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스트' 고통으로 끌고 가는 컬트 스릴러 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6.19 10:30 / 조회 :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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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화가 나 있다. 누구에게, 뭐에, 화가 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화가 나 있다. 정체 모를 거무튀튀한 화 속으로 점점 걸어 들어간다. '비스트'다.

인천경찰서 강력반 1팀장 정한수. 정보원들과 끈끈한 관계로 실적이 좋다. 공권력과 폭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그와 라이벌인 강력반 2팀장 한민태. 17일째 행방불명인 여고생 실종사건으로 골치를 썩고 있다. 그러다 여고생이 토막 난 시체로 발견된다.

서장 취임을 앞두고 있는 강력반 과장은 정한수 팀장에게 이번 사건을 잘 해결하면 과장 자리는 "네 것"이라고 부추긴다. 한편 경찰 내사관에선 정한수 팀장의 폭력이 마뜩잖아 한민태 팀장을 과장으로 민다. 이 사건을 먼저 해결하는 사람에게 승진이 약속된다.

정한수는 곧장 여고생 살인사건 용의자를 검거한다. 한민태는 "범인을 잡아, 잡고 싶은 사람을 잡지 말고"라며 용의자를 풀어준다. 둘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감옥에 3년간 갇혀 있었던 정한수의 정보원이자 마약 브로커인 춘배가 나타난다.

춘배는 정한수에게 달콤한 거래를 제시한다. 자신의 살인을 은폐하는 조건으로 진짜 여고생 살인범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유혹한다. 정한수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한민태가 그 사실을 눈치채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간다.

'비스트'는 프랑스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 리메이크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두 형사. 짐승을 쫓다가 자신마저 짐승이 된 남자. 그리고 그 짐승을 견제하다가 또 다른 짐승이 된 남자의 이야기다.

컬트 같다. '비스트'는 동기와 개연성이 휘발됐다. 잔뜩 화가 난 인물들이 거칠게 달려가는 통에 서사는 구멍이 숭숭하다. 그런데도 강렬하다. 이 강렬함으로 끝까지 밀고 간다. 이 강렬함에 매료된 관객들에겐 '비스트'는 컬트 같은 숭배를 받을 것 같다.

이정호 감독은 '비스트'를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만들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대신 '비스트'를 정체 모를 악과 그 악을 쫓다가 악이 된, 그리하여 논리 대신 감정 덩어리로 만들려 한 듯 하다. 이 감정 덩어리는 짙다. 파란 어둠에서 시작된 영화는 갈수록 짙은 어둠으로 변한다. 담배 연기 자욱한 회색 공간만이 쉴 틈이다. 이 회색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짙은 어둠으로 달려간다. 이 어둠 속에서 맥락은 휘발되고 고통만이 남는다. '비스트'가 직접적인 장면이 적은데도 충격이 거세지는 건, 이 고통이 갈수록 커지는 탓이다.

'비스트'는 기묘하다. 전형적인 이야기를 구태여 납득 시키려 하지 않는다. 영화 속 조각 난 시체 마냥 이곳저곳에 한 덩어리씩 이야기를 던져 놓는다. 사건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이 조각 난 이야기들의 덩어리들을 만날 때마다 마주치는 고통이 목적 같다. 이 고통이 '비스트'의 모든 것이다.

정한수를 연기한 이성민은 고통 중독자 같다. 갈수록 더해지는 고통을, 정체 모를 고통을, 잔뜩 화가 난 채 끝까지 몰아붙인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가 '비스트'의 이성민이다. 한민태를 연기한 유재명은 동기가 휘발된 탓에 불안하다. 그나마 불안함을 땅에 붙게 만든 건 유재명의 연기 공이 크다. 춘배를 연기한 전혜진은 강렬한 외모 변신 외에는 아쉽다. 그건 이성민에 이야기가 몰린 탓이다. 그 탓에 춘배의 존재 이유가, 선악과를 건넨 뱀 외에는 없어진 탓이다.

'비스트'는 선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악과를 먹고 악을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자가 각자의 선악과를 먹고 얻은 건 지혜가 아니다. 고통이다. '비스트'는 그런 이야기다.

6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에 비해 감정적인 잔혹 수위가 높다. 조선족을 범죄 집단으로 묘사하는 건, 안일한 획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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