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감독이 밝힌 '우상'의 상징과 결말, 그리고 련화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3.15 16:41 / 조회 : 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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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이수진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한공주'로 영화계 주목을 받은 이수진 감독이 상업영화 데뷔작 '우상'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한석규와 설경구, 천우희의 출연.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 등 신인 감독의 행보라기에는 남다르다.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로 정치 생명 위기에 처한 유력 정치인 명회와 그 뺑소니로 아들을 잃은 남자 중식이 사건의 열쇠를 쥔 아들의 아내 련화를 찾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강렬한 이미지로 감독의 인장이 뚜렷한 작품이다. 이수진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우상'은 왜 했나.

▶숙제 같은 영화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오래 전에 내 첫 영화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공주'를 먼저 하게 됐다. '한공주'를 하고 난 뒤 '한공주'가 너무 무거웠던 터라 약간 밝은 톤의 영화를 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꾸 '우상'에 마음이 끌리더라.

-'우상'의 이야기는 어떻게 출발했나.

▶시작은 아버지였던 것 같다. 어떤 실제 사건을 뉴스로 보면서 나한테 억울한 일이 생기면 소시민인 우리 아버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서 출발했다. 거기에서 중식이 나왔다. 련화는 중식에게서 창조됐다. 가해자인 명회가 계급적인 위치가 가장 높고, 피해자이지만 중식도 계급적으로 또 아들에 대한 욕심으로 가장 낮은 계급인 련화에게 가해자일 수 있다. 그래서 계급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의 여자가 가장 무서웠으면 했다.

-명회와 중식은 한국영화에서 익숙한 캐릭터지만 련화는 볼 수 없었던 캐릭터인데. 그렇게 캐릭터를 만든 까닭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할 수 있는 계급적 위치에 있는 캐릭터다. 중국에서 온 불법 체류자 동포 여성. 그 여성을 통해 너무 쉽게 보지 마라, 좀 조심해라, 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다. 만화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사실적인 캐릭터로.

-이런 구도의 여느 영화들이라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시점으로 전체를 관통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상'은 다르다. 전체를 관통하는 시점이 없는데.

▶일반적으론 한 메인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 따라간다. '우상'도 그렇게 해도 좋지만 난 세 사람을 각각 따라가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 전체를 바라봐주길 바랐다. 그래서 거리두기를 했다. 관객이 세 인물 중 누구와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할지,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할지, 생각해보길 바랐다.

-설경구의 첫 등장을 운전하는 뒷모습을 원신원컷에 롱테이크로 담았다. 시작부터 거리두기고, 시작부터 마치 이 영화는 부성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 같은데.

▶각 인물들의 출발점과 종착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경구의 첫 등장은 전 컷과 연결된다. 정체불명에 노랑머리와 이어진다. 또 그 장면으로 중식의 삶에 일부분인 차도 같이 보여주고 싶었다. 부정으로 감정을 강요하거나 눈물을 뽑는 건 지양하려 했다.

-설경구는 초반에는 클로즈업이 많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점점 카메라가 거리를 두고 외롭게 만든다. 반면 천우희는 등장 처음에는 카메라가 거리를 두지만 마지막에는 익스트림 클로즈업까지 간다. 한석규는 그가 내려다보는 시선과 그를 올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점으로 잡아갔는데.

▶설경구는 뜨겁게 시작해서 차갑게 가길 바랐다. 반면 천우희는 차갑게 시작해서 뜨겁게 되길 바랐고. 그게 카메라 구도에 영향을 줬다. 거리두기로 객관적으로 인물들을 바라봐주길 바랐고. 한석규는 이 인물의 이상향, 하고 싶은 방향을 그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소품이나 카메라 구도로 보여주려 했다. 예컨대 한석규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정치권력과 명회가 나누는 이야기들은 여느 영화라면 밀실에서 이뤄지기 마련인데, '우상'에선 커피숍과 교회 등 열린 장소에서 이뤄지는데. 교회에서 나오는 성가는 명회에게 세 차례 반복되기도 하고.

▶일단 밀실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너무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다가 오히려 그런 열린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권위적이라고 생각했다. 닫혀진 곳이 아닌 열린 곳에서 사람들이 듣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게, 평범함에서 더 권력이 느껴지리라 생각했다. 커피숍이 그렇다.

교회는 성가대에서 나오는 음악이 중요했다. 원래 가톨릭 노래인데 '아그누스 데이'(Agnus Dei)를 쓰고 싶었다. 신이여 죄인을 구하소서,란 음악이 명회에게 들리는 게 중요했다. 이 노래가 두 번째 들리는 곳이 명회가 흥신소 직원을 죽일 때다. 아이의 목소리로 나온다. 그런 악한 선택을 하면서도 그 속마음에는 구하소서란 마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 번째는 아들인 요한의 병실에서다. 아들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양심과 트라우마가 물의 이미지가 겹칠 때 '아그누스 데이'를 변주한 음악이 흐르도록 했다.

-'우상'에선 물의 이미지가 무척 많다. 바닥에 고인 경계로 가로막힌 물. 비. 등등.

▶물은 반사와 반영의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실제이든 실제이지 않든, 그러면서도 움직이는. 초반에 바닥에 고여있는 물의 이미지는 명회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했다. 중식에게 흐르는 비는, 비란 게 레이어를 갖고 있지 않나. 다이렉트로 그 사람을 보여주기 보다는 거름막으로 보여주는.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중식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목을 날리는 건 왜인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목을 날려야 한다는 대사가 두 차례 반복되지만 왜 그게 이순신 장군 동상인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박정희 정권에서 상징화한 국가주의, 민족주의, 더 나아가 군사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이기 때문인가.

▶일단 중식 입장에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사람의 목을 치라는 건 일종의 반어법이다.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그렇기에 중식이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이었던 것이다. 가장 높은 사람. 그는 그만큼 단순하니깐. 감독 입장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선택한 건 여러 요소가 있다. 캐스팅 시점도 있고. 감독이 그 의미를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관객이 생각하길 바란다.

-중식이 아들에 대한 애정, 집착, 부정을 나타내는 방법에는 다른 것도 있을 법한데, 왜 아들의 자위를 해준다는 설정을 한 것인가.

▶만일 자위를 해주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치유나 다른 해소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었다면 중식에게 영화 속 불행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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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천우희와 이수진 감독.

-중식과 명회, 련화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중식은 삶이 고달프다. 아침, 점심, 저녁 할 때의 점심에서 가져왔다. 맛도 제대로 못 느끼고 허겁지겁 점심을 먹는 삶. 구명회는 초등학교 동창 이름이기도 한데 거기에서 따온 건 아니다. 한명회도 그렇고 명회란 이름이 정치인의 이름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련화는 자기가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고 생각했다. 련화는 그저 예뻐서 지었겠지만 그 속에 뿌리 없이 부유하는 연꽃을 담고 싶었다.

-'우상'에선 중국 동포만 사투리를 쓰는데. 경남 도지사로 출마하는데도 다른 인물들은 다 서울 표준어를 쓰는데. 또 련화의 사투리는 연변말이라고 할 때와 하얼빈말이라고 할 때 뉘앙스가 다른데. 왜 그런 차이를 주려 했나.

▶정치하는 사람은 고향이 있지만 어느 순간 그곳을 떠나서 서울에서 살다가 출마할 때 즈음 고향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주요 거처도 서울이라고 생각했고. 명회는 그곳에서 자라다가 중국에서 사업도 했지만 주요 거처는 서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주위도 마찬가지고.

련화는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질 때 사투리가 격화된다. 원래는 연변 사람이다. 연변 사투리를 써야 한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처음 올 때 연변에서 많이 왔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심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러다보니 거친 일들도 있었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연변에서 온 분들보다 하얼빈에서 온 분들을 더 쓰게 됐다고 하더라. 그게 마치 경상도와 전라도에 대한 한국의 인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련화가 평소에는 하얼빈 출신이라고 하고 하얼빈말을 쓰지만 격해질 때는 연변말을 쓰도록 했다. 련화의 언니인 수련은 고립된 곳에서 살기에 굳이 고칠 필요가 없어서 연변말을 쓰도록 했다.

-'우상'이 불친절하다고 느끼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장르 영화들과 달리 실마리가 되는 정보들에 방점을 찍지 않고 스쳐 지나가게 하는 연출 때문이기도 한데.

▶나름대로는 방점을 찍었다. 다만 익숙한 방점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익숙한 방점이 아니기에 그 방점들이 나중에 하나가 돼 큰 방점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만일 '우상'에서 그런 방식이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불친절하다고 느낀다면 깊이 복기하게 될 것 같다.

-이수진 감독은 집요할 정도로 찍고 또 찍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감독의 의도가 명확하거나, 명확하지 않거나, 찍으면서 명확해지거나 일텐데. '우상'은 그런 방식에다가 계절적인 요인으로 촬영이 예정보다 한 달 넘게 더 걸리기도 했는데.

▶세 배우가 만일 의문이 있었다면, 또 내가 그 의문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면, 이렇게 영화로 관객들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촬영이 더 길어진 건 계절적인 이유로 연결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던 요인이 있다.

-천우희가 맡은 련화는 눈썹이 뜯어져서 사라졌다는 설정이다. 이 사라진 눈썹이 련화의 캐릭터이기도 하고. 여배우가 6개월 동안 눈썹을 민다는 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닌데. 시나리오 쓸 때부터 그 어려움을 알고 쓴 것일텐데.

▶내 나름의 개연성이 있었다. 명회가 청테이프로 련화를 감싸고 그걸 뜯으면서 눈썹이 같이 뜯긴다는 설정이다. 명회가 전문 킬러가 아니라 어설픈 아마추어이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또한 련화는 전사를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 캐릭터다.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설명된다. 그렇기에 눈썹이 사라진 여자의 모습이, 그 그림만으로도 그 캐릭터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우희는 정말 훌륭한 배우다. 납득하고 해냈다.

-여느 영화라면 엔딩에서 천우희가 더 폭력적으로 활약해 카타르시스를 주기 마련일텐데, '우상'에선 그걸 보여주지 않는데.

▶그게 이 영화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편집실과 믹싱에서 그 장면의 감정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하지만 난 과잉이라고 생각했다. 초반부터 이 영화가 그걸 위해 달려온 게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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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이수진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제목이 '우상'이다. 그렇다보니 영화를 본 관객들이 우상에 사로잡혀 그 프레임에 갇히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데. 우상이란 뭘까를 놓고 고민하게 되고.

▶ 나도 그 오류에 빠져버린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꾸 영화 안에서 우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이제는 우상을 잊으시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왜 제목이 '우상'인가.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에서 가져온 것인가. '우상'을 보면 특히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빛과 그림자 이미지가 적잖은데.

▶원래 제목은 '우상'이 아니었다. '한공주' 이후 지금 이야기의 제목을 '우상'이라고 지었다. 다시 주제를 잡으면서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꿈이나 신념이 아닐까, 그런 것 또한 우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베이컨과 데카르트에 영향을 받고 자란 세대인 것은 맞다. 동굴의 우상을 의도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다만 빛과 그림자, 물 등의 모든 요소가 인물과 상황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주유소의 고립된 느낌이나 멘홀 속에서 본 명회라든지, 용구(흥신소 직원)를 깔아뭉갤 때 차 안 카메라 앵글 등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의 색 설계는 어떻게 했나.

▶의도가 명확한 색으로 특별함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명회는 차갑게 시작해서 뜨거워지는 캐릭터이니 그런 느낌을 빛과 색으로 은은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중식은 뜨겁게 시작해서 차가워지는 캐릭터라 노랑과 블루, 그린이 초반에 등장하고 후반에는 보라색인 선거 점퍼를 주로 입는다. 선거점퍼의 첫 등장이 련화를 외국인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오면서다. 그리고 후반에 경찰에게 연행될 때 직접 입는다.

-한석규와 설경구, 천우희에게는 어떤 주문을 했나.

▶한석규는 일부러 주변 인물을 캐스팅할 때 그와 익숙한 배우가 아니라 낯선 배우로 했다. 한석규와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과의 조합에서 오는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석규의 리듬, 눈빛, 작은 표정의 변화가 특히 좋았다. 많은 걸 하지 말자고 했다. 낮추고 비우는 작업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한석규 선배가 "오늘은 십원어치만 할까"라곤 했다.

설경구 선배는 아시다시피 전투적이다. 숙소에서 올 때부터 에너지가 엄청나다. 그 에너지를 빼려 서로 노력했다. 중식은 설경구 선배가 그간 해왔던 주도하는 메인 캐릭터가 아니라 리액션하는 캐릭터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천우희는 원래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진 않는다. 되도록이면 기성 배우를 련화에 대입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한다면 천우희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작업하고 싶은 배우였다. 또 다시 엄청난 걸 보여줬다.

-음악과 음향이 여느 스릴러처럼 전형적이지 않고 고전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대사를 짓누르는 것도 없진 않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러 곡을 선정해놨다. 그중 아그누스 데이'(Agnus Dei)를 기본 테마로 정하고 작업했다. 음악에서도 스토리가 있기를 바랐다. 같은 음악이 변주되면서 인물의 감정 변화에 영향을 주길 바랐다. 완전 새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존 스릴러와 취사선택이 다른 만큼 음악도 차별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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