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텅 빈 극장과 한 영화로 꽉 찰 극장..스크린상한제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4.23 12:25 / 조회 : 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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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을 앞두고 극장가가 고요하다. 22일 극장을 찾은 총 관객수가 10만 2862명 밖에 되지 않을 만큼, 4월 극장가는 혹독한 비수기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 차에 사전 예매량이 200만장 돌파를 눈앞에 둘 만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엄청나다. 극장은 비수기 손실을 만회하려 거의 모든 상영관을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도배할 태세다.

올 4월 극장가는 모범 사례라고 할 만큼 다양한 영화들이 골고루 상영관과 상영횟차를 보장받으며 공존하고 있다. '생일'과 '미성년' '크게 될 놈' '아이 엠 마더' '왓치' '헬보이' '돈' 등 한미 상업영화들과 롱런 중인 '그린 북'과 '장난스런 키스' '로망' '나의 작은 시인에게' 등 다양성 영화들이 함께 관객을 만나고 있다. 수작들도 상당하다. 재미와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두루 상영되고 있다.

문제는 극장이 텅 비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영화들이 골고루 상영되고 있지만 좌석점유율은 박스오피스 1위인 '생일'이 20%도 채 되지 않는다. 4월은 통상적으로 극장 비수기다. 그럼에도 올 4월은 볼 만한 영화들이 상당한 데도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고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만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반면 '어벤져스: 엔드게임' 예매량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미 역대 예매량 최고 기록을 세웠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123만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예매가 오픈되자 CGV 등 멀티플렉스 서버가 다운됐을 정도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역대 최다 스크린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극장들로선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기에 상영횟차가 줄어든 만큼 더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하려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상영점유율은 77.4%를 기록했던 '어벤져스: 인피니티워'를 넘어설 것 같다. 문화가 있는 날에 개봉하는데다 개봉 버프(개봉 당일 관객이 몰리는 현상을 일컫는 영화계 은어)로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가 예상된다.

다양하지만 텅 빈 극장과 한 영화로 꽉 찰 극장.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여러모로 한국 영화계에 화두를 던질 것 같다.

이런 가운데 박양우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2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스크린 상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취임 전 영화계 일각의 반대를 받았던 박 장관이 첫 일성으로 스크린 상한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건 의미심장하다. 이에 대해 조현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은 "지난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기준으로 협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우 의원이 지난 15일 정세균, 손혜원 의원 등과 함께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에 따르면, 6편 이상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할 수 있는 복합상영관에서 같은 영화를 오후 1∼11시 프라임 시간대에 총 영화 상영 횟수의 50%를 초과해 상영해서는 안된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어벤져스: 엔드게임' 같은 영화가 향후 상영될 경우 극장에서 한 영화로 줄 세우는 현상은 사라지게 된다. 얼핏 블록버스터 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에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괄적인 규제는 오히려 다양한 영화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됐다.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극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VOD 서비스는 통합전산망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전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안된다. 해외 판매액도 많지 않다. 한국영화가 해외 판매 국가를 소개하지, 판매 금액을 공개하지 않는 건, 그만큼 금액이 적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가 개봉하면 최대한 극장에서 수입을 내려 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벤져스: 엔드게임' 같은 영화가 개봉하는데 스크린 수가 규제를 받게 되면 극장으로선 최대한 오랜 기간 상영하려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특정 영화들이 오랜 기간 극장에서 상영되면 추후 개봉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상업영화들은 개봉관을 확보할 수 있지만 다양성 영화들, 독립영화들은 개봉조차 못하게 되기 쉽다. 한국은 스크린 수에 비해 개봉 편수가 많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같은 영화가 극장에서 오랜 기간 상영되면 그 뒤로 상영되는 규모가 있는 영화들이 빈자리를 채우게 되고 그 영화들도 길게 상영되면 작은 영화들은 아예 상영될 기회조차 잃게 되는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극장으로선 흥행이 되는 영화들만 오래 상영하려 할 게 분명하다.

관객의 소비 성향도 바뀌었다. 스크린 독과점 현상 때문인지, SNS 등의 발달 때문인지, 복합 작용일지, 관객들의 영화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 개봉 첫주에 보거나 반응을 확인하고 보는 소비 패턴이 생기면서 첫 주에만 반짝 흥행하는 영화들이 늘었다.

이런 소비 패턴은 다양한 영화들이 골고루 상영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또 달라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소비 패턴이 바꾸기 전에 극장들은 자신들만의 답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작은 영화들 상영 기회는 확연하게 줄고, 상업영화들로만 채워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일괄 규제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에 신중해야 한다.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한 스크린 상한제는 일괄 규제가 아니라 탄력 규제 등 유연하게 적용하는 걸 고려해야 한다. 성수기와 비수기를 나눠서 스크린 상한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래야 작은 영화들이 상영될 기회를 갖게 된다. 아울러 지원책도 병행돼야 한다. 스크린 상한제를 실시하는 프랑스는 좌석점유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극장에 지원을 한다. 규제와 보완책이 같이 논의돼야 한다.

올 4월 극장가는 한국 영화산업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양하되 관객이 없는 상황과 한 영화로 곧 도배될 상황, 그리고 일괄 규제를 적용하려는 움직임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하면 스크린 독과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그런 목소리들은 스크린 상한제 등 규제에 힘을 실을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다양한 영화들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이 자칫 다양한 영화들을 죽일 수 있다.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을 욕하는 건 쉽다. 박수받기도 좋다. 박수에 취해 소뿔을 고치겠다고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할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던질 화두를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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