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경찰' 전소니 "적당한 때는 미래에 있는 게 아니다"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3.22 13:52 / 조회 : 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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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주인공 전소니/사진=임성균 기자


전소니(28)는 2019년 한국영화의 발견 중에 하나 일게 분명하다. 무명 배우로 기로에 서 있을 때 '악질경찰'을 만났다. 쉽지 않은 영화에 쉽지 않은 역이었다.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은 경찰 창고가 의문의 사고로 폭발하자 쓰레기 같은 형사가 용의자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전소니는 사건의 열쇠를 쥔 미나 역을 맡았다. 세월호로 소중한 친구를 잃고, 그 친구가 남긴 '츄리닝'을 입고 다니는 소녀다.

선택도, 결정도, 연기도, 어려운 영화였다. 한편으론 무명 배우였던 2016년의 전소니에겐 기회이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제대로 된 서사가 있는 여자 역할. 연기를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파뭍혔던 전소니에겐 동아줄 같은 제안이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거절했다. "스스로 양심에 선뜻 하겠다고 못하겠다"는 이유였다. '아저씨' 이정범 감독에 이선균이 출연하는 영화에 핵심적인 역할이지만,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까 두려웠다. 두려웠다. 그 두려움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악질경찰'을 흘려 보내려 했다. 그렇게 잊으려 했다.

'악질경찰'은 처음부터 전소니에게 왔다. 한예종에 다니던 감독의 단편 영화 '무영'을 본 이정범 감독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쪽대본을 주고 연기해보라고 하는 오디션이 아니었다. 이정범 감독은 시나리오를 통째로 주고 읽어보라고 했다. 무슨 역이 하고 싶냐고 물었다. 전소니는 미나라고 했다. 하지만 못하겠다고 했다. 이정범 감독은 전소니 앞에서 영화에 대한 진심을 토로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래도 못하겠다고 했다.

한 달이 흘렀다. 떠나 보낸 줄 알았던 '악질경찰'이 전소니에게 계속 머물렀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 이야기를 해도 될까, 벌써"부터 "저렇게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려 하는 분들이 있는데 두려움에 피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을까"를 거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까지. 전소니는 이정범 감독에게 다시 연락했다.

이정범 감독은 "이제 다시 안 한다고는 못해"라고 말했다. 무명 배우에게 오디션도 없이 중요한 역을 맡긴 이정범 감독도, 깊은 고민 끝에 성배일지 독배일지 모를 잔을 마시기로 결정한 전소니도, 모두 무모했다.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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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주인공 전소니/사진=임성균 기자


전소니가 연기를 꿈꾸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기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건 고등학교 시절부터였다.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는 걸 좋아했다. 전소니는 "지나간 것들, 과거에 남아있는 것들, 그렇게 기억되는 것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가서 단편 영화들을 찍었다. 인연이 닿은 한예종 감독들의 단편도 출연했다. 일은 계속 하고 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계속 이 일을 해도 될 자격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악질경찰'로 인연을 맺게 해준 '무영'은 그런 시기에 만난 작품이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을 못해 두려움에 떠는 딸 역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가족을 잃었다.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이정범 감독이 봐줬다.

'악질경찰'이 시작됐다. 26살 즈음에 19살 미나를 연기했다. 자기 서사가 분명한 역할을, 이런 장편 상업영화에서 맡는 건 처음이었다. 불안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시작할 때는 소속사도 없었다. 이정범 감독과 연기 동료들, 스태프들이 도와줄께라며 응원해줬다.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불안하고 고민했지만 결정하고 난 뒤에는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매일매일 출근하면서 이 현장에서 내가 처음이라고 어리바리하고 싶지 않았어요."

동료들도 그랬다. 처음이라고 너무 배려하지도 않았고, 처음인데 너무 잘 알 것이라고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전소니에게 미나는 처음부터 멋있었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고 표출하는 자신감. 내가 없는 것들을 갖고 있어요." 전소니는 긴장했다. 그래도 "떨리는 긴장이 아니라 뭉근한 긴장이었어요."

입에 찰지게 욕을 붙이기 위해 연습도 많이 했다. 여성 스태프들에게 배우기도 했다. 너무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했고, 너무 욕심을 안 내지도 말자고 마음 먹었다.

이정범 감독과 이야기도 많이 했다. 납득이 안되는 부분, 자칫 여성으로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전소니는 "감독님이 열려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해서 고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미나가 영화에서 퇴장하는 장면은, 촬영 직전까지 무슨 대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이정범 감독이 촬영 당일 대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전소니는 "한 장면을 며칠 동안 찍은 것도 처음이고, 그렇게 잘하고 싶고, 감정적으로 흔들었던 장면도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납득했다. 그 연기를 하기 위해서. 전소니는 "미나의 무력감이 가장 컸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아이였다고 생각했다. 상실감이 워낙 큰 아이라 잃어버리는 걸 견디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니들이 그러고도 어른이냐"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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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주인공 전소니/사진=임성균 기자


'악질경찰'이 개봉했다. 찍은 지 2년이 지나 관객과 만났다. 세월호 이야기를 전하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영화가 공개되고 사람들이 묻곤 한다.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게 적당하냐고.

"처음 '악질경찰'을 거절했을 때는 적당한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적당한 때라는 게 과연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출연을 결정할 즈음 한 기사를 있었어요. 차에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녔던 한 시민의 이야기였어요. 아침에 차를 보니 누군가 '잊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카드를 붙여놨더라는 이야기였어요. '악질경찰'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적당한 때라는 건 미래에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전소니는 '악질경찰'을 끝내고 드라마 '남자친구'도 했다. 연기는 아직 잘 못해도 언제나 재밌다. 다만 여전히 출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직업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좋았던 과거로 기억되고 싶어서 배우를 꿈꿨던 소녀는 이제 직업인으로 촬영현장에 출근한다. 적당한 때와 적당한 방법이 미래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무명배우는 이제 적당한 때와 적당한 방법은 바로 눈앞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즐거움만으로 이 일을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요. 물론 직업인으로 생활도 필요하지만 연기로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악질경찰'을 같이 한 이선균은 전소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랑 같이 하면 다 상 받아. 나는 안보이고."

이선균의 예측이 적중할지, 분명한 건 전소니는 '악질경찰'에서 보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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