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생충' 기생은 해도 공생은 않는 슬픈 자화상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5.2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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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몽상가가 차가운 리얼리스트로 돌아왔다. '기생충'은 봉준호 월드의 3막을 연 작품이다.

땅과 닿아있는 창문 안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기택 가족. 그놈의 대만 카스테라가 망하는 바람에 집에 돈이 끊긴 지 오래다. 윗집에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걸면서 인터넷도 안된다. 무능한 가장 기택과 "계획이 뭐냐"고 묻는 아내 충숙, 4번 수능 치고 백수인 아들 기우, 위조는 기가 막히게 하는 막내딸 기정.


살길 막막한 이 집에 한 줄기 빛이 내린다. 기우의 친구가 부잣집 고액 과외를 알선해 준 것. 기우는 기정의 도움으로 학력을 위조해 글로벌 IT기업 박사장 집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다. 현란한 말솜씨에 순진한 박사장의 아내 연교가 금방 마음을 연다. 기우는 동생 기정을 박사장 둘째의 미술교사로 취업시킨다. 기정은 꾀를 내 아빠 기택을 박사장의 운전기사로 취직시킨다. 기택은 꾀를 내 아내 충숙을 박사장네 가정부로 들여앉힌다. 그렇게 기택네 가족은 박사장네 가족에 기생하게 된다.

'기생충'은 차갑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동심을 잃지 않고 희망찬 미래를 꿈꿨던 그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웃음마저 건조하다. 대만 카스테라와 종북 개그가 끌어내는 웃음은 메말랐다. 한국 사람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차가운 현실에서 피어난 웃음인 까닭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차가운 웃음을 바탕으로 반지하부터 높고 높은 저택까지 이어지는 수직의 계단을 쌓았다. 직접적이다. 마치 동화에서 빈민굴의 아이가 꾸는 꿈 속의 높은 성처럼, 카메라는 수직으로 오르내린다. 반지하의 차가운 푸른색과 누런 갈색, 대저택의 따뜻한 녹색과 유려한 갈색. 색마저 분명하다. 이 직접적이고 알기 쉬운 대비는, '기생충'에 쉽게 다가 가게 만든다. 까뮈의 '이방인'처럼 분명 어려울법한 전개를, 소동극으로 쉽고 친숙하게 풀어낸 건, '기생충'이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등 봉준호 감독 영화 세계 1막에선 소시민들이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마더'를 거쳐 '설국열차'와 '옥자' 등 2막에선 소시민들이 원하는 걸을 얻기 위해 두터운 시스템과 맞서 싸웠다. 1막과 2막에선 공히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따뜻했다. 3막의 시작일 '기생충'은 다르다. 차갑다. 섣부른 희망을 주지 않는다. 똥물이 넘치든, 하수가 역류하든, 바닥은 바닥이고, 계급은 계급이다. 가난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부자면 착할 수 있다.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한 자를 끌어내린다. 꿈을 꿔도 꿈은 꿈일 뿐이다. 마스터가 된 봉준호 감독은 이제 헛된 희망으로 위로하기보단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기로 한 모양이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때로는 롱테이크로, 때로는 클로즈업으로, 더러는 활공하며, 좁은 곳은 좁게, 넓은 곳은 넓게 '기생충'의 세계를 담아냈다. 그의 빛과 색은 '기생충'의 방점이다. 가히 명장의 붓 답다.

기택을 맡은 송강호, 충숙을 맡은 장혜진, 기우를 맡은 최우식, 기정을 맡은 박소담, 봉준호 월드에서 한 번쯤 만난 듯하다. 새로 봉준호 월드에 탑승한 박사장 역의 이선균과 아내 연교 역의 조여정은 새롭다. 특히 조여정은 봉준호 월드에서 익히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다. 매우 좋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세계를 품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영화다. '괴물'의 가족과 강당과 지하, '살인의 추억'의 블랙 코미디와 '설국열차'의 계급, 이번에는 살아있는 강아지들. 이 상징들을 차갑게 품었다. 그리고 노래한다. 최우식의 목소리로.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최우식의 노래까지 들어야 이 방향점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기생은 해도 공생은 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5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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