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구가 사라졌다!" 오타니 사이클링히트, 우연이 아닌 이유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6.14 18:18 / 조회 : 4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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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오른쪽)가 14일 탬파베이전 1회 홈런을 날린 뒤 팀 동료 마이크 트라웃의 환영을 받고 있다. /AFPBBNews=뉴스1
LA 에인절스의 일본인 선수 오타니 쇼헤이(24)의 2019시즌은 그저 그런, ‘평범한’ 페이스로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평범하다기보다 실망스럽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지난해 시즌 종료 직후 왼쪽 팔꿈치 부위 인대를 재건하는 토미 존 수술을 받고 뒤늦게 시즌에 합류한 그였기에 최소한 한동안은 경기력에서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그의 부진에 대해선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오타니의 기량은 이미 지난해 검증된 것이었기에 인내심을 갖고 제 기량을 되찾길 기다리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비를 하지 않고 타격만 하는 지명타자로서 그의 성적은 사실 팀 입장에선 마냥 만족하기 힘든 것이었다. 14일(한국시간) 벌어진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원정경기에 나서기 전 오타니의 시즌 성적은 133타석에서 타율 0.256과 OPS 0.775였다. 아주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그의 몸 상태와 경기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타격 성적도 자연스럽게 반등하겠지만 문제는 그 때가 언제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플레이오프 레이스에 올라가기 위해 힘겹게 발버둥치고 있는 에인절스 입장에서는 마냥 기다리고 있기엔 당장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타선의 핵 역할을 해야 할 지명타자가 뜨거워질 조짐 없이 계속 뜨뜻미지근한 수준에 머무른다면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팀의 고민을 알았는지 오타니가 본격적으로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모양새다. 최근 타격감이 올라가고 있음이 뚜렷해지던 오타니는 14일 탬파베이전에서는 제대로 폭발했다.

1회초 기선을 제압하는 선제 3점 홈런을 때리더니 3회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뿜어냈다. 5회엔 2사 후 1루수 키를 넘어 우익선상을 타고 흐르는 3루타를 때려 팀의 공격을 연장시킨 뒤 알버트 푸홀스의 좌월 홈런으로 홈을 밟아 에인절스의 리드를 5-0으로 벌렸다. 이어 7회 2사 후 우중간 안타로 사이클링히트를 완성하며 대폭발의 정점을 찍었다.

일본인 선수로는 사상 첫 메이저리그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하며 4타수 4안타 3타점 2득점을 기록한 오타니는 경기 전 0.256이었던 타율을 0.281로, OPS는 0.775에서 0.862로 훌쩍 끌어올렸다. 경기 전까지 홈런 7개를 포함, 8개뿐이었던 장타 수도 11개로 늘어났다. 오타니의 사이클링히트는 에인절스 선수로는 단 8번째로 지난 2013년 5월 마이크 트라웃이 기록한 이후 6년 만에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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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이날 오타니가 때린 첫 3개의 장타는 하나같이 배트를 떠난 순간 레이저빔처럼 날아간 타구의 질에서 바로 대형 타구임을 직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좌중간으로 빨랫줄처럼 날아간 1회 홈런에 대해 탬파베이 현지 중계팀은 “맞는 순간 2루타라고 확신할 만한 타구였는데 눈 깜짝할 새 눈에서 사라졌다”고 탄성을 내질렀다.

이어진 2루타와 3루타도 타구 소리만 듣고도 가슴이 뛸 만큼 잘 맞았다. 이날 에인절스는 오타니의 1회 3점포, 그리고 5회 2사 후 3루타에 이어 나온 푸홀스의 투런포로 얻은 5점 덕에 5-3으로 이겼다. 이날 오타니가 없었다면 5득점과 승리는 모두 힘들었을지 몰랐다.

오타니의 상승세는 최근 경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9경기에서 오타니는 32타수 14안타(타율 0.438)에 5홈런, 12타점, 11득점을 기록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 3일까지 0.225였던 시즌 타율은 어느새 0.281로 훌쩍 상승했다. 타율이 올랐을 뿐 아니라 질 좋은 타구가 부쩍 늘었고 당연히 장타도 따라오면서 이제 타자로서 오타니가 자신의 본궤도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오타니의 급격한 상승세가 최근 같은 일본인 투수와의 투타대결을 통해 본격화됐다는 사실이다. 오타니는 지난 9일 자신의 고교 직속 선배이기도 한 기쿠치 유세이(시애틀 매리너스)와 투타 맞대결에서 홈런과 2루타 포함, 5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에인절스의 12-3 압승을 견인했다.

이어 12일에는 LA 다저스의 마에다 겐타를 상대로 1회 선제 투런홈런을 폭발시켰고 에인절스는 여기서 충격을 받은 마에다를 상대로 1회에만 총 5점을 뽑아 결국 5-3으로 승리, 다저스와 두 경기 시리즈를 싹쓸이했다.

오타니는 앞서 류현진이 선발 등판한 시리즈 1차전에선 선발 명단에서 빠져 벤치에서 출발한 뒤 3-3 동점이던 8회 선두 대타로 등장, 다저스 불펜을 상대로 볼넷을 골라낸 뒤 결국 결승 득점을 올리며 에인절스의 5-3 역전승을 이끌었다. 다저스가 시리즈를 내준 것은 지난 4월 말~5월 초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처음이었다.

사실 최근의 상승세 이전에도 오타니는 비록 전체적인 성적은 부진한 가운데서도 고비마다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올해 에인절스의 승리가 오타니의 타격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우가 수차례 있었다.

허약한 피칭(팀 평균자책점 5.01·AL 12위)을 탄탄한 타격(AL 팀타율 4위)로 힘겹게 커버하며 현재 승률 5할선 근처(34승35패)에 머물고 있는 에인절스는 아직까지 플레이오프 희망이 살아 있다. AL 두 번째 와일드카드 위치에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36승32패)와 2.5경기 차이니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오타니가 타석에서 상승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후반기에 충분히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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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오타니 쇼헤이의 투구 모습. /AFPBBNews=뉴스1
에인절스의 브래드 어스머스 감독은 14일 경기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오타니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기 시작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올스타전 이전에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가능하긴 하다”고 답했다. 당초 올해 시즌 중엔 마운드에 오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빠른 회복 속도임에 분명하다.

물론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과 실전 등판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지금 시점에서 오타니가 올해 투수로 등판할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처럼 성급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올스타전 이전에 투구를 시작하고 이후 부상 재발에 대한 우려만 씻어낼 수 있다면 시즌 막판 또 다른 깜짝 시나리오가 등장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즉 에인절스가 마지막까지 플레이오프 레이스에서 완전히 탈락하지 않는다면 오타니가 타석뿐 아니라 마운드에도 뜨는 시나리오다. 다른 선수라면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오타니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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