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유아인 "이제 불안함이 많이 없어졌다"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11.21 16:51 / 조회 : 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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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의 유아인/사진제공=UAA


"저를 자꾸 욕먹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아주 많은 관객이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일을 할 수 있고 여기 앉아 있을 수 있어요."

유아인의 말 그대로다. 누군가는 유아인에게 욕을 퍼붓는다. 누군가는 유아인에게 애정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분명한 건, 유아인은 욕과 사랑 속에서 자기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유아인 스스로 원해서 걷는 길이다.

유아인이 '버닝' 이후 새 영화로 돌아왔다. 28일 개봉하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는 국가부도를 앞두고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를 이용하려는 사람, 위기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유아인은 국가부도에 역베팅해 돈을 벌려는 금융맨 윤정학 역을 맡았다.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유아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국가부도의 날'은 왜 했나.

▶모두가 부도를 두려워하지 않나. 국가가 부도 하는 순간을 맞아 개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담은 시나리오가 흥미로웠다. 단순히 흥미롭다기보다 어떤 시선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환기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 좋았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영화를 이끄는 인물로 출연한 김혜수가 "어떤 캐릭터가 먼저인 게 중요한 것 아닌 것 같은데 배우들이 (순서와 비중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나 보더라"며 "유아인이 역할의 크기를 떠나 출연을 결정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그 말 그대로 더 주목받을 수 있는 작품도 있었을텐데.

▶배우 일이란 게 주목받는 직업이긴 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닌 것 같다. 그렇기에 '우아한 거짓말'에 카메오로 출연했고, '베테랑'에서 악역을 맡을 수 있었다. 당장 즉각적인 관심과 사랑보다는 좋은 작품에 일 부분이 될 수 있는 게 배우로서 목표다.

또 '국가부도의 날'은 국가부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란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난 이야기 중심에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진입시키는 역할이라서 좋았다. 어쩌면 위기는 싫지만 그걸 기회로 더 갖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인물이란 게 관객과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것 같다. 가치관이 흔들리는 인물이란 게.

-IMF 당시를 기억하나.

▶뉴스 화면 외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생각을 더하게 됐다. 언제나 그리하려 했지만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어린 물주(류덕환)를 때리는 장면도 있는데.

▶그 인물의 본성을 설명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돈 벌었다고 좋아하지 마"라면서 그렇게 한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저 역시도 돈 좀 벌었다고 좋아하지 마라, 내가 부자가 된다고 세상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생각과 캐릭터가 닿아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돈을 쫓고, 성공을 쫓아도 어느 순간 헛헛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 아닌가. 공허함이 찾아오고. 배우 유아인의 자기반영이기도 하다.

-실제로 금융쪽으로 투자하나.

▶전혀 관심 없다. 전혀 모른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돈이 많은 분들도 만나게 된다. 빌딩을 몇 채씩 갖고 있는 분들. 만나보면 그렇게 재밌어 보이지 않더라. 더 가지는 데 온통 관심을 갖고 있는 모습이.

-그럼 어떤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지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예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기분이 좋다. 그 순간 행복하다기보다 잠들기 전에 찝찝한 기분이 덜한 느낌이다.

-극 중 윤정학은 위기를 기회로 계급을 바꾸려 한다. 유아인이 연기를 시작한 여러 동기들 중에서도 그런 이유가 있었나.

▶계급씩은 아니지만 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방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의식에 갇혀있는 상태를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다른 걸 경험해보고 싶었다.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었다. 지금은 그렇게 나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늘 작품을 선택할 때 이방인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느낌이고.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 담겨있는데.

▶이방인. 음. 내게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향. 누군가는 (내게)왜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하냐고 한다. 나로선 오히려 게으르고 편한 선택이기도 하다. 온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걸 아직 하지 못한다는 자기 반성이 있다.

-그렇게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한다거나 그래서 억울하거나 그렇지는 않나.

▶(한동안 말없이 생각을 하다가) 죄송해요. 솔직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억울~할 때도 있죠. 그런 마음과 싸운다. 내 인생을 살고 싶다. 내 인생의 승리를 남이 아닌 나에게 주기 위해 싸운다.

-그런 승리를 위해 SNS를 하나.

▶SNS는 있으니깐 하는 것 같다. 하는 이유를 가져다 붙일 수도 있지만 음..그냥 있으니깐 한다. 밥이 있으니깐 먹고, 옷이 있으니깐 입는 것처럼. 예전에는 내가 누구인지 알리려 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편하고 있으니깐 한다. 가끔 예전 내가 했던 싸이월드를 몰래몰래 보곤 한다.

어떤 형태나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그 속에 담겨있는 마음이 중요하지. 그래서 '국가부도의 날'이 좋았다. 어떻게 봐주실지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가 이 의미 있는 이야기를 관객과 잘 소통하려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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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의 유아인/사진제공=UAA


-이번 영화에서 김혜수와 허준호, 조우진 등과 직접 연기를 하면서 호흡을 맞추진 않았다. 각 배우들의 연기를 완성된 영화를 통해서 봤을텐데 어땠나.

▶촬영장을 오가면서 뵙기는 했었다.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굉장히 리스펙트하게 됐다. 김혜수, 허준호, 조우진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 그전에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삶으로 내공으로 쌓인 것들이 느껴졌다. 허준호 선배는 얼굴 자체로 눈빛으로 전부 표현했다. 그 인물 그 자체였다. 김혜수 선배는 그 인물에 온 몸을 던져서 불태우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조우진 선배는 그 인물을 날카롭게 만들려 하셨더라.

-유아인에게 감독이 어떻게 주문했고, 어떻게 하려 했나. 엔딩 즈음에 홀로 걷는 장면이 그 인물의 감정 연기 하이라이트였는데.

▶최국희 감독님은 주문보다는 믿고 지켜봐주셨다. 그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눈물을 흘리는 게 있었다. 실제로 연기할 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에선 눈물을 흘리기 전으로 편집했더라. 정말 좋았다. 앞만 보고 가던 인물이 처음으로 하늘을 보는 감정을 그렇게 담으셨더라. 날 이렇게 활용하시는구나, 함부로 쓰지는 않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국가부도의 날'이 여성이 이끄는 영화란 점도 선택의 이유라고 했는데. 지난해 SNS로 사건이 있었던 게 그런 선택에 영향을 미쳤나.

▶그 사건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다. 항상 그런 부분(여성 서사)에 고민하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이 영화를 선택한 것과 그 사건을 연결짓지는 않았다. 흥미롭고 신선하고, 현재 상황을 암시하는 듯 하다. 난 어느 한쪽 편이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조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다. 균형미을 찾는다.

-스스로의 의도와는 달리 누군가는 응원하고, 누군가는 싫어하게 됐는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기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편가르기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것. 그렇게 자기 생각들을 쏟아내고 진정한 자신을 찾은 사람들이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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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의 유아인/사진제공=UAA


-인터넷에서 하루에 다섯 번 이상 자기 이름을 검색해보나.

▶그런 적도 있다. 전혀 하지 않는 적도 있다. 사실 인터넷을 잘 안한다. 휴대전화에 알림 설정을 안했다. 전화도 묵음으로 해놨다. 휴대전화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해놓는다. 그래서 휴대전화로 답을 할 때 늘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한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나.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그렇지만 지금 직업은 얽매이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일과 나를 같이 가면서 최소한만 얽매이려 노력한다. 그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여전히 누가 뭐라고 그러지 않아도 스스로 얽매이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자리에 있을 때, 선배들을 만났을 때,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표준모델이 있지 않나. 난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면서도 진짜 나답게 진심을 전달한다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미울 수도 있지만 크게 기분 나쁘지 않기를 바란다.

-유아인은 몇개의 자아를 갖고 있나.

▶제가 연기한 인물 만큼의 자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려고 그런 것 아닌데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인물을 표현하려면 그 인물이 되거나 그 인물의 어떤 부분을 끌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자아라고 하기 보다는 그 인물의 어떤 성분을 계속 가져오는 것 같다. 자아는 잘 모르겠다. 그런 게 배우로서는 축복일지 모르겠지만 한 인간으로선 저주일 수도 있다. "유아인, 인간으로서 저주다" 이렇게 쓰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자아를 쌓아오면서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상처 받지는 않았나.

▶상처를 받았다는 것보다 상처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상처를 받아야 치유를 하고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어느 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며)저를 자꾸 욕먹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고개를 들며)아주 많은 관객이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일을 할 수 있고 여기 앉아 있을 수 있어요. 내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잖아요. 이런 경험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인지 불안함이 많이 없어졌어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들에 얽매인 것에서 풀려난 것 같아요.

-그렇게 불안함이 없어지게 된 데 '국가부도의 날' 작업이 영향을 끼쳤나.

▶'국가부도의 날' 만큼 영향을 줬다. 일을 대하는 태도, 나를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 '국가부도의 날' 작업은 성실함을 준 것 같다.

-'버닝' 이후 '국가부도의 날'을 하면서 처음엔 혼란을 겪었다던데.

▶'버닝'을 하면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옷을 벗었다. 실제로 벗기도 했지만. 무장해제가 됐다. 갑옷을 벗어던졌다. 그러다 보니 다시 챙겨 입어야 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좀 겪었다.

-이제 시상식이나 이런 자리들에 올 때마다 먹던 우황청심환은 안 먹나.

▶안 먹는다. 칸국제영화제에 '버닝'으로 갔을 때도 안 먹었다.

-다음 작품은.

▶약속상 아직 밝힐 수는 없다. 내년 1월에 재밌고 즐거운 사건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아니다. 새로운 걸 보여드리려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 내가 살아가려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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