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출국'이라는 영화 혹은 프로파간다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11.24 12:00 / 조회 : 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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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출국' 포스터


영화 '출국'이 상영 중입니다. 지난 11월 15일 개봉한 이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관객과 만났습니다. 후반작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영화는 화이트리스트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지난 정부 당시 제작비 65억 중 상당 부분을 영진위 지원 및 문광부 소관인 모태펀드로 충당해 정권 차원의 밀어주기라는 눈총을 받았습니다.

합리적 의심이 가는 상황입니다만, 직접 만든 이들은 억울해 합니다. 시사회에서 노규엽 감독이 "합리적 의심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이 아닌 기사가 많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영화를 영화로' 봐 달라 당부했습니다. 주인공 이범수는 "다 오해니까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출국'은 독일 유학 중 가족과 월북했다 홀로 탈출한 경제학자 오길남 박사의 자전적 이야기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이 원작입니다. 감독은 6년 전 접한 "경제학자의 비극적인 공항 탈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기에 원작에 표기했을 뿐 체제에 치인 개인의 이야기에 영화적으로 접근했음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감독의 말과 아귀가 안 맞는 대목도 있습니다. '출국'은 시작부터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원작자의 두 딸 이름을 그대로 씁니다. 고 윤이상이 월북을 권유했다는 원작자의 주장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인물도 영화에 나오고요.

하지만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논란 많던 원작과 차이가 있습니다. '출국'은 냉전의 시대 북으로 가면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꼬임에 가족과 북한으로 떠났던 경제학자가 코펜하겐 공항에서 가족 탈출을 감행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내와 작은 딸이 북측 손에 넘어가고, 그는 "그건 실수였습니다"라고 토로하며 헤어진 가족을 되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출국' 주인공의 처지는 혼자 탈북한 원작자의 상황과 다릅니다. 감독의 말마따나 공항탈출 이후 주인공이 베를린 어딘가에 있을 가족을 찾고, 북한측은 물론 한국 안기부와 미국 CIA까지 끼어드는 이야기는 '영화적' 설정일 테고요.

'출국'의 완성도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화는 아귀 잘 맞는 국제 첩보 스릴러보다는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우격다짐 드라마에 가까워 보입니다. 모든 걸 나쁜 북한 탓으로 돌리는 대립구도가 세련되지도 않고요. 하지만 북측이 악역을 담당한다 해서 애국심이 피어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선동이라 치부하기엔 상업영화적 요소가 상당한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남과 북의 갈등 속 가족을 찾으려는 아빠의 자책 어린 고군분투를 단순하긴 해도 우직하게 끌고 갑니다.

아이러니한 건 진영 논리나 화이트리스트와 무관하다는 만든 이들의 호소가 무색한 개봉 이후의 상황들입니다. 영화를 관람하고 또한 관람을 독려한 몇몇 국회의원들은 '영화를 영화로' 못 보는 것 같습니다. 북에 남겨진 원작자의 아내와 딸들을 거론하며 '김정은이 서울에 오려면 그 전에 먼저 모녀가 서울에 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와 이 표현 사이의 비약적인 간극을 아실 겁니다. 어떤 국회의원 모임은 '출국'을 단체 관람하며 "실존했던 납북 공작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보고 싶은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영화에서 영화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싶은 이들에겐 다른 것이 먼저 들어오겠죠.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출국'이란 영화의 처지가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시대와 상황에 휘말려 의심받고 고통을 겪은 주인공의 처지와 닮았다고요. '출국'은 개봉 한 주가 된 지난 22일까지 6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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