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가부도의 날' 재난영화에 압도적인 김혜수의 존재감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11.20 10:15
  • 글자크기조절
image


대한민국은 IMF 이전과 이후로 바뀐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됐고, 없는 사람은 더 없게 됐다.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비정규직이 쏟아졌다. 자살률은 치솟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대한민국이 바뀐 바로 그 순간을 제대로 짚었다.

OECD에 가입해 선진국이 됐다고 샴페인을 터뜨렸던 1997년. 경제 호황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곧 엄청난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을 예견하고 보고서를 올린다. 숱하게 올렸던 그녀의 보고서를 외면했던 윗사람들은 국가부도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부랴부랴 비공개 대책팀을 꾸린다.


금융맨 윤정학은 곳곳에서 감지되는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그는 국가부도에 투자하는 역베팅을 결심하고 투자자를 모은다.

직원들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작은 공장 사장이자 평범한 가장 갑수. 국가부도 사태를 알 리 없는 그는 대형 백화점과 어음 거래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이 계약으로 아이들 잘 키우고 아내 호강시킬 소박한 꿈에 젓는다.

한시현은 대책팀 내부에서 위기대응 방식을 두고 재정국 차관과 강하게 맞붙는다. 정보를 공개해 이 사태를 모르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막자는 시현과 그렇게 해서 경제가 패닉이 되면 책임질 것이냐며 반대하는 차관. 늘 그렇듯 정부는 비공개를 선택한다.


외국 투자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한국을 떠난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줄줄이 도산한다. 갑수 같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는다. 재정국 차관은 이 위기를 막을 길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시현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올 것이라며 반대한다. 그런 와중에 IMF총재가 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입국한다. 국가부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공포스럽다. IMF 시대를 겪었고, 그 후유증을 지금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부도의 날'은 공포스럽다. 최국희 감독은 '국가부도의 날'을 재난영화 같은 호흡으로 연출했다. 사람이 만든 재난. 그 속에서 해결하려는 사람,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 그리고 그 재난을 이용하려는 사람. 이 사람들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을 모자이크처럼 담아냈다. 편집의 묘가 상당하다.

'국가부도의 날'은 세 축으로 구성됐다. 국가부도를 막으려는 한시현, 국가부도로 돈을 벌려는 윤정학, 국가부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갑수. 이 세 축은 다른 결로 그날을 재현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교차되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귀납된다. 공포다. 살아남으려는 공포와 살아남은 사람의 슬픔. 영화는 슬픈 푸른색으로 이 세 축을 감싼다. 이 위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은 불쾌한 오렌지색으로 도배한다. 이 색감이 '국가부도의 날'이다.

한시현을 맡은 김혜수. 한국영화에 보기 드문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래서 여자는 안돼"라는 사람들 속에서, "그러면 팀장님이 잘려요"라는 부하 앞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라며 할 일을 한다. 할 일을 하는 사람. 그때나 지금이나 소중하다. 김혜수는 영화 속에서 확실하게 해냈다. 한국영화에서 여자 상사가 출동할 때 부하들이 구두를 준비하고 코트를 대령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지. 그 모습을 당연하게 만드는 배우. 김혜수다.

재정부 차관 역을 맡은 조우진. '국가부도의 날'을 다큐가 아닌 영화로 만든 장본인이다.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도드라지는 악역을 연기했다. 악이 강할수록 영화가 강해지는 법. 조우진이 얄미우면 얄미울수록, '국가부도의 날'이 더욱 극적이 된다. 갑수 역을 맡은 허진호. 살아남으려는 사람의 공포와 살아남은 사람의 슬픔을 영화에 각인했다. IMF를 겪은 사람이라면 허진호의 주름 잡힌 얼굴을 보고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적을 것 같다.

유아인은 윤정학 역을 유아인스럽게 해냈다. 홀로 이야기와 떨어져 있는 인물을 맡았지만, 이방인처럼 부유하지만, 그걸 결국 영화 속에 녹여낸다. IMF총재를 맡은 뱅상 카셀은 분위기를 더한다.

'국가부도의 날'은 패배의 서사다. 금융위기로 돈 버는 사람들의 승리 서사인 '빅쇼트'가 아니다. 이 결말을 이미 대한민국은 알고 있다. 현재진행형이란 것도 알고 있다. '국가부도의 날'이 명확한 건, 이 패배의 서사를 패배로 끝맺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 질 수 없다.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국가부도의 날'은 '1987' 꼭 10년 뒤의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다이나믹하다.

11월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추신. 에필로그에 카메오로 여배우가 등장한다. 우연이지만 그 배우의 잔상으로 '국가부도의 날'은 패배에서 다시 일어나는 서사를 입는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