을 맞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렇듯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공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투수에게 불리한 구장, 더욱이 지난 등판의 아픈 기억 때문에 얼마나 부담이 컸겠는가. 그러나 이날도 류현진은 과감하게 맞혀 잡은 피칭을 구사했고, 정말 놀랍게도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결국 마음의 차이인 듯 싶다. 쿠어스필드 같은 곳에선 어차피 2~3점은 다 준다는 생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어려운 일을 류현진은 해냈다. 비록 승리는 따내지 못했지만, 1승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경기였다.

/김인식 KBO 총재고문·전 야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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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고문은 한국 야구를 세계적 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지도력으로 '국민감독'이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국내 야구는 물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도 조예가 깊습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으로서 MLB 최고 스타들을 상대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MLB 경기를 빠짐 없이 시청하면서 분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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