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이상근 감독 "조정석+임윤아 신선한 시너지"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7.19 14:28 / 조회 : 6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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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이상근 감독/사진제공=CJ ENM


초등학교 시절 '우리들의 천국'을 보고 드라마PD를 꿈꿨다. 영화감독에 대한 꿈은 없었다. 삼수 끝에 성균관대 영상학과를 들어갔다. 1학년 때 만든 단편영화 '꼽슬머리'를 교수님이 칭찬했다. 이상근 감독은 "작은 칭찬에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꿈을 꾸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연출부로 6개월 가량 일했다. 영화 진행이 계속 늘어지자 한예종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쟝센단편영화제에 '베이베를 원하세요'를 출품했다. 예선에서 떨어졌다. 박찬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떨어진 작품도 다시 살펴보자고 하면서 구제됐다. 희극지왕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뒷풀이에서 류승완 감독에게 '짝패' 연출부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류승완 감독이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연출부로 일했다.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갔다. 32살에 졸업하고 백수가 됐다. 알바로 최저 생활비를 모으고, 카페를 전전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쓰고 또 썼다. 3년 뒤 '엑시트' 초고가 영진위 한국영화 기획계발에 당선됐다.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다시 2년이 흘러 2015년. 류승완 감독을 찾아갔다. '엑시트' 시나리오 모니터를 부탁했다.

류승완 감독은 상업영화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준비하고 준비했다. 마침내 '엑시트'는 2019년 7월 31일 세상에 공개된다. 이상근 감독은 43살에 그렇게 데뷔하게 됐다.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은 그래서 이상근 감독과 닮았다. '엑시트'는 대학 졸업하고 여러 해 동안 취업이 안돼 백수로 살면서 그러게 영어 동아리 같은 거나 했어야지 산악 동아리가 웬말이냐며 타박받던 용남이 가스 테러가 벌어지자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상근 감독에게 '엑시트'에 대해 물었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엑시트'는 어떻게 기획했나.

▶택시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유독가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하철에 유독가스 테러를 했던 오움진리교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내용이었다. 유독가스 중에는 일정 높이 이상 못 올라 오는 것도 있고, 높이 올라와서 흩어진다는 것도 있다고 하더라. 당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심 속에 하얀 안개처럼 유독 가스가 발밑에 깔려 있고, 그 속에서 살기 위해 어디론가 달려가는 청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렇게 출발했다.

-원래 기획했던 내용이 류승완 감독의 외유내강과 같이 작업하면서 어떻게 발전했나.

▶더 상업적이고 큰 기획으로 발전했다. 원래는 지금처럼 어머니 칠순잔치를 벌이던 중에 가스테러를 겪는 게 아니라 결혼 피로연이었다. 그리고 저예산으로 만들려 했기에 가스로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지금은 주인공인 용남은 백수고, 의주는 웨딩 컨벤션 부점장인데 당시는 남녀 주인공 모두 백수였다.

-용남(조정석) 캐릭터는 이상근 감독과 많이 닮은 듯하다. 그런데 왜 의주(임윤아)는 직업을 갖고 있는 걸로 설정을 바꿨나.

▶아무래도 창작자의 배경이 많이 투영된 것 같다. 의주는 한 번 더 각색하면서 현재 설정으로 바꿨다. 찬란했던 과거를 갖고 있던 젊은이들이 현재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렇게 설정을 바꾸면 자연스럽게 그 관계와 사연이 형성돼 소개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보통 재난영화는 재난 자체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런데 '엑시트'는 다르다. 자욱한 유독가스가 어떤 캐릭터처럼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처해진 환경처럼 묘사됐다. 한치 앞도 안보이고, 그대로 있으면 죽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올라가야 하는. 여느 재난영화와 다른데.

▶'엑시트'에서 재난은 1차적인 공포를 주진 않는다. 대체로 재난영화에서 공포는 재난의 묘사와 그 재난을 당하는 사람을 통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엑시트'에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재난에 희생당하는 사람을 최소로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엑시트'는 재난이 아니라 그 속에서 탈출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재난은 설정만 갖고 부딪어보자고 했다.

-주인공들에게 다른 특수한 능력이 아닌 클라이밍 능력이 있다는 설정을 준 이유는.

▶클라이밍은 보통 일상에서 밥벌이가 되기는 쉽지 않다. 어른들 눈에는 영어 실력이나 다른 것들에 비해 밥벌이에 쓸모 없다고 여겨지기 쉽고. 그런 능력이지만 적재적소에선 쓸모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살기 위해서 낑낑대며 올라가는, 중력을 이겨내면서 안간힘을 쓰면서 오르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재난영화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능력이란 생각도 있었다.

-클라이밍 경험은 있나.

▶클라이밍을 착안하고, 그 뒤에 경험해 보기 위해 조금 배웠다.

-'엑시트'는 다른 재난영화들과는 달리 코미디와 재난이 균형을 잡았다. 신선하고 재밌는 반면 그렇기에 재난영화들에 바라기 마련인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으로 인한 공포와 긴장, 감동을 짜내는 눈물 등은 없는데.

▶재난영화에 기대하는 어떤 패턴들이 있다. 그런 패턴들을 새로운 걸 해보겠다며 모두 비틀고 싶진 않았다. 그런 패턴들을 따르는 한편 뜻밖의 재미와 좀 더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웃겼으면 좋겠다는 지점들은 분명히 있었지만 울려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잃게 되는 게 있고, 얻게 되는 게 있는 것 같다. 죽음으로 인한 공포와 긴장, 눈물 등을 넣으려 했으면 지금과는 다른 영화가 됐을 것이다.

-'엑시트'는 여느 재난영화와 달리 재난을 소개하는 데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시작하고 20분 뒤 바로 재난으로 돌입하고. 속도감이 빠른데.

▶이 영화는 속도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고, 반복되는 부분이 있기에 전개를 빠르게 해서 리듬감을 갖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론이 영화 속 주요 도구로 활용되는데. 드론을 통한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소개되고. 그 중 PC방에선 가스테러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도 그려지는데.

▶용남과 의주가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을 모색했는데 쉽지 않았다. 2010년에 '엑시트'를 처음 구상했을 때는 지금처럼 드론이 없었다. 7년을 준비하다보니 드론이 많아져서 거기서 착안했다. 또 드론을 통해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보고 싶었다.

이 가스테러 사건은 국제미래도시라는 기상의 도시에서 벌어진다. 이 도시는 다른 도심과 떨어진 곳이다. 가스테러가 벌어져도 안전한 곳에선 남의 일이라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드론을 통한 영상으로 점점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엑시트'에서 용남과 의주는 처음에는 가족을 구하고, 그 다음은 남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구한다. 마지막 자신을 구하는 장면을 좀 더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어떻게 두 사람이 살아남게 됐는지 그 장면을 찍긴 찍었다. 여러 가지로 편집을 해봤는데 거기까지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면 맥이 빠지더라. 뒤에 용남의 가족들이 겪게 되는 상심과 또 재회할 때의 기쁨 등 여러 감정까지 잘 이어지지 않고. 그래서 설명이 적더라도 두 사람이 짠하고 나타나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이 두 사람이 살아남은 과정을 100% 이해는 못해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크레인에 올라가서 구조 요청을 하는 장면은 추가 촬영한 것인데.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편집한 버전과 보여주지 않는 버전이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금처럼 보여주는 방식이 더 분명할 것 같아서 상의 끝에 추가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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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이상근 감독/사진제공=CJ ENM


-액션의 설계는 어떻게 했나. '엑시트' 액션은 건물 위로 올라갔다가 가스 속으로 들어갔다가 가스 위를 넘어갔다가 다시 건물 위로 올라간다. 액션 자체도 재미있지만 액션의 구성도 청년들의 상황과 닿아있는데.

▶일단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올라갈 것인가, 뛰어넘을 것인가, 넘어갈 것인가. 주변지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청년들의 상황과 액션이 닮았다고 봐준다면 고맙지만 어떤 거창한 의미를 담으려 한 건 아니다.

-임윤아가 맡은 의주 캐릭터는 여느 재난영화 속 여주인공과 다르다. 통상 재난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똑똑한 척하다가 사고 치는 민폐 캐릭터, 남자주인공이 구해주길 기다리는 섹시 캐릭터인 반면 의주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면서도 멋있으려 꾸미지 않는 허술한 모습을 갖고 있는데.

▶처음 기획부터 여주인공을 조력자 역할이 아닌 주체적이고 동반자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 의주는 이타적이고 능동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다. 그러는 한편 그런 캐릭터에 어딘가 구멍이 있어야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클라이밍 액션이다 보니 와이어와 크레인 등을 이용했어야 했을텐데. 특히 크레인은 동선이 안 맞으면 다시 세팅을 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노하우가 없으면 쉽지 않았을텐데.

▶무술감독님이 크레인으로 액션을 설계하면 나중에 CG로 지우는 작업도 만만찮고 수평적인 액션은 어려울 것이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세트에 앵커를 박고 와이어를 이용한 액션으로 준비를 많이 했다. 무엇보다 안전을 위해서 노력했다. 크레인은 쉽지 않더라. 힘들긴 했지만 나도 스태프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좋은 스태프들 덕이 컸다.

-조정석과 임윤아에게는 어떤 주문을 했나.

▶여러 감독님들이 말씀하시길 캐스팅을 하면 이미 연기 디렉션은 끝난 것이라고 한다. 감독이 연기를 지도하는 입장은 아니다. 나는 신인감독이고, 둘 다 나보다 훨씬 베테랑이다. 나는 주로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컨대 조정석이 엄마를 업어주려다 못 업었을 때의 감정,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용남의 어머니 역의 고두심, 아버지 역의 박인환, 누나 역의 강지영 뿐 아니라 두 매형과 조카 등 가족들의 모습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칠순잔치로 자연스럽게 그려지는데.

▶박인환 고두심 선생님 등 배우들의 공이 컸다. 시나리오 이상을 다들 보여주셨다.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오지랖 넓은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계속 아들인 용남을 혼내다가 마지막에 "고맙습니다"라고 하다. 그런 게 가족 아닐까 싶다.

-'엑시트'는 남녀 주인공이 키스하면서 끝나기 마련인 여느 재난영화와 다른 결말인데.

▶열린 결말로 그리고 싶었다. 담요를 덮어주고 앰뷸런스 오고 키스하면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용남이 마지막에 의주에게 건네는 물건은 찬란한 시절을 상징하는 오브제다. 둘 사이의 많은 감정이 담긴 물건이고. 그래서 무겁진 않지만 무거운 느낌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취직이 됐을까. 에필로그에 후일담처럼 담을 수도 있었을텐데 안 넣었는데.

▶'엑시트'는 하룻밤의 이야기다. 아침에 새로 태양이 떠오르면서 끝나는 이야기다. 그 뒤의 이야기는 관객이 상상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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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과 임윤아/'엑시트' 스틸


-조정석과 임윤아는 어땠나.

▶일단 두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체력이 너무 좋았다. 또 힘들다고 관두는 법이 없었다. 조정석은 정극부터 코믹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한 장면을 놓고 연기를 다양하게 표현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머리에 인이 박혀서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표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윤아는 되게 단단한 사람이다.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는 배우로서 자세가 매우 좋다. 걸그룹 출신이란 걱정이나 편견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여리여리한 이미지라 체력적으로 가능할까란 걱정은 있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조정석이란 큰 기둥과 임윤아의 신선함이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정말 합이 너무 좋았다.

-배우들도 그렇고, 스태프들도 그렇고, 이상근 감독을 도와줘야 한다는 현장 분위기가 있었다던데.

▶이 나이까지 영화 한다고 애쓰다가 데뷔하니 짠해 보여서 많은 분들이 도와준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배우, 스태프들이 주파수를 잘 맞춰주고 너무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신인이라고 무시한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이 다들 배려해주고 도와주고 열심히 해줬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차기작은.

▶머리에는 여러 개가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역시 어둡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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