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엑시트' 웃프고 빠르고 긴장감 있는 재난 영화 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7.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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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볼 수 없던 재난영화가 탄생했다. 웃기고 슬프면서 긴장감이 이어지는 재난영화. '엑시트'다.

용남은 오늘도 철봉에 매달린다. 밥 먹고 자고 일어나서 할 일 없이 철봉에 매달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째 백수 신세. 그가 할 일이란 철봉에 매달리는 일뿐이다.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에선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지만 취업 전선에선 아무 쓸모 없는 경력이다. 동네 바보라며 조카마저 외면한다.


어머니 칠순 잔치를 맞아 온 가족이 한 데 모인다. 용남은 연회장에서 그곳 부점장으로 일하는 산악 동아리 후배 의주를 만난다. 용남은 의주에게 당차게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였지만 아직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한 터다. 의주는 의주대로 박봉에다 점장인 사장 아들이 계속 치근덕대 적잖이 힘들다.

어색한 재회도 잠시. 칠순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건물 밖에서 이상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스 테러다. 유독 가스에 닿거나 마신 사람들이 차례로 쓰러진다. 용남 일가와 의주 등은 가스가 올라오기 전 옥상으로 대피하려 한다. 하지만 비상구가 굳게 잠겼다. 누군가 밖에서 열어줘야만 한다. 용남은 산악 동아리 시절 쌓아온 기술로 건물 벽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려 한다. 그렇게 살아남고 구하려는 사투가 시작된다.

'엑시트'는 독특한 재난영화다. 거대한 쓰나미도, 엄청난 지진도, 뜨거운 불도 없다. 재난영화에선 재난이 또 다른 주인공인 법이지만, '엑시트'에선 딱히 재난이 주인공이 아니다. 엄청난 볼거리로서 재난은 없다. 이 영화에서 재난은 주인공들이 처한 환경이다. 상황이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내려가면 죽는, 어떻게든 달려가고 올라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엑시트' 속 유독 가스는, 그야말로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과 닮았다.


그런 재난이니, 몇 년째 취업 못하고 있는 용남과 취업해도 속앓이 하는 의주가 주인공인 건 적절하다. 청년이 현실 같은 재난을 탈출한다. 웃프게 탈출한다. 긍정하고 배려하며 씩씩하게 달려간다. 그렇기에 '엑시트'는 재난영화이자 성장영화다.

이상근 감독은 '엑시트'를 직선처럼 내달리도록 연출했다. 사연 쌓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재난 소개에 구구절절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캐릭터 소개는 웃기고 경쾌하고 빠르게, 그리고 곧장 재난으로 돌입한다. 쓸모없게 여겨지던 능력으로 가족을 구하고, 남을 구하고, 자신을 구한다. 이 과정이 군더더기 없다. 사연 팔이나 러브라인이나 원흉을 제거하려 애쓰기 마련인 여느 재난영화와 다르다. 각 단계마다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각 단계마다 더 지옥 같은 상황으로 내몰지 않는다. 그렇기에 긴장을 쥐어짜진 않지만 그렇기에 속도감이 좋다. 이런 구성은 코믹한 재난영화라는 모순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선택인 것 같다.

용남을 맡은 조정석은 예의 조정석이다. 찌질해도 귀엽다. 말이 안되는 상황과 능력도 그라서 납득 시킨다. 배우가 갖고 있는 힘이다. 용남이란 캐릭터는 조정석이란 배우를 위한 맞춤옷 같다. 쓸모 없다고 구박받던 청년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 영웅이되 영웅 같지 않은 영웅. 조정석이어서 이질감이 없다.

의주를 맡은 임윤아는 좋다. 의주는 좋은 청년이다. 책임자로서 고객의 안전을 우선한다. 남들이 우왕좌왕할 때 대책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당차고 멋있다. 그렇다고 전형적이지 않다. 멋있게 물러나지만 뒤돌아 살고 싶다고 운다. 능력자다. 재난영화 속에서 흔히 그려지는 민폐 여성주인공이 아니다. 살길을 개척하고 함께 내달린다. 임윤아는 의주 같다. 임윤아는 상업영화 주인공으로 신고식을 훌륭하게 치렀다.

'엑시트'는 엄청나지 않다. 엄청난 재난도, 엄청난 능력자도 없다. 그리하여 분명한 색깔을 드러낸다. 쓰레기봉투로 무장하고, 살려고 뛰어다니면서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재난영화. "아이고 내 새끼야"라는 엄마의 말과 "고맙습니다"라는 아빠의 말이 뭉클하다. 온 가족이 즐길만한 재난영화다.

7월 3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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