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1 지명권 잡아라' 고의 패배의 새 지평을 연 뉴올리언스 [댄 김의 NBA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3.20 13:06 / 조회 : 18634
  • 글자크기조절
image
뉴올리언스의 줄리어스 랜들(위). /AFPBBNews=뉴스1
미국프로농구(NBA) 정규시즌이 서서히 피날레를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약 3주 동안 미국에선 매년 스포츠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 막을 올린다.


바로 미 대학농구 NCAA(전국대학체육협회) 토너먼트로 22일(한국시간)부터 3주에 걸쳐 전국 64개 대학(실제론 68개교로 출발해 플레이 인 라운드 4경기를 거쳐 64강이 완성된다)가 출전하는 열광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 NCAA 토너먼트가 열리는 기간 중엔 미국 사회 전체는 온통 이 대회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모든 직장의 사무실마다 토너먼트 대진표를 놓고 승패를 맞추는 내기가 거의 필수적으로 펼쳐진다. 농구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부터 나서 이 대진표의 예상 승패를 찍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기간 중엔 NBA도 동생들에게 센터 스테이지를 내주고 뒤로 한 걸음 밀려나는 처지가 된다. 평소에는 대학농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NBA 팬들의 시선도 이번 ‘3월의 광란’ 기간 중엔 이 토너먼트에 꽂힐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토너먼트는 앤서니 데이비스(26·뉴올리언스) 이후 대학농구 선수로는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되는 듀크대의 포워드 자이언 윌리엄슨(19)의 존재로 인해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오는 6월 NBA 드래프트 때 누가 전체 1번 지명권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구단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모두 윌리엄슨 때문이다.


윌리엄슨은 듀크대의 ACC(애틀랜틱코스트 콘퍼런스) 토너먼트 3경기에서 경기당 27득점과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견인했다. 지난 20년간 미 대학농구 리그 토너먼트에서 경기당 25득점 이상 1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한 1학년생은 윌리엄슨 외엔 케빈 듀랜트(골든스테이트)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전체 톱시드이자 토너먼트 동부지구 톱시드인 듀크대는 윌리엄슨의 존재로 인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윌리엄슨이 2012년 토너먼트에서 켄터키를 내셔널 챔피언으로 이끈 데이비스처럼 역대급 최고 유망주로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image
듀크대의 자이언 윌리엄슨. /AFPBBNews=뉴스1
하지만 NBA 팬들의 진짜 관심사는 윌리엄슨이 듀크대를 우승으로 이끌 것이냐 보다는 과연 누가 윌리엄슨을 얻는 엄청난 행운을 잡을 것이냐에 쏠려 있다. 윌리엄슨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는 6월 실시되는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지명권을 얻는 것뿐이다.

알려진 바처럼 NBA는 로터리 시스템을 통해 드래프트 지명순서를 정한다. 드래프트 로터리는 올해부터 규정이 다소 바뀌기는 했으나 정규시즌 종료 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14개 팀들만 모아놓고 추첨을 실시해 톱4 지명권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상위 1~4번 지명권을 추첨으로 정한 뒤 그 이후의 지명순서는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정해진다. 그냥 모든 지명권 순서를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하지 않고 굳이 추첨을 통해 1~4위 지명권 순서를 정하는 것은 톱4 지명권을 얻기 위해 팀들이 고의적으로 경기에서 패하는 소위 ‘탱킹(Tanking)'의 만연을 막기 위한 것이다. 성적이 나쁠수록 1~4번 지명권을 얻을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무조건 꼴찌라고 자동적으로 상위 지명권을 얻지는 못하게 함으로써 고의적으로 경기에서 패하려는 시도를 가능한 막아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팀들의 전략적인 ‘탱킹’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NBA에서 드래프트 전체 1번 지명권의 가치는 평소에도 소중하지만 올해처럼 압도적인 넘버1 지명선수가 있을 때는 그 가치는 폭등하게 마련이다.

image
뉴올리언스의 앤서니 데이비스. /AFPBBNews=뉴스1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나 데이비스, 그리고 윌리엄슨과 같은 미래의 약속된 슈퍼스타가 나오는 드래프트 시즌의 넘버1 지명권 가치는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수준이 된다. 이로 인해 플레이오프 진출 커트라인 밑으로 떨어진 팀들은 남은 시즌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플레이오프에 나가려고 노력하는 대신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넘버1 지명권을 얻을 확률을 높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넘버 1 지명권을 얻을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 바로 남은 경기에서 많이 지는 것이다. 결국 이왕 플레이오프 진출이 물 건너간 팀들은 이제 시즌 남은 경기에서 가능한 티 나지 않게 많이 지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 됐다.

그런데 그렇게 티 내지 않고 조용히 지는 단계를 넘어 아예 티를 ‘팍팍’ 내면서 일부로 지는 길을 찾아가는 경우까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주말 펼쳐진 뉴올리언스와 피닉스 선스의 경기에서 뉴올리언스는 사실상 고의적으로 패하는 방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상황은 다음과 같다.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진 경기에서 뉴올리언스는 종료 7.7초를 남기고 136-133으로 앞선 상황에서 공격권을 쥐고 있었다. 인바운드 패스만 성공시키고 상대의 반칙으로 얻게 될 자유투만 성공시키면 승리가 거의 굳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은 7.7초 동안 뉴올리언스가 보여준 플레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무조건 지려고 작정하고 나선 팀의 그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완벽한 작전능력의 정수를 보여준 것이었다. 우선 사이드라인에서 인바운드 공격에 나선 가드 엘프리드 페이튼은 볼을 인바운드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5초룰 반칙에 걸려 공격권을 피닉스에 넘겼다.

이어진 피닉스의 공격에서 뉴올리언스는 반칙을 해 상대를 프리드로 라인에 보내는 대신 상대가 종료 1.1초 전 3점슛으로 동점을 만드는 것을 막는 시늉만 하면서 지켜봤다. 뉴올리언스의 베테랑 중계방송 아나운서 조엘 마이어스는 “반칙해야지”, “반칙해야지”라고 말하다가 동점 3점슛이 들어가자 “아니, 왜 반칙을 안 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완전히 상대에게 선물을 줬네”라고 외쳤다.

image
뉴올리언스의 앨빈 젠트리 감독. /AFPBBNews=뉴스1
하지만 그보다 더 황당한 상황은 잠시 뒤에 벌어졌다. 타임아웃 후 1초를 남기고 마지막 공격에 나서기 전 뉴올리언스의 앨빈 젠트리 감독이 갑자기 타임아웃을 부른 것이다. 하지만 뉴올리언스는 이미 타임아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고 이는 곧바로 테크니컬 파울이 돼 피닉스에 자유투 2개를 헌납했다.

결국 피닉스는 이 뉴올리언스의 인심 좋은 선물 덕에 138-136으로 승리를 따냈다. 마이어스는 이 순간 “난 NBA 경기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장면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기가 막혀 했다.

물론 뉴올리언스는 당연히 이 모든 과정이 고의적인 패배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경기에서 질 생각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엉망으로 하면 되지 굳이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막판에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방법으로 지는지 의구심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7.7초 동안 벌어진 상황은 누구의 눈에도 전혀 말도 안 되는 비정상 플레이의 연속이자 NBA에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당시 뉴올리언스는 리그 전체에서 뒤에서 8등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성적의 팀이 여럿 있어 1승 차이로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전체 1번 지명권을 얻을 확률이 확 떨어질 수도 있는 처지였다. NBA는 지난해까지 25%였던 하위 3개팀이 로터리에서 1번 지명권을 얻을 확률을 올해부터는 하위 4개팀이 각 14%씩으로 낮추는 등 순위에 따른 확률을 조정했지만 1승에 따라 순위가 3~4계단 이상 움직일 경우 확률도 그만큼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경기만 더 지면 확률이 단 몇 %라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image
시카고 불스 선수단. /AFPBBNews=뉴스1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시카고 지역 유력지인 시카고 선 타임스는 19일 “시카고 불스가 진정 챔피언십을 원한다면 자이언(윌리엄슨)을 얻기 위해 올인을 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카고(20승52패)가 전날 피닉스에 이긴 것을 ‘비판’했다.

꼴찌 3등까지는 로터리에서 전체 1번 지명권 획득 확률이 14%이고 4등의 확률은 12.5%인데 지금 성적인 뒤에서 4등인 시카고가 전체 1번 지명권을 얻을 확률을 단 1.5%라도 끌어올리려면 승리가 전혀 의미 없는 피닉스와 경기에서 이기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이 기사는 시카고가 드래프트를 최고의 프리에이전트 시장으로 여겨야 한다면서 시즌 남은 10경기를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풀이하면 남은 10경기에서 가능한 많이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론적으로 가장 공정해야 할 스포츠에서 그것도 유력 언론이 연고팀을 향해 왜 경기에서 이겼다고 질책하고 앞으로 남은 경기는 져야 한다고 지적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니 정말로 이젠 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