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전차왕 엄복동' 연기도 영화도 애국도 과유불급

김미화 기자 / 입력 : 2019.02.21 09:37 / 조회 : 9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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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이 개봉을 한주 앞두고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 됐다. 130억원 제작비가 들어간 '자전차왕 엄복동'은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개봉일을 잡았다. 하지만 개봉 한 주 전 공개된 영화는 후반부 CG작업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희망을 잃은 시대에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 1위를 차지하며 동아시아 전역을 휩쓴 '동양 자전차왕' 엄복동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 손기정 선수만큼이나 민족에게 희망을 전했던 엄복동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바가 없다. 이에 '자전차왕 엄복동'이 보여줄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주인공 엄복동 역할을 맡은 정지훈과 제작자 겸 배우로 출연한 이범수는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전거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준 엄복동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과 달리 '자전차왕 엄복동'은 엄복동이라는 인물에 집중하는 대신 독립을 열망하는 가상의 독립운동 조직 애국단을 등장시켜 허구의 이야기와 실존인물 엄복동을 접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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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스틸컷



평택에서 물장사를 하던 엄복동(정지훈 분)은 자전차를 잃어버리고 경성으로 올라와 돈을 벌기 위해 일미상회에 들어가 자전차를 타기 시작한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자전차 선수가 됐던 엄복동은 애국단 독립운동가 김형신(강소라 분)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각성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자전차 경기를 시작했던 엄복동은 김형신을 만난 뒤, 개인의 꿈이 아니라 민족의 울분을 안고 경기에 나선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핍박받는 우리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단, 민족의 설움을 풀어주는 자전차 한일전의 승리, 꿈많은 두 젊은 남녀의 로맨스, 우당탕탕 코미디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김유성 감독은 이 영화를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이것들이 한데 섞이지 못하고 제각각 따로 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저것 다 넣으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게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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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 실제 엄복동 사진


핍박받는 민족의 모습은 스토리 없이 잔인한 장면으로 그려졌고, 허구의 애국단이 활동하는 모습도 뚜렷한 목표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엄복동과 김형신의 로맨스가 급작스럽게 생겨나며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서로 대화도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엄복동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김형신을 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관객을 전혀 설득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자전차 경기 역시 후반작업 등의 부족으로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지훈이 허벅지 실핏줄까지 터져가며 만들어낸 자전차 경기 장면인데 아쉽다. 물론 개봉하는 영화에는 수정되겠지만, 어설픈 CG는 긴박한 자전차 경기 장면의 감흥을 깨트렸다. 엄복동의 다리에서 피가 흐르다가 멈췄다가 다시 흐르다가 한다. 개봉을 일주일 남기고 진행된 언론 시사에서 "후반작업이 더 필요하다"라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CG 역시 후퇴한 느낌이다. 어설픈 매가 하늘을 가르며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린다.

제작자 이범수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엄복동이 자전차 경기에 나서서 이기는 장면만 역사적 사실이고, 나머지는 다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엄복동이 자전차 선수가 되는 이야기도 역시 매력적이지 못하다. 동생이 사준 자전거를 도둑 맞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상경한 엄복동은 경성에 와서는 가족을 잊고 산다. 엄복동의 가족으로 등장하는 아빠(이경영 분), 남동생(신수항 분), 여동생(박진주 분)은 영화 속에서 의미 없이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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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전차왕 엄복동 스틸컷


실존 인물 엄복동이 1926년 자전차 십여대를 도둑질 했으며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한 이야기나, 1950년대에도 61세의 나이로 자전거를 도둑질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기록 등은 자막으로도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김유성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는 엄복동의 도둑질 기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영화 말미 자막으로 엄복동이 자전차 대회에서 승리한 것이, 이후의 독립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도화선이 됐다는 자막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민 없는 비약은 영화에 대한 신뢰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배우들은 고군분투한다. 실핏줄이 터질만큼 자전거를 탔다는 정지훈과 독립투사 역할을 묵직하게 해낸 강소라의 연기가 아깝게 느껴진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엄복동이라는 인물과 자전차 경기 한일전을 그리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매력적인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완성도는 떨어진다. 과유불급이다. 차라리 엄복동이라는 인물에 대한 굵직한 자전적 서사에 중심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이것저것 다 보여주려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2월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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