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이한 감독 "김향기는 탁월한 감정 전달자"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2.15 15:03 / 조회 : 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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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을 연출한 이한 감독/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한 감독은 착하다. '연애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오빠생각' 등 그의 영화들은 그와 닮았다. 착하다. 13일 개봉한 '증인'도 이한 감독과 닮았다. '증인'은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사 순호가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자폐소녀 지우와 교감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증인'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우직한 연출, 그리고 정우성 김향기 등 배우들의 호연에 착한 감성이 알알이 박혀있다. 절로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이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왜 '증인'을 했나.

▶꼭 집어서 딱 하나를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원래 '오빠생각' 이후에 다른 영화를 준비했었는데.

▶일본 만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실사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우연히 읽었는데 지금 한국에서 많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판권 문제가 잘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시나리오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거기에서 '증인' 시나리오를 처음 봤다. 너무 좋았다. 당시 심사위원 회의 때 이게 왜 1등이 아니냐고 굉장히 어필하기도 했다. 이후 연출 제안을 받았다. 판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고, 이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도 움직였기에 연출을 맡게 됐다.

-영화 속에서 개가 짖고 그 소리에 지우(김향기)가 힘들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다시 순호(정우성)가 개가 반가워서 짖는 것이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증인'을 함축하는 것 같은데.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니 경계하지 말고 이해하자는. 원래 시나리오에도 개가 있었나.

▶있었다. 지우가 소리에 민감하고 청력이 발달했다는 걸 드러내는 장치였다. 개가 반가워서 짖는 것이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부분은 내가 첨가한 장면이다.

-원래 시나리오에 각색 과정에서 더하거나 뺀 부분이 있다면.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주제를 이한 감독 색채로 바꾸려 한 부분은 뭔가.

▶원래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워낙 좋았다. 난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이해하는 지점이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 원래 시나리오에선 순호가 게이였다. 마무리가 법정에서 되진 않았고.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적었다. 송윤아가 맡은 캐릭터도 없었고.

그래서 이 이야기를 좀 더 보편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주제에 더 집중시키고자 했다. 아버지와 송윤아는 순호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길 바랬다. 사람이란 어릴 때는 영감을 받기 쉬어서 잘 바뀌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바뀌기가 어렵다.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이런 조력자들이 자기가 원래 갖고 있는 끈과 엮어서 변하는 법이다. 그런 걸 더 담으려 했다.

-자폐는 앓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있는 것이다. 여러 인터뷰와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김향기와 자폐가 있는 친구들을 같이 만날 때 누구를 이 사람(지우 캐릭터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처음에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맡는 의사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다. 이 분이 하신 말씀이 자폐 스펙트럼 유형은 너무 많아서 특정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 사람마다 개성이 다 다르듯 다 다르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어렵기는 했지만 더 지우 캐릭터를 만들 때 열어둘 수 있었다. 자기 안에 갇혀 있다는 공통분모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 했다. 어떤 장소,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나가느냐,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느냐를 고민했다.

-'증인'이 다른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사람을 그린 영화들과 다른 지점은, 자폐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사람의 발달된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그걸 더 '정상'적인 사람이 이용하거나 나중에 반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여느 작품들과 달리 '증인'은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아이의 세계로 관객을 같이 이끄는데.

▶일단은 내가 순호라고 생각하고 각색했다. 원래는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일상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다 다르긴 하지만 교육과 주변의 도움, 제도가 뒷받침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담으려 했고, 그런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데 노력했다.

순호는 나처럼 보통 사람이다. 40대 중후반의. 사회를 경험하면서 때도 묻고 세월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와 교감하려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광화문이 종종 나온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바삐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순호의 모습을 담았는데.

▶광화문에는 김앤장 같은 로펌도 있고, 정치적인 공간이다. 민의가 표출되는 곳이기도 하고. 원래 내가 사람들이 많은 쇼트를 좋아한다. 그곳에서 순호를 멈춰 세우고 싶었다. 걷기만 하다가 멈춰서 생각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원래 민변 소속이었던 순호가 경제적인 이유로 대형 로펌에 들어갔다. 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순호를 그 세계로 끌어들이면서 제공하는 게 고급 외제차와 비싼 양주, 그리고 미녀들인데. 다른 영화들도 비슷하지만 한국 남성의 성공에는 이 세가지 밖에 없는 것일까.

▶맞다. 뻔한 성공의 상상력이었던 것 같다. 원래는 편집된 장면이 있다. 그 술자리에서 대표 변호사가 자신은 사람을 대할 때 숫자로 파악한다는 대사가 있었다. 통장에 0이 몇 개가 있는지, 위스키는 몇 년산인지, 골프는 몇 타를 치는지. 그 숫자들이 결국은 회계사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했고. 그런데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편집했다.

-송윤아가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했는데. 반가운 배우인데.

▶힘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사실 해줄지 몰랐다. 워낙 좋은 배우인데 비중이 그리 큰 역할이 아니어서. 그런데 흔쾌히 허락했고, 영화에 힘을 실어줬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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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이한 감독과 정우성, 김향기, 김승윤이 모니터를 살피고 있다.


-정우성은 그간의 센 역할과 사뭇 다른 역할을 맡았다. 최근 영화들 속에서 이렇게 정우성의 주름을 다 담아내고 이렇게 그의 얼굴이 편하게 느껴지는 게 없었던 것 같은데. 보통 정우성을 작품에 쓸 때는 그의 외모를 더 돋보이도록 하기 마련인데.

▶정우성의 작품을 따져보면 다 봤다. 영화 속 정우성 뿐 아니라 보통사람으로서 정우성의 생각도 노출이 많이 되지 않았나. 난 평소 그의 얼굴이 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이 좋았고. 이런 역할은 해본 적은 없지만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정우성이 일단 만나자고 하더라. 결정은 만나서 하고 싶다고 하더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데 하겠다고 하더라.

촬영과 조명팀에겐 한 마디만 부탁했다. 정우성의 눈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찍을 때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 계속 순호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잘생기게 찍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우성도 내 주름을 지우려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서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향기는 그야말로 대단하던데. 감정을 드러낼 장치가 별로 없는데 그 이상을 다 전달하던데.

▶향기와 두 번 작품을 같이 해봤다. 향기가 제일 잘 하는 게 마음 속의 감정을 관객에게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이 탁월하다. 이 캐릭터는 대사도 감정을 싣기가 힘들고, 표정도 대부분이 똑같다. 감정을 잘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런데 향기는 그 이상을 넘어서 전달했다.

-전작들도 그렇고. 이한 감독의 영화는 착하다. 그러다보니 지독한 갈등이 없다. 캐릭터도 여느 영화와 달리 선한 인물들이 더 입체적이고, 악한 인물은 오히려 전형적인데.

▶'오빠생각'을 선보였을 때 왜 욕망이 있는 캐릭터가 없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음. 위험한 발언일 수 있는데 난 영화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영향을 받아왔다. 운이 좋게 주변에서 나쁜 사람을 별로 못 만나봤다. 복이 많이 받은 사람이다.

흔한 키스신도 없고, 데꼬보꼬(울퉁불퉁하다는 걸 뜻하는 일본어. 영화계 은어)도 없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내 운명인 것 같다. 내가 읽고 본 수많은 영화들과 책들, 만난 사람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내 개성이 형성됐다.

악인을 시나리오에 쓸 때도 어떻게 하면 교화시키지,란 생각을 많이 한다. '증인'에서 염혜란이 맡은 미란 역도 어떻게 하면 악하게 보이지 않게 할까를 고민했다.

-염혜란의 "징허네"란 극 중 대사는 많은 감정을 내포하는데.

▶그 대사는 염혜란이 직접 만든 것이다. 대사가 문어체인 것 같아서 염혜란에게 입에 딱 맞게 고쳐볼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극장 경력이 많은 친구니깐. 정말 좋은 대사를 그 감정에 맞게 만들었다.

-지우(김향기)가 파란색 젤리를 좋아하는 설정은 어떻게 넣었나.

▶'타인의 취향'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우리 아이가 젤리를 좋아해서 거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으면 하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파란색 젤리와 컵라면. 안 맞을 것 같은 조합이다. 파란색은 맛 없을 것 같은 색이고. 그런데 먹어보면 괜찮다. 친구 중에 짜장면에 식초를 왕창 넣어서 먹는 친구가 있는데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먹어보면 괜찮더라.

-지우의 방에는 그런데 파란색이 없다. 마지막에 순호가 주는 파란색 젤리가 든 병을 채워넣고 싶어서 그랬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 방에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순호와 순호의 방이 회색빛이라면 지우의 방은 따뜻한 느낌으로 대비를 주고 싶었다.

-'증인'에서 이규형이 맡은 검사는 기존 영화들 속 검사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어설프다.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아이에 대한 접근도 다르고.

▶우선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너무 전형적인 이미지의 검사가 아니었으면 했다. 그리고 내 모습이 그랬다. 첫 영화가 크랭크인 날, 너무 긴장해서 이게 오케이인지, 아닌지 구별을 못했다. 의욕만 앞서서. 이 검사도 경험이 별로 없고, 그렇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는 그런 모습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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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을 연출한 이한 감독.


-'증인'처럼 변호인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변호인의 직무를 포기하는 사례가 적어도 한국에선 아직 없는데.

▶한국에선 그런 사례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외국에선 몇가지 사례가 있더라. '용감한 변호사'에서 변호사가 법정을 뒤집어버리는 장면이 너무 통쾌했다. 그런 모습을 '증인'에서도 담고 싶었다. 많은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내부고발자 분들을 응원하고 싶었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변호사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 장면을 정말 고민 많이 했다.

-순호가 민변 시절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피켓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순호가 대형 로펌에 들어간 뒤 재벌의 잘못된 문제에 맞서 싸우는 민변 동료 송윤아를 보게 하는 건, 각각의 시대를 반영한 것인가.

▶그렇다. 순호가 몇 살 즈음에 그런 일을 했고, 다시 몇 살 즈음에 그런 일을 겪을지를 고려해서 시대를 반영했다.

-우문이긴 하지만, 정권이 바꾸고 민변 출신들이 약진하면서 어느 한쪽에선 그걸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증인'에서 민변을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로 그리는 데 불편해하지 않을까.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민변에 대한 사람들의 보통 인식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에 '증인'을 본 한 화계사분을 만났다. 왜 회계사를 제일 악당으로 그렸냐고 하더라. 거기까진 생각 못했다.

사실 각색하면서 숫자를 많이 넣었다. 숫자가 갖고 있는 함의들, 상징들, 그리고 그게 결국 가리키는 것들을 넣으려했다. 그런데 너무 직접적인 것 같아서 뺐다.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되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도 계속 판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처음 접촉했을 때와는 달리 일본에서 드라마로 큰 성공을 거둬서 영화 판권 요청이 많아졌다더라. 그리고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담은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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