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범 감독 "'악질경찰'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3.18 13:24 / 조회 : 4268
  • 글자크기조절
image
'악질경찰' 이정범 감독/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이정범 감독이 '악질경찰'로 돌아왔다. '열혈남아'로 시작해 '아저씨'와 '우는 남자'를 거쳤던 그의 영화 여정은 '악질경찰'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악질경찰'은 범죄자보다 더 악질인 경찰 조필호(이선균)가 경찰 압수창고를 털려 하다가 폭발사고가 일어나 용의자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소악이 거악과 맞붙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짙게 담겨있어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정범 감독은 왜 세월호 이야기를 상업영화에 담았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원안은 액션 장르 영화였는데 왜 그 이야기에 세월호를 넣었나.

▶2015년에 단원고에 갔다. 너무 미안해서 갔다. 텅 빈 교실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너무너무 미안했다. 그 뒤에 '악질경찰' 원안을 제안받았다. '두 남자'란 제목이었다. 거기에는 안산이란 도시가 배경이었고, 창고가 터져서 자료가 없어졌다는 설정이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세월호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다 싶었다. 쓰레기라 불리는 비리 형사의 입을 통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을 읽었다. 여러 이야기를 더 알아봤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 그 마음들에 어른으로 너무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래서 미나(전소니)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감히 내가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여전히 진상규명이 안된 사건이고. 그저 어른으로서 내가 갖고 있는 죄의식, 40대 남자로서 이 사건에 대한 내 감정을 담아보려 했다. 이기적인 어른이 세월호에 대해 갖고 있는 마음을 영화로 담으려 했다.

-박근혜 정권이 서슬 퍼렇던 시절에 시나리오를 쓰고 기획했다. 최순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었다. 투자도 쉽지 않고 캐스팅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

▶그건 두렵지 않았다. 가장 걱정스럽고 고민을 많이 했던 건 이 영화로 혹시라도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란 점이었다. 난 이 영화를 만들면서 유가족분들을 만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제작진이 교실 소품을 확인하기 위해 유가족협의회 분들과 만났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아셨다.

세월호의 슬픔과 아픔을 이용한다는 비난은 당연히 예상했다. 그래도 그걸 두려워하면 이 영화를 못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오해한 분들에게 따귀를 맞는 상상도 했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액션영화였던 '아저씨'와 '우는 남자'를 뒤로 하고 밑바닥 인생의 처절한 개싸움이였던 '열혈남아' 정서로 되돌아간 듯 한데.

▶이 영화를 액션영화로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화려해서도 안되고. 밑바닥 개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영화인데 그게 화려하고 멋있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했다.

-'악질경찰'도 이정범 감독의 전작들처럼 여성을 구원자로 그린다. 여성 때문에 남성 주인공이 각성하고. '악질경찰'에선 전소니가 맡은 미나가 그런 캐릭터인데.

▶전작의 흐름이 작동하는 것 같다. 모성애를 담는 게 있다. 나 스스로는 각 캐릭터들이 작품마다 궤를 달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악질경찰'은 미나가 여자거나 모성 같은 게 아니라 미나라는 캐릭터 자체가 중요했다.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됐지만 세월호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 중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던 친구들을 바로 잡아서 학교에 다니게 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악질경찰'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선 미나가 유일하게 어른 같은 아이다. 가장 사람 같은 아이다. 세상 시선에는 학교도 안 다니고 그래서 비난받지만 이 아이야말로 가장 친구들을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아이다. 이 아이의 슬픔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결국 미나의 희생으로 필호가 각성하는데. 장르물에서 볼 수 있는 여성 캐릭터의 희생으로 남성 주인공이 각성하는 설정으로 보여지기 쉬운데. 더욱이 세월호 이야기가 담긴 영화에서.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서 희생시킨 게 아니라 이 아이가 "너희가 어른이냐"라는 말을 하면서 스스로 하는 판단이 중요했다. 이 슬픈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왜 그런 식으로 했냐는 비난을 감수하고 각오도 하고 있다. 그래도 살릴 수 없었다. 미나가 하는 말의 충격, 울림, 강도를 통해 관객이 필호처럼 깨닫길 바랐다.

-우연이지만 '악질경찰' 고사를 하던 날 세월호가 바다에서 올라왔는데. 원래 미나와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장면들이 더 있었는데 편집한 이유는.

▶크게 두 장면을 편집했다. 미나가 수족관을 깨고 그 수족관에 있던 배를 집어드는 장면, 그리고 미나의 판타지인 세월호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장면이었다. 찍긴 다 찍었다. 고사하는 날 세월호가 인양돼 목포 신항으로 돌아왔다. 당시 CG팀에서 배가 올라오는 컷을 나한테 보냈는데 세월호가 올라온 날이라고 적고 지금도 갖고 있다.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려고 했던 때에는 세월호 인양을 놓고 말이 많았던 때였다. 난 꼭 그 배가 올라온 모습을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배가 올라왔기도 했고, 영화 속 드라마보다 실제 사건이 주는 충격이 너무 크다는 내부 의견이 많았다. 영화 속 감정을 따라가던 관객들이 실제 사건이 주는 충격으로 그 감정을 놓칠 것이란 의견이 많았고, 결국 나도 동의했다. 그래서 편집했다.

-세월호 이야기와 '악질경찰' 전개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극 중 한국 최고 대기업인 태성에서 선주였다는 설정을 넣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직도 진상 규명이 진행 중이고, 내가 감히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나 같은 어른이 그 사건에 대해 갖고 있는 미안함, 죄의식, 그 감정들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성은 삼성을 직접 비유한 것인데. 백혈병 이야기도 영화 초반에 등장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한 장면이 나오더라도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송영창이 맡은 태성 회장 캐릭터는 여느 작품들처럼 대외적으로도 젠틀한 이미지의 재벌 회장이 아닌데. 속이나 어떻든 겉은 대외적으로 좋게 포장해 보여주기 마련인데 '악질경찰'은 다른데.

▶영화 속에서 재벌 회장이 조필호한테 "너 해병대 몇기라며 내가 해병대 몇기"라고 하면서 경례를 받는 장면이 있다. 그렇게 경례를 받고 난 뒤에 "우리는 4대째 면제야"라면서 웃는다. 이 재벌 회장을 그렇게 그린 건 바로 그 장면에서 출발했다. 점잖고 젠틀하지 않아야 그 말이 더 드러나리라 생각했다.

image
'악질경찰' 이정범 감독/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카메라가 부감으로 조망한다. 마치 하늘에서 모든 걸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액션장면도 마찬가지고.

▶부감샷은 재벌의 하수인인 태주(박해준)가 등장하면 나온다. 태주를 정면으로 잡을 때도 칸과 각이 일렬로 보여주도록 했다. 줄을 서는 문화. 폭력이 폭력을 낳는 군대 문화. 그런 걸 위에서 바라보면서 관객이 객관화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필오와 태주가 미나 집에서 싸우는 장면은 원신원컷에 부감으로 찍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면 안되고 안 맞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컷을 나누면 액션이 강조된다. 그렇게 보이지 않고 비루하게 보이길 바랐다.

-'악질경찰' 개봉이 2년간 미뤄지면서 박해준이 악역을 맡은 '독전'이 먼저 개봉하긴 했다. 그럼에도 박해준이 맡은 태주는 악역으로 상당한 어둠을 영화에 드리는데.

▶태주는 자본의 논리로 좌지우지되는 캐릭터다. 돈을 쫓다가 결국 돈 위에서 죽는다. 그 장면도 부감이다. 그러면서도 이 남자도 역시 돈의 논리로 그렇게 살다간 일말의 불쌍함이 느껴지길 바랐다. 박해준에게 "난 태주가 불쌍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을 많이 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긴 하지만 여성에 대한 묘사가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한데.

▶젠더 감성에 대해서 계속 배우고 있다. 이 시나리오를 쓴 2015년에는 내가 심리적으로 교육과 공부가 덜 됐다. 지금 보면 분명 그런 부분이 나 스스로도 후회되는 게 있다. 여전히 공부하고 있고, 그렇게 변화된 젠더 감수성을 앞으로 작품 속에 꼭 담으려 생각하고 있다. 그 공부는 계속 하고 있고, 해야 한다.

-비와 물의 이미지가 많다. 필호가 물통에 갇히는 액션, 그리고 그 와중에서 생니가 뽑히는 장면은 이 영화가 '세월호'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여러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이 이야기를 하기로 한 순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호의 물통 장면은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다. 위통이 그때부터 심해졌다. 그럼에도 뚫고 나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생니가 뽑히는 장면은, 난 영화를 시작할 때 오프닝과 엔딩을 먼저 떠올리고 그 다음에 진행한다. 사실은 영화 엔딩이 필호 얼굴 클로즈업이었다. 이가 빠진 채 바보처럼 웃으며 "거기서 잘 살아라"라고 하는 모습. 그런데 CG컷을 붙이고 보니 앞니가 빠진 채 웃는 모습이 감정과 안 맞더라. 그래서 미나컷으로 엔딩을 바꿨다. 만일 그 엔딩이 불편하다면 그건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총을 쏘는 장면을 넣었다. 너무 간 게 아닌가 싶은데 그 뒤로 다시 필호가 "니들 앞에서 총을 쏴서 미안해"라는 대사를 넣었다. 감독과 배우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던데.

▶정말 그 장면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사람이 아이들 앞에서 총을 쏴야 하느냐를 놓고. 난 아이들 앞에서 단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을 놓고 이선균과 계속 언쟁이 있기도 했다. 선균이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안되냐고 의견을 냈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서 (미나와) 치킨 사준다고 약속했는데,라는 대사도 넣자고 했다. 그렇게 그 장면을 완성했다.

-7800억원과 7800만원, 780원 등 영화에서 숫자가 계속 반복되는데.

▶피노체트 이야기를 비롯해 재벌 회장과 태주가 이야기할 때는 숫자를 계속 이야기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을 숫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image
전소니에게 디렉션을 하고 있는 이정범 감독/'악질경찰' 스틸.


-이선균이 '악질경찰'을 선택했을 때, 배우로서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같이 하게 됐나.

▶이선균에게 시나리오를 주면서 세월호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선균이 시나리오를 읽고서는 이건 세월호 이야기가 아니라 형이 누군가에게 사과하고 싶은 게 아니냐고 하더라. 그렇게 이 시나리오를 읽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박해준과 전소니는 어땠나.

▶박해준은 정말 어려운 역할을 묵묵히 잘 해냈다. 전소니는 사실 한 번 거절했었다. 자신이 이 역할을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연락이 왔다. 그 역할 결정이 됐냐면서 자신이 한 달 동안 고민했는데 하고 싶다고 하더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엔딩에 삽입된 노래는.

▶루시드폴의 '아직, 있다'다. 원곡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었는데 어렵다는 답이 왔다고 하길래 뜻이 맞는 가수 온유에게 부탁해 편곡해서 사용했다.

-차기작은.

▶웹툰 원작을 각색하고 있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