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 "암클"의 위대함을 말한 '나랏말싸미'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7.20 12:02 / 조회 : 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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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에서 소헌왕후 역을 맡은 전미선이 궁녀들에게 다짐하는 모습을 담은 스틸.


이 기사는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암클'(암글)을 아십니까?

암클이란 한글을 비하했던 표현입니다. 조선 시대 양반네들이, 남정네들이 한글은 여자들이나 쓰는 문자라고 비하했던 말입니다.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그런 암클의 올바른 뜻을 되찾은 영화입니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스님인 신미의 도움을 얻었다는 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송강호가 세종대왕을, 박해일이 신미스님을 맡았죠.

이 영화는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그리는 한편 반포 과정을 상징해서 보여줍니다.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기획하고 이끌고 공표 하는데 앞장섰고, 신미스님이 주도해 만들었다면, 널리 퍼지게 한 건 여인들의 공이 컸다고 이야기합니다. 베일에 싸인 훈민정음 창제 뒷이야기 중 하나를 바탕으로 허구적인 상상력을 더했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사실에 부합하는 것 중 하나는, 분명 훈민정음이 암클이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문자가 됐다는 점입니다.

'나랏말싸미'에서도 나오지만 집권 사대부, 즉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천시했습니다. 오랑캐나 스스로 문자를 만들 뿐인데, 어찌 중화의 문자인 한문을 두고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쓸 수 있냐고 반발했습니다. 실제로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나라를 이끈 사람들의 문자는 한문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언문이나 암클이라고 천하게 여겨졌습니다. 암클은 언문보다 더 비하한 표현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여성혐오가 담긴 표현이죠.

그렇지만 암클이었기에 훈민정음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문자는 쓰지 않으면 죽습니다. 특히 지배층의 문자로 쓰이지 않으면 오래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한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여인들이 써왔기 때문입니다. 한글로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누고, 뜻을 알려왔기 때문입니다. 한글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터입니다. 사명감을 갖고 쓴 것은 아니었을 터입니다. 그저 한글이 배우고 익히고 쓰기 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와 닿아있습니다. '나랏말싸미'에선 암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문자가 여자나 쓰는 암클이라 불릴 지라도 쓰고 또 써서 널리 알리자고 다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끄는 데 소헌왕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상상력의 나래를 폈습니다. 고 전미선이 소헌왕후를 연기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전미선은 궁녀들에게 "우리가 언제까지 글자를 몰라 가족에게 안부도 전하지 못해야 하겠냐"고 토로합니다. 영화 속에선 그녀의 바람대로 많은 궁녀들이 훈민정음을 알리겠다고 맹세합니다.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훈민정음이 암클이라 천대받았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과 닿아있습니다.

'나랏말싸미'에서 전미선은 정말 훌륭합니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단호한, 졸장부인 남자 둘을 이끄는 대장부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전미선이 했기에, 이 영화의 깊은 뜻이 더 뭉클하게 전달됩니다.

1998년 안동에서 한 무덤이 발견됩니다. 무덤엔 편지 한 통과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신발이 들어있었습니다. 일명 원이 엄마의 편지입니다. 1586년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부인이 쓴 편지입니다. 편지는 "원이 아버님께"로 시작합니다. 한글로 쓰였습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한글로 꼭꼭 눌러 가득 채웠습니다. 훈민정음이 1446년에 반포됐으니, 100년이 넘게 흐르면서 이 문자가 어떻게 민중 속에서, 어떻게 여인들을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나랏말싸미'는 한글을 창제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한글을 널리 알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글을 만든 사람은 나랏님일지라도, 널리 알리고 살아남도록 한 건 민중들, 특히 여인들이라고 말합니다. 암클이라고 비하당할지라도, 암클이라서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암클의 제 위치를 밝힙니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날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반포한 날을 기념한 날입니다. 만든 것 못지않게 세상에 퍼지게 한 게 중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한글날을 만든 게 일제 강점기 시절, 한글 학자들이었으니 그 뜻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암클의 제 위치를 밝힌 영화 '나랏말싸미'는 7월 24일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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