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에 전혜진이란 걸 못 알아보길 원했다"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6.25 16:24 / 조회 : 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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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주연배우 전혜진/사진제공=NEW


전혜진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곳저곳 문신을 그리고, 입에 욕을 달고 살며, 짙은 스모키 화장으로 전혜진을 지우려 했다. 새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에서 전혜진은 마약 브로커 춘배를 맡아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스트'는 연쇄살인범 검거를 위해 결정적인 정보를 얻으려 살인을 눈감아 준 형사와 그 형사의 비밀을 알게 된 또 다른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성민과 유재명, 그리고 전혜진이 호흡을 맞췄다. 전혜진은 형사인 이성민에게 정보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파멸로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전혜진이라는 걸 관객이 못 알아봤으면 했다"고 했다. 왜 전혜진이 '비스트'에 참여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촬영 중에 인터뷰를 하러 온 그녀는, 마치 드라마에서 걸어 나온 듯한 모습으로 여러 이야기를 털어놨다.

-'비스트'는 왜 했나.

▶'비스트'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이 미팅을 제안했다. 시나리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했더니 춘배 역할을 제안하더라. "정말요?"라고 답하고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라 다음날 술이 깨고 난 뒤 감독님에게 문자가 왔는데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져서 어렵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이성민 선배가 전화가 와서 "하기로 했다며"라면서 "네가 하면 너무 잘 할 것 같다"고 하더라. 거기에서 용기를 갖고 시작했다.

-원래는 다른 역할로 제안을 받았고, 춘배는 창배라는 이름의 남자 캐릭터였다.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어떤 점에서 끌렸나. 이정호 감독이 처음에는 춘배 역할을 하기 위해선 삭발도 해야 하고, 온 몸에 문신도 그려야 하고, 눈썹도 밀어야 한다고 했는데 다 괜찮다며 하겠다고 했다던데.

▶한편으론 속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다가 전작과 전혀 다른 모습인데 제안해준 게 고맙기도 했다. 삭발도 하겠다고는 했는데, 다른 작품도 있긴 했지만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문신은 뒤태를 드러내긴 하지만 배경이 겨울이라 온 몸을 드러낼 장면이 없으니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고. 다만 딱 보고 아무도 (전혜진이란 걸) 못 알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준비하면서 한창 춘배를 찾아가고 있는데 감독님이 "춘배가 꼭 전혜진일 이유가 있을까요?"라고 하더라. 원래는 남자 캐릭터였고, 여자라면 더 어린 친구가 하는 게 맞을 수도 있었다. 성별이든 나이든, 내가 해야 할 이유가 뭘 지를 계속 찾았다. 튀는 역할이라 화면에서 너무 오버스럽지 않을까를 계속 걱정했다. 그러다가 다른 배우들이 촬영한 것들을 보니 오히려 묻힐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완성된 영화를 보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혜진이란 걸 모르게 하고 싶었다는 건, 다른 역할, 다른 모습에 갈망이 있었다는 뜻인가.

▶물론 나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가 출연한 다른 작품들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왜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들을 동경하지 않나.

-그렇게 해서 다른 모습을 잘 찾아갔나.

▶첫 촬영 때도 자신감이 없었다. 이성민 선배랑 차에서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첫 촬영 때 모습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그 때는 눈이 이상했다며 마지막까지 왜 첫 모습이 안 나오냐고 계속 이야기하더라. '비스트'는 현장에서 배우들을 누르는 뭔가가 있었다. 감독님도 열어놓고 들어가면서 찍는 성격이고. 머리를 반을 파고 떡지게 하고 끝을 각기 염색하고 붙이고 가서 이 정도면 되게 좋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가면 "그래도 삭발이 낫지 않나" 막 이러곤 했다. 더 더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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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주연배우 전혜진/사진제공=NEW


-이성민과 격렬한 액션합이 계속됐는데. 많이 맞고 많이 때리고. 진짜로 맞아서 눈물도 흘렸다던데.

▶합이 짜여져서 간다기보다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이성민 선배를 연극할 때부터 워낙 잘 알아서 믿고 갔다. 그럼에도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그랬다. 다른 배우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쓰레기더미에 얼굴이 파묻힌 채로 구둣발로 얼굴을 맞는 장면에서 너무 아파서 절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스트'에서 춘배의 서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 아쉽지는 않았나.

▶아쉽더라. 영화를 처음 보고 감독님에게 춘배가 좀 더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묻기도 했다. 춘배의 서사가 조금 더 있었다면 더 깊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비스트'는 한수(이성민)와 민태(유재명)의 이야기니깐, 그냥 아쉬웠죠. 뭐.

-영화에선 그려지지 않은 춘배의 서사를 어떻게 상상했나.

▶일단 춘배는 감옥에서 나오면 내가 극 중에서 죽인 조두식에게 살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먼저 감옥에서 귀휴를 나와서 선수를 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춘배는 계속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원래 영화 속에서 춘배의 공간이 있어서 그런 그녀의 마음을 드러내는 게 있었는데 많이 없어졌다. 어려서 할머니 밑에서 혼자 키워졌다가 살기 위해서 살아간 인물. 그녀의 등에 그려진 십자가와 천사는 그런 춘배의 마음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에 그려진 문신도 무덤 같은 걸 뜻하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그런 문신으로 그렇게 꾸미고, 그래서 누가 건드리기만 해봐라,라는 그런 모습. 그렇게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팔에는 꽃 문신이 있는데 춘배가 마약을 하면 떠오르는 환각이 꽃이기도 해서 그렇게 새긴 것이었다. 꼭 마약을 하는 장면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감독님에게 이야기해서 찍지 않았다.

한수에게 마약 갖고 오라고 경찰서를 찾아가는 것도 다른 사람이 보면 똘아이 같지만 그녀는 진짜 살려고 간 것이다. 원래는 운전해준 친구가 끔찍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보고, 춘배 역시 처절하게 당하는 모습이 시나리오에 있었다. 어떻게 찍을지 두려웠던 장면이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갈수록 여자 서사를, 자신만의 서사를 더 찾게 되나.

▶예전에도 그랬다. 20대 초반에는 왜 여자들 영화는 없어요,라곤 했다. 배우라면 누구나 작품 속에서 내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드러내고 싶지 않겠나.

-활동을 쉬다가 막 복귀했을 때는 그런 욕심이 사라진 듯 말하더니 이제는 다시 생겼나.

▶육아보다 이게 낫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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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주연배우 전혜진/사진제공=NEW


-'비스트'는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짐승의 이야기기도 한데. 전혜진 마음 속의 짐승이 있다면.

▶글쎄. 나름 풀고 살아서. 언제 이렇게 '비스트'처럼 욕을 실컷 해보겠나. 액션도 실컷 해보고, 언제 그런 수트를 입어보겠나.

-'비스트'에선 어떤 욕망이 만족됐나.

▶음. 일단 그렇게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하는 순간 춘배로 변했다. 춘배를 연기하기에 다 준비된 순간들이었다. 어디까지 가야하나, 늘 고민했다. 감독님은 계속 질문을 던지는 스타일이고, 그래서 계속 고민했다. 전혀 다른 몬스터처럼 춘배를 상상하면서도 나랑 붙여야 했고, 이상해서도 안 됐다. 아, 큰 코트는 운전해준 친구가 죽고 그 옷을 내가 입었다는 설정이다. '비스트' 시나리오가 좋았던 건, 클래식 영화처럼 캐릭터들의 감정을 깊게 파고 드는 것이었다. 그런 걸 따라가는 게 좋았다.

-이성민과 상업영화에서 각자 큰 비중으로 연기한 건 처음인데.

▶많이 달라졌더라. 수줍은 성격이었고, 원래 말은 많았다. 자리의 차이랄까. 메인으로서 형님으로서 전체를 챙기고 여유롭게 리드하더라.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왜 했나.

▶그것도 내가 할 게 아니야, 그러다가 대본이 너무 재밌었다. 여자들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내 20대, 30대, 40대 같고. 일과 사랑, 우리도 그렇다, 이런 느낌이 들더라. 우리도 서로 경쟁한다, 치열하다, 이런 게 잘 그려져 있었다. 현장도 여자들이 많아서 남자들이 오면 약간 기죽곤 한다. 일단 숫적으로 많으니깐.

드라마는 좀 더 여유로운 영화현장과 달리 빨리빨리 찍기 때문에 기술이 많이 필요하더라.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보여질 지 모르니, 더 신경을 써야한다.

-'불한당'으로 먼저 칸영화제에 갔고, 이번에 남편 이선균이 '기생충'으로 칸에 갔는데.

▶따라가려고 했더니 자꾸 일정을 숨기더라.(웃음) 혼자 가고 싶었나 보다. 이 사람들이 갔다 와서는 왜 같이 안 왔냐고 막 묻더라. 부르지도 않고. 같이 가고 싶었는데. 다른 것보다 '불한당'을 뤼미에르 극장에서 봤으니깐, 그 극장에서 '기생충'을 보고 싶더라. 그곳에서 사람들이 영화를 얼마나 즐기는지 아니깐 그런 것도 보고 싶었고.

-차기작은.

▶영화 '백두산' 촬영이 아직 남았고, 그 다음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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