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김혜수이기에 가능했던 순간들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12.01 09:00 / 조회 : 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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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제작 영화사집)에서 김혜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직면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팀장인 한시현을 연기했습니다.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가 한국에 몰아닥칠 것임을 수없이 경고했던 한시현은 '국가부도가 1주일 남았다'는 최후통첩이나 다름없는 보고서를 씁니다. 그제서야 사태를 실감한 정부가 한시현을 비롯한 각 부처관계자들로 비공개 대책팀을 꾸리며 영화는 시작합니다.

팀이 함께 만든 두툼한 보고서를 들고 회의에 가는 한시현. 비장한 표정의 팀원들은 말없이 그녀의 구두를 준비하고 코트를 입혀줍니다. 전투에 나서는 장군을 위해 충직한 부하들이 갑옷을 입혀주는 순간을 보는 듯합니다. 사실 출전이나 다름없는 장면입니다. 맥락도 없이 튀어나오는 "여자는 이래서 안된다니까"라는 편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과 진단을 "다 그런겁니다"로 싸잡는 관행, "다 따로 있다"는 은밀한 거래와 예정된 각본과 그녀는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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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컷


이는 김혜수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새삼 실감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성 리더를 위해 부하들이 갑옷을 준비해주는 장면을 한국영화에서 처음 본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름 아닌 김혜수니까요.

김혜수는 다양한 변신을 거듭해 왔습니다. 술집 마담과 암흑세계의 보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기꾼과 백치미 여배우를 오갔죠. 수많은 캐릭터를 오가면서도 변하지 않았던 건 하나가 있다면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스타성을 겸비한 김혜수라는 배우 자체였습니다. 똑 부러지는 경제 전문가로 IMF 협상 테이블까지 오르는 '국가부도의 날'의 한시현은 김혜수가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캐릭터지만, 그녀를 두고 쓴 것이 분명한 캐릭터입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빛과 위풍당당한 존재감, 세상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고스란히 한시현의 아우라로 옮겨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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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컷


김혜수는 한시현을 투사나 영웅이 아니라 소임을 다하는 인물로 그렸습니다. 그것도 김혜수처럼 당당하고 힘있게. 일개 팀장인 한시현은 우왕좌왕하는 한국은행장에게 지시 같은 조언을 술술 하고, 대책반의 주도권을 쥐려는 재경부 차관과 팽팽히 힘겨루기를 합니다. 협상단의 최하위 실무자이면서 뱅상 카셀이 맡은 IMF 총재와 건건이 맞섭니다. 그 순간은 뜬금없는 판타지가 아닌 분통 터지는 현실이 되어 다가옵니다. 역시 김혜수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김혜수의 소임, 그녀는 그 어려운 걸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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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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