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생일' 기억하자는 잊지말자는 담담한 초대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3.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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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왔다. 굳게 잠긴 문. 엄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방은 그대로지만 주인은 없는 방. 여동생은 잠든 엄마를 깨운다. '생일'은 그렇게 문을 연다.

2014년 4월 16일. 아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제발 전화 좀 받아." 아들 수호가 남긴 메시지. 엄마 순남은 오늘도 마트에서 일을 한다. 아버지 정일은 베트남에서 막 돌아왔다. 아내와 딸이 있지만 낯선 자기 집.


정일은 학교 앞에서 어느새 훌쩍 자란 딸 예솔을 만난다. 예솔은 아빠가 낯설다. 고모가 없었다면 다가가기도 쉽지 않다. 순남은 "왜 이제야 왔냐"며 이혼 서류를 내민다. 가장 필요할 때 어디에 있었냐며. 정일은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일어난다.

수호의 기일. 순남은 정일과 함께 수호를 찾는다. 그래도 아빠라고 같이 데리고 간다. 그곳엔 다른 아이들 부모도 같이 와있다. 아이들 부모들은 소풍 온양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 사진에 치킨을 권한다. 웃는다. 순남은 그런 사람들이 싫다. 뛰쳐나간다.

깜빡이는 현관등. 집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집안 일을 같이 하지 않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개 높은 곳에 있는 걸 꺼내거나 고치는 것이다. 정일은 현관등을 고치려 한다. 그래도 깜빡이는 등. 마치 누가 오기라도 한 듯 깜빡인다. 순남은 그 깜빡이는 등이 반갑다. 사무치게 서글프다.


사람들이 수호의 생일잔치를 준비하자고 한다. 정일은 해준 게 없다며 하고자 한다. 순남은 싫다고 한다. 그냥 싫다고 한다. 순남은 수호의 새 옷을 산다. 예솔은 자기 옷은 없는 게 서운하다. 밥투정을 하다 혼이 난다. 오빠는 이제 밥도 못먹는데,라고 순남은 예솔을 혼낸다. 그러다가 운다. 예솔에게 미안하다며 운다.

수호의 생일이 다가온다. 수호의 생일이 다가온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이종언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아이들이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인 '세월호 세대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의 아픔과 우정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친구들-숨어 있는 슬픔'을 만들었다. 이 감독은 돌아오지 않는 아이의 생일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아내다가 여러 소리를 들었다. 세월호 피로도, 돈, 등등. 같이 울던 사람들도 1년, 2년이 지나면서 우는 소리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것도 들었다. 그래서 영화로 '생일'을 준비했다. 이 모습을 본다면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일'은 세월호에서 아이를 잃은 가족의 이야기다. 누구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아직 진상조사도 안됐는데 치유는 이르다고 말한다. 누구는 돈을 말한다. 여전히 돈타령이다. 누구는 아픔을 이용한다고 말한다. 누구는 이제 그만하라고 말한다. 피로하다고. '생일'은 이런 숱한 말들에 대한 답이다. 돌아오지 않은 아이의 생일잔치에 담담히 초대한다.

아버지가 돌아온다. 돌아온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던 아버지는 애써 울음을 삼킨다. 엄마는 힘겹다. 그저 죄스럽다. 유가족 모임도 애써 피한다. 울음을 꾹꾹 누르지만 어느 순간 터진다. 여동생은 오빠가 보고 싶다. 오빠 주려고 아빠가 사준 와플을 챙긴다. 위로하는 이웃집은 여전히 울 때 같이 울어 주지만 그 울음 때문에 못 살겠다는 아이도 있다.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 받으니 좋잖아라고 말한다. 제사에 온 친척은 돈 많이 받았을테니 투자나 하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아이는 세상에서 잊혀지기를 바란다. 아들의 친구는, 친구의 엄마를 보는 게 힘들어 먼 발치에서 보면 뒤로 돈다. 돈을 받은 유가족은 그게 미안해 다른 유가족들과 연락을 끊는다.

이종언 감독은 이 광경들을 담담히 카메라에 담았다. 다큐멘터리처럼 담았다. 카메라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그저 바라본다. 그리고 전한다. 생일잔치에 오라고. 같이 기억하자고. 잊지 말자고. 과잉은 없다. 과잉으로 느껴진다면, 어느새 터져나오는 눈물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터다. 카메라나 음악은 담담하다. 바로 앞에 인물을 담지만 그래도 담담하다. 눈물도 담담히 담는다. 터져 나오는 눈물, 흐느끼는 울음, 그리고 웃음, 환한 기억을 그저 바라 보게 만든다. 그렇게 기억하게 만든다.

'생일'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건, 이 영화가 돌아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채울 수는 없다. 그래도 이어진다. 기억한다면. 정말 사라지는 건, 잊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아이의 생일잔치를 여는 것일 테다. 잊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는 피해자스러움을 말한다. 유가족다움을 말한다. '생일'은 그에 대한 답이다. 기억하고 웃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생일'이 4월에 관객과 만나는 이유다. 깜빡이는 현관등이 반갑길 전한다.

정일을 맡은 설경구. 감정을 꾹꾹 집어삼켰다가 마침내 꾸역꾸역 토한다. 순남을 맡은 전도연. 주름 하나, 손끝 하나에도 감정을 담았다. 울지만 울지 않고, 웃지만 웃지 않는다. 예솔 역을 맡은 아역 김보민. 정확한 발음과 순전한 눈으로 진심으로 울고 웃는다. '생일'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눈물과 웃음엔 진심이 전해진다. '생일'은 그렇게 진심을 전한다. 그렇게 초대한다.

4월 3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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