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2' 제작 연기 속사정과 韓영화 프랜차이즈의 숙제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4.11 11:06 / 조회 : 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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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작이 무기한 연기됐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내년 여름 텐트폴로 야심 차게 준비했던 영화 '해적2' 제작이 일단 멈췄다.

당초 올 6월 1일 크랭크인 예정이었던 '해적2'는 주연 배우들의 출연 고사로 제작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최근 결정을 내렸다. '해적2'는 2014년 개봉해 866만명을 동원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속편. 전편은 조선의 옥새를 삼킨 고래를 잡으려는 산적 장사정(김남길)과 부하 철봉(유해진) 그리고 해적 여월(손예진)의 활약을 그렸다.

제작사 하리마오 픽쳐스와 롯데 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부터 '해적2'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전편의 이석훈 감독 대신 김정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 롯데로선 '신과 함께'에 이어 '해적'을 프랜차이즈로 선보인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쉽지는 않았다. 우선 프랜차이즈가 되기 위해선 주연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해야 하는 게 필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리부트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할리우드에선 배우들이 프랜차이즈 출연을 결정할 때는 최소 3편까지 출연한다는 조항을 두곤 한다. 강제 조항은 아니며, 출연료 등은 조정되지만 사전 합의를 한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에서 제작한 박훈정 감독의 '마녀'는 그래서 김다미가 3편까지 출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신과 함께'가 1,2편을 동시 촬영한 건, 주연배우들의 일정을 맞출 수 없는 데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해적2'는 여기서부터 꼬였다. 좋은 기획에 시리즈로서 장점을 살린 시나리오 등 사전 준비는 좋았지만 배우들과 출연 협의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김남길과 손예진은 '해적2'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유해진은 오랜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출연을 고사했다. 지난해 말이었다.

작품 선택은 전적으로 배우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탓을 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 제작진은 유해진을 대체할 배우 캐스팅을 고심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유해진의 그림자가 워낙 컸다. 시간이 흘렀다. 이광수가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 제작진은 젊은 피로 새로움을 더한다는 계획이었다.

시간이 너무 흘렀다. 프로젝트가 궤도가 오를 때까지 기다려준 김남길과 손예진으로서도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손예진은 현빈과 올 하반기 박지은 작가의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 손예진은 그간 로맨스, 액션 등 다양한 영화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해적2'에 대한 의리로 고사해왔다. 그렇지만 하반기 드라마 출연을 결정하면서 '해적2' 촬영이 올 상반기 내에 마무리돼야 했다.

드라마 '열혈사제'를 마무리하고 있는 김남길도 고민이 컸다. 원년 멤버들이 합을 맞추는 게 필수인 데다 드라마가 끝난 뒤 소화해야 할 일정들이 만만찮았다. 다른 출연작 제안들과 기획들도 상당했다. 그중에는 아직 기획 단계지만 주지훈과 투톱으로 논의 중인 '케미컬 브라더스'(가제)도 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김남길은 고심 끝에 3월말께 '해적2' 출연을 정중히 고사했다.

제작진은 스태프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새롭게 프로젝트를 정비할 때까지 시간을 갖기로 최종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제작이 연기됐다고 무산되는 건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유아인, 강동원, 설리를 주인공으로 생각했다가 여러 사정으로 촬영이 연기되면서 유아인, 스티븐연, 전종서을 주인공으로 재정비해 새롭게 선보였다.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려다 접은 '귀환'도 프로젝트를 재정비해 '셀터'란 제목으로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는 중이다.

위기는 얼마든지 기회가 될 수 있다. '해적'도 처음 기획할 때는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 조합에 반대가 만만찮았다. 지금의 제작진이 반대를 무릎 쓰고 밀어붙여 성공을 거뒀다.

다만 '해적2' 제작 연기는 한국형 프랜차이즈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처음 기획부터 장기적인 안목으로 준비하지 않는 한 제작이 여의치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들 중 시리즈가 적었던 이유는, 한국 시장만을 놓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작아 장기적인 기획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기가 어려웠다. 글로벌 시장으로 만회가 가능한 할리우드와는 달랐던 탓이다.

최근 한국영화 기획 중 프랜차이즈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건, 영화 한류로 아시아 시장 성공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산행'에 이어 '신과 함께' 시리즈가 아시아 각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홍콩 등 중국권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 문의가 부쩍 늘었다.

현재 영화계에선 '부산행' 세계관을 잇는 '반도'를 비롯해 '신과 함께' 3,4편 등 여러 시리즈물이 제작을 준비 중이다. 현빈과 유해진이 주연을 맡아 흥행에 성공한 '공조'도 속편 기획에 한창이다. 시나리오 완성도에 따라 이석훈 감독이 연출을 맡을 계획이다.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한산' '노량' 등 이순신 3부작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대작 불패 신화는 사라졌다지만, 대작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제작비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 한국영화로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기획들이 늘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류의 시발점인 TV드라마도, 포스트 한류를 이끄는 K팝도 그렇게 시장을 넓혔다.

한국영화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대작과 중급영화, 독립영화 등 다양성 영화가 공존해야 한다. 대작이 이끌고 중급영화가 받치고 다양성 영화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한국영화 프랜차이즈가 충분한 준비로 새로운 길을 열게 될지, '해적2'는 도약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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