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한국시간) 애리조나전에서 투구하는 류현진. /AFPBBNews=뉴스1 |
8분가량 통화하면서 크게 세 가지를 물었다. "1회 첫 타자 애덤 존스에게 삼진을 빼앗은 구종이 커터였는가." 류현진의 목소리가 더 밝아졌다. "네, 커터 맞고요. 안쪽으로 확 휘어 들어가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류현진은 첫 타자부터 쉽지 않은 승부를 벌였다. 볼카운트 3-2에서 존스가 연달아 공을 커트해 냈다. 결국 8구째 커터가 타자 몸쪽으로 휘어 들어갔고 존스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이 장면이 결정적이었다. 생애 첫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 한국인로서는 2002년 박찬호 이후 무려 17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 대기록이었다. 큰 경기에 강하다는 류현진도 어찌 긴장을 안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의 공으로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부담감이 크게 줄었고, 이후 경기를 술술 풀어나갈 수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은 "왜 두 차례 정도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가 다시 풀었는가"였다. 류현진은 "발을 잘못 디뎌 다시 풀고 던졌다"고 답했다. 궁금하기도 하도 걱정도 됐는데 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9일(한국시간) 애리조나전에서 투구하는 류현진. /AFPBBNews=뉴스1 |
6회 1사 후 존스에게 내준 홈런은 초구에 볼카운트를 잡으려 커브를 던지다가 한가운데로 몰려 맞은 것이다. 애리조나 타자들 중에서는 케텔 마르테와 에두아르도 에스코바 등이 그동안 류현진의 공을 잘 쳤다. 이날 마르테는 유격수 땅볼과 삼진으로 봉쇄했지만 에스코바에게는 1회 내야안타와 6회 2루타를 허용했다. 자신에게 강한 타자들의 정보는 잘 기억해 다음 대결에서 활용해야 한다.
다저스 타선이 모처럼 화끈한 지원을 해준 것도 호투의 배경이 됐다. 다저스는 1회말 맥스 먼시의 땅볼로 선제점을 뽑고 2회에도 작 피터슨의 투런 홈런으로 스코어를 3-0으로 만들었다.
또 하나의 백미는 피터슨의 홈런 직전 1사 1루에서 류현진이 투수 앞 희생번트를 성공시킨 것이다. 상대 투수 잭 그레인키가 번트 수비를 잘 하는 편인데, 절묘한 위치로 타구를 보냈다. 류현진으로선 투구도 타격도 만점 활약을 펼친 셈이다.
마지막으로 "작년보다 투구 때 팔 스윙이 빨라진 것 같다"고 물었다. 류현진도 "그렇다"고 인정했다. 하체가 강해지면서 엉덩이 회전(힙턴)이 빨라진 덕분이다. 그러면 투구 밸런스가 안정되고, 같은 구속이라도 공의 회전력이 마지막까지 좋아진다. 그만큼 류현진이 하체 훈련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중 하나로 불렸던 그레인키와 맞대결에서도 류현진은 완승을 거뒀다. 36세의 그레인키(3⅔이닝 7피안타 4홈런 7실점)는 공의 위력이 크게 떨어진 모습이었다. 볼에 힘이 없고 속구 스피드도 좋지 않았다.
체인지업이나 투심으로 땅볼을 유도하고 코너워크로 승부를 하려 했으나 타자들의 눈에 공이 다 보이는 듯했다. 나이가 있는 데다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개막전이라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거기에 동료 타자들까지 류현진에게 막혀 더욱 힘겨운 경기를 치른 듯 싶다.
/김인식 KBO 총재고문·전 야구대표팀 감독
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