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우상' 후유증 큰 작품..내 모습 돌아봐"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3.20 10:31 / 조회 : 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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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주인공 천우희/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천우희가 '한공주' 이수진 감독과 '우상'으로 다시 호흡을 맞췄다.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로 위기에 처한 정치인 명회와 그 뺑소니로 아들을 잃은 중식, 두 사람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련화를 쫓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한석규가 명회를, 설경구가 중식을, 천우희가 련화를 연기했다.


힘든 작업이었다. 집요하리만치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수진 감독에, 쉽지 않은 련화 캐릭터, 6개월 동안 눈썹을 밀고 있었기에 다른 일은 할 수 없었던 작업. 그런 탓인지 천우희는 련화에게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1년의 공백기도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로 한 천우희에게 '우상'에 대해 들었다.

-'우상'은 왜 했나.

▶왜냐고 물으시면 1번은 역시나 감독님이 제일 크다. 이수진 감독님과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바란다고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관객에게)'한공주' 때 만큼의 좋은 합을 보여주고 싶었고, 감독님에겐 내가 그 뒤로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석규, 설경구 두 분의 조합도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

-련화는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캐릭터 설명 자체가 본인이 아닌 남의 입을 통해 나오는 캐릭터이고.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련화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시나리오부터 눈썹이 없었다. 감독님이라면 특수분장도 안 할 테고, 무조건 밀어야 할텐데, 이런 생각도 들었고. 본능적인 캐릭터를 잘 해낼 수 있을까란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련화에게 잠식됐다. 그 전에는 작품을 하고 난 뒤에도 후유증이 없었다. 아무리 센 캐릭터라고 해도, 나와 작품을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후유증이 컸다. 그만큼 련화가 두려웠고 설렜다.

-시나리오에선 련화가 더 강렬했는데, 영화에선 직접적인 표현이 적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덜 강렬한데. 그럼에도 강렬하긴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감독님의 의도가 있으니깐. 물론 더 강렬하게 묘사되고 표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련화에게서 무자비하고 공포스러운 것보다 연민이 느껴졌다. 어떻게 살아왔을지, 내가 상상해서 채워야 했던 부분들이 있다. 너무 처절하지만 한편으론 순수하기도 한 여인. 호감까지는 아니지만 연민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예컨대 5만원짜리 도시락이라니 웃으면서 밥을 먹는 장면이랄지.

-촬영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감정 유지가 쉽지 않았을텐데. 세 배우가 겹치는 장면이 많지 않아 촬영 대기 기간도 길었을테고.

▶6개월 동안 집에서 칩거했다. 세 배우가 돌아가면서 촬영을 하다 보니 한달 반만에 촬영을 한 적도 있다. 한편으론 나 또한 욕심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사람도 안 만나고 집순이로 있으려 했다. 주위에도 내 모습을 감췄다가 련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3주 동안 집에서 안 나가니 울적한 마음이 들더라. 눈썹을 밀면서 대외활동을 못하는 건 각오는 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힘들더라.

눈썹은 한 번 밀면 수염처럼 잔털이 일어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 감독님과 원래 한 번만 밀고 촬영을 순서대로 찍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두 번 밀었다. 두 번째 눈썹을 밀 때는 감독님에게 엄청 징징 댔다. 그런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우상'을 봤는데 두 번째도 과감하게 밀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라. 미묘하게 눈썹이 자란 게 눈에 보이더라.

-베를린영화제에서 처음 본 소감은.

▶재밌었다. 원래 출연한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전체를 못 본다. 내가 어떻게 했는지가 먼저 보인다. 그런데 '우상'은 처음 볼 때부터 영화 전체가 보이더라. 보고 난 뒤 한 번 더 보고 싶더라. 시나리오보다 영상적으로 더 잘 구현된 것 같다.

-눈썹이 없는 여인이란 게 련화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할텐데.

▶명회에게 납치된 뒤 청테이프를 얼굴에 감았다가 눈썹과 같이 뜯겨나간다는 설정이었다. 촬영하면서 10시간 넘게 청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더니 피부가 짖물러지더라. 나 스스로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감독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연변말과 하얼빈말을 구사해야 했는데.

▶감독님과 엄청 신경을 많이 쓰고 준비했다. 사투리 선생님과 셋이서 이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하나하나 다 만들었다. 너무 현지식으로 리얼하게 할지, 그러면 한국 관객이 알아듣기 힘들테고, 한국관객이 알아듣게 하려 한국식으로 하면 가짜 같을 수도 있고. 평소에는 연변말을 쓰다가 중요한 자리, 예컨대 명회 가족과 식사를 할 때는 하얼빈말로 어투가 달라진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연습했다. 이수진 감독님은 '황해'를 뛰어넘는 사투리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한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반응을 듣고는 속이 상했다.

-'우상' 후유증이 컸다는 건 그만큼 몰입이 컸다는 뜻이기도 한데.

▶한석규 선배님이 너무 불태워서 꺼지는 게 걱정스럽다고 하셨다. 오래 연기하려면 배우가 자기를 보호해야 하신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몰입을 너무 해서라기보다 혹시라도 제 풀에 꺾여서 연기 그만한다고 할까 봐 걱정해주셨다.

후유증이 컸던 이유는, 음 난 원래 어려운 캐릭터를 해도 현장의 감정을 일상으로 끌고 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잘 견디고 잘 구분했었다. 그런데 김주혁 선배님 일이 있고 난 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더라. 작품 하나 위해서 영혼을 갈아 넣는다고 하고 있는 게 누굴 위해서 그러나 싶더라. 자기 연민에 빠졌다. 눈썹이 없고 계속 혼자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왜 내가 나 혼자 힘들어야 하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이런 감정이 이름 하나 없는 련화의 감정과 접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감정들이 영화 속에서 녹아들었던 것 같다. 후유증에선 어떻게 벗어났나.

▶그게 또 영화에 녹아들었다면 나는 괴롭지만 좋은 것이다. 현장에선 오히려 안 힘들었다. 혼자 있는 순간 너무 우울하더라. 6개월 동안 '우상'을 찍고 다른 작품을 선택 못 할 정도였다. 연기의욕이 떨어졌던 것 같다. 아쉽거나 부족을 느꼈다기 보다 의욕이 사라졌다. 그 때 제안을 해주신 좋은 작품들과 감독님들이 계셨다. 이런 이유를 일일이 설명드릴 수가 없어서 너무 죄송했다.

7개월 정도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회사에서 유튜브도 제안해서 시작했다. 연기 외적인 것을 하니깐 그나마 나아지더라. '우상'이 개봉할 때가 되니 마음 한군데에선 시원하기도 하고 이제 내께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어 섭섭하고 울적하기도 하다. 2년 동안 품었던 련화를 떠나보내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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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주인공 천우희/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이수진 감독의 집요한 연출과 합은 잘 맞았나.

▶집요한 것은 나도 보통이 아니어서 좋았다. 다시 찍자고 하면 흥미가 떨어질 수 있는데 오히려 다시 할 수록 감독님의 의도를 더 잘 알게 되면서 나 또한 그래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 콘테이너에 갇혔던 장면은 12월에 5일 동안 찍었다. 그 뒤로 탈출하는 장면은 눈이 와서 해를 넘겨서 3월에 다시 찍었다. 청테이프로 계속 묶어놓으니 살이 짓무르기도 했다. 쉽진 않았는데 더 쉽지 않은 작품들도 많이 해서리.

이수진 감독님은 자신의 의도를 배우에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감독님들은 다 그랬다. 이수진 감독님은 그 중에서 약간 다른 시선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가 역할에서 어떤 해석을 갖고 표현하면 그걸 기가 맞히게 캐치해준다. 후반 작업을 하면서 감독님이 내가 나오면 웃으면서 "저, 또라이"라고 즐거워했다더라. 나를 영화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뽑아 내 준다.

-연기에 대한 의욕이 줄어들었던 건 '우상' 이후로 영화 '버티고'를 찍으면서 좋아졌나. 드라마 '멜로가 체질'도 하는데.

▶'멜로가 체질'은 사실 작년에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한 것이었다. 그 때는 의욕이 사라져서 할 수가 없었다. '버티고'를 하면서 스스로 위로가 됐고 다시 연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하게도 '멜로가 체질'쪽에서 제안을 해줬다. 힘든 작품을 해서 쉬운 작품을 그 뒤로 택한 건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이어서 시도해보고 싶었다.

-소위 센 캐릭터를 계속 하는데.

▶왜 나한테는 이런 것만 주어지나,란 생각이 들곤 한다. 한편으로 나름의 자부심도 있다. 그런 캐릭터를 할 때 쾌감이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힘든 것만 하나 싶기도 하고. 말랑말랑한 걸 하고 싶고 할 것이다. 그래도 선택은 결국 내 취향인 것 같다. 영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캐릭터보다는 항상 전체적인 이야기에 납득해야 하니깐.

-'한공주'의 천우희란 수식어가 계속 붙는 게 부담스럽거나 벗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나.

▶세상에, 전혀 없다. 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위에서 주긴 하지만 꼭 그래야 하나요? 여전히 그렇게 기억해주는 게 너무 기쁘다. '한공주'를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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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주인공 천우희/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우상' 같은 영화를 찍으면 스스로의 우상에 대해 아무래도 생각해 보게 됐을텐데.

▶그렇다. 내겐 우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연기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완벽한 연기란 게 없는 걸 알면서도 맹목적으로 그걸 추구하려 했던 것 같다.

-'우상'에서 두 남성 캐릭터를 위해서 여성 캐릭터가 소비됐다고 생각하진 않나.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잣대로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또한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상'은 원래 중식을 두고 만든 이야기다. 련화는 소비됐다기보다 그만큼 힘이 (남성 캐릭터들과) 비등하게 느껴져서 아쉽거나 그런 마음은 없었다.

-'우상'을 하면서 연기와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됐는데. 어떤 결론에 도달했나.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들게 하나 싶었다. 예전에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더 잘 모르겠고. 그런 걸 찾아가는 것 같다. 평생을 같이 살면서 찾아가는 것 같다. 선배님들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하시더라. '우상'은 내 한계를 제대로 맛 본 작품이다. 어느 순간 연기를 잘하고 싶고, 한 차원 다른 연기를 보여주고 싶고, 잘하는 연기를 보면 부럽고, 그걸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우상'을 하고 난 뒤 돌아보면 모든 게 소중해지더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뛰어넘으려 하는 내 모습을 돌아봤다. 내가 왜 연기를 했나, 즐거워서 했는데. 그럼 외적인 것에서 찾지 말고 내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석규, 설경구는 어땠나.

▶한석규 선배는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배우고, 설경구 선배는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선배다. 한석규 선배는 인간 대 인간으로 다 들어주고 이야기를 해준다. 설경구 선배는 츤데레 스타일이다. 말로는 잘 표현하지 않지만 배려가 넘치고 섬세하게 은근슬쩍 챙긴다.

같이 연기를 할 때는 별 생각이 없다. 인물 대 인물로 만나니깐. 곁에서 보면 배우로서 자세와 내공들이 엄청나다. 그 순간에도 해내는 것을 보면 정말 멋있다.

-차기작을 '버티고'로 선택했는데.

▶마음이 훈훈해지는 작품이다. 내게는 위로이기도 했고.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는 꼭 나한테 하는 것 같았다. 자기에 취해서 하는 감성적인 연기를 경계했는데 '버티고'에서 해보니 좋았다. 즐거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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