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완벽한 타인' 이재규 감독 "내 역할은 지휘자"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11.01 10:44 / 조회 : 17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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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 TV드라마로 일찌감치 방송계에선 스타PD로 불렸다. 그랬던 이재규 감독은 돌연 영화를 하겠다며 잘나갔던 직장을 그만뒀다. 간간이 TV드라마를 찍긴 했지만 그의 뜻은 계속 영화였다. 2014년 '역린'을 데뷔작으로 선보였다. 384만명이 찾아 흥행은 성공했지만 영화 문법이 아니라 TV드라마 문법이란 혹평에 시달렸다.

그로부터 4년. 이재규 감독이 '완벽한 타인'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들이 집들이로 모였다가 휴대전화에 걸려오는 내용을 모두 공유하는 게임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이재규 감독은 '역린'으로 얻은 교훈, 그리고 오기를 '완벽한 타인'에 녹여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완벽한 타인'은 왜 했나.

▶제작자가 이탈리아 원작을 우연한 기회에 보고 리메이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같이 해보자고 했다. 당시 난 '1박2일' 유호진PD가 쓴 소설 '플레이어'를 영화로 만들 생각으로 시나리오 작업 중이었다. 음악을 들으면 초능력이 생기는 이야기였다. 1년 정도 쓰다가 안 풀려서 고민 중이었다. '완벽한 타인' 제안을 받으면서 원작을 한국화하면 재밌을 것이라 생각하고 참여하게 됐다.

-당초 '명량' 김한민 감독이 제작하려 했던 '전투' 연출도 고민했었는데. 차기작으론 첩보원 이야기인 영화 '에이전트'와 좀비 학원물인 TV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을 준비 중이고.

▶'전투'는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가 영화 방향에 대한 포인트가 맞지 않아 고사했다. '에이전트'는 연출 제안을 받아 각색을 하는 중이고, '지금, 우리 학교는'은 내년 JTBC 방영이 예정돼 준비 중이다. '에이전트'와 '지금, 우리 학교는' 중 어떤 게 먼저 들어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역린'부터 고사했던 '전투', '완벽한 타인', 준비 중인 '에이전트'와 '지금, 우리 학교는'은 모두 색깔이 완전히 다른데.

▶비슷한 걸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한편으론 사람이 갖고 있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다루는 걸 좋아한다. 그런 작품들을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

-'역린'에 이어 '완벽한 타인'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적용됐나.

▶'역린'은 관객들이 많이 찾아주셨지만 한편으론 영화는 주인공이 한두명인데 다중 주인공이어서 이야기가 집중되지 않는다는 지적, 다중 주인공이 한공간에 있어서 영화 같지 않다는 지적, 플래시백이 남발돼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난 정적인 긴장감을 주려 했는데 그걸 아쉽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고.

'완벽한 타인'은 그래서 오히려 한공간에 다중 주인공을 몰아넣고, 쉽고 재밌게 풀어보고 싶었다. 일종의 오기도 있었다. TV드라마 PD출신은 영화를 못 만든다는 선입견, 한정된 공간에 다중 주인공은 영화 같지 않다는 편견, 이런 것에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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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 스틸


-유해진을 비롯해 출연한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와 영화 속 캐릭터에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주는 재미가 있고.

▶일단 원작의 소재가 재밌다. 이 재미에 실제 배우들의 이미지와 영화 속 캐릭터에 간극이 있으면 더 재밌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민적인 이미지의 유해진이 서울대 법대 출신의 보수적인 변호사로, 뜨거운 이미지의 조진웅이 부드럽고 자상한 성형외과 의사로, 상당히 똑똑한 이서진이 무식하지만 여자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남으로. 이런 캐스팅이 잘못되면 위험하지만 워낙 배우들이 훌륭해 믿고 갈 수 있었다.

-한정된 장소에서 계속 일어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공간을 쪼갠다든가, 다양한 렌즈를 활용해 긴장감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소위 영화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TV드라마처럼 인물에 몰입시키는 방법을 썼다. 그러다가 종종 음악에 맞춰 훅 끌어당기는 방식을 썼고. 그런 방식이 '완벽한 타인'에 아주 잘 맞았다. 배짱이 느껴지는 것 같던데.

▶배짱보단 확신이 있었다. 철저히 계산했고. 미쟝센으로 감추거나 기법으로 강요하지 않고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결정했다. 배우들이 놀게 하고. 다만 결정적인 장면들은 관객들을 끌어당기도록 하자고 생각했다. 휴대전화 벨소리로 '아이 윌 서바이브'가 울려 퍼지면 관객들이 집중하도록 했다. 렌즈도 염정아가 유해진의 비밀을 알게 될 때 부감으로 어안렌즈를 사용한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걸 의도하지 않았다.

-조진웅과 김지수가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구도와 특히 조명, 색이 남다르던데.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김지수 조진웅 부부가 서로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 걸 나눈다. 과거 이야기를 넣을까 했다가 굳이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김지수는 밝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보고, 조진웅은 상대적으로 푸른 색감 속에 덩그러니 있다. 그 구도와 색, 거울의 이미지가 갈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이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영화계엔 TV드라마 PD 출신에 대한 편견이 분명히 있다. 실제로 드라마PD 출신 중에서 영화 흥행에 성공한 건 '역린' 밖에 없고. '역린'도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완벽한 타인'은 영화적인 기법을 더 많이 사용할 법도 했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했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타인'에 그런 방식이 적합했고.

▶'역린'을 할 때 정말 잘하고 싶었다. 분명히 그런 편견이 있는 걸 알고도 있고. 나 딴에는 정적인 갈등을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지적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재밌고 쉬운 이야기로 소통하고 싶었다. 연출과 관련한 작의는 안 드러내고자 했다. 민낯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하면서 민낯이 아니라 포장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순 없다고 생각했다.

-베테랑 배우들과 같이 작업했는데. 베테랑 배우들과 작업은 한편으론 안심이 되지만 한편으론 훨씬 어려운 작업이기도 했을텐데.

▶염려가 없진 않았다. 다만 이 배우들은 서로 동의를 해서 이 작품에 함께 하기로 한 것이었다. 다들 프로인 만큼 그런 점에서 믿었다. 내 역할은 서로를 원만하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3일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리딩을 했다. 애드리브를 어떻게 할지 서로 의논했다. 그리고 연극처럼 이틀 동안 전체를 리허설했다. 동시녹음을 할 때 오디오가 물려도 무방하니 최대한 현장성 있게 해달라고 했다. 결국 교향곡처럼 앙상블이 중요하니 지휘자로서 최소한의 개입만 하고 배우들의 호흡을 우선했다.

처음 일주일은 아무래도 서로 친하지 않으니 삐걱대는 순간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다가 매일 저녁을 같이 먹고 매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점점 더 실제 친구 같이 좋아졌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리액션이 훨씬 좋아졌다.

-배우들의 호흡만큼 원작을 한국화하는 것도 중요했을 텐데.

▶일단 속초를 친구들의 고향으로 한 건, 산과 바다가 같이 있는 곳이기에 그랬다. 우럭도 나오고 붕어도 나오고. 그런데도 산이냐 바다냐로 싸우고. 어디선가 타인은 단순한 나쁜 놈이고, 자신은 복잡한 좋은 놈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은 다들 복잡한 나쁜 놈인데. 이걸 염두에 뒀다.

-캐릭터에 경험담을 많이 녹였다던데. 조진웅이 사기를 당한 것이랄지.

▶조진웅 캐릭터는 실제 나와 유사하다. 대학교 1학년 딸도 있고. 방송국 나와서 사기를 당했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는 고통으로 공황장애를 겪었기도 했고. 유해진 캐릭터는 '완벽한 타인' 시나리오를 쓴 배세영 작가님의 아이디어다. 당신의 아빠, 그러니깐 윗세대를 그렸다. 꼰대 같고 그러면서도 가족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가장. 억압받는 아내. 그런 윗세대이기에 둘 다 일탈을 꿈꾸는 걸로 묘사했다.

김지수 캐릭터는 원작과 가장 비슷하다. 악의는 없지만 "이 쇼파는 5000만원짜리 악어가죽이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실 처음에 계급을 어떻게 묘사할까 고민했었다. 김지수 조진웅 부부를 서민으로 그릴까도 했다. 그러다가 표면적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그 속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리려면 지금처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서진은 원래 똑똑하다. 이 똑똑한 사람을 무식한 바람둥이로 그리면 재밌을 것 같았다. 둘이 연극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같이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이서진에게 저렇게 단순하고 무식한 바람둥이로 당신을 써보고 싶다고 했었다. 이서진도 좋다고 했었고.

송하윤 캐릭터는 배세영 작가님의 아이디어다. 남자들은 솔직하고 긍정적이라서 좋아할지 모르지만 여자들에겐 눈치 없고 재수 없는 이른바 'O형 여자'라고 하더라.

윤경호가 맡은 게이 캐릭터는 그냥 평범한 친구로 관객이 받아들이길 바랐다. 그래서 관객들이 잘 모르는 배우를 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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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 쉼표들이 있다. 이 쉼표들로 완급이 조절되긴 하는데, 이 쉼표들도 최근 영화 트랜드와 다르다. 최근 영화들이 완급 조절을 위해 쓰는 쉼표보다 더 긴데.

▶'역린'에는 일괄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폭발시키려 했다. 반면 '완벽한 타인'은 흐름의 완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자체가 숨가쁘게 진행돼 관객이 지칠 수도 있으니깐. 또 재미도 재미지만, 정서도 중요했다. 그래서 쉼표를 여느 영화들보다 더 길게 가려 했다. 사실 완급을 위해 플래시백에 대한 유혹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관객들은 충분히 이런 완급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각각의 커플들 이야기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데 조진웅 김지수 커플은 기승전결 중 승이 없고, 이서진 송하윤 커플은 기승전결 중 결이 없다. 윤경호는 기승전결 중 기가 없고. 염정아 유해진 커플은 결이 없었는데 에필로그로 결을 붙여넣었는데.

▶조진웅 김지수 커플에 승이 없고, 이서진 송하윤 커플에 결이 없는 건 그 공백을 관객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 윌 서바이브'는 이서진의 휴대전화 벨소리지만 송하윤의 테마송이다. 그렇게 깨닫게 하고 싶었다.

유해진 염정아 커플에 에필로그로 결을 넣은 건,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커플이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이 영화를 바다 위의 배라고 생각하면 유해진 커플이 닻의 역할이고, 이서진 커플이 파도의 역할이다. 조진웅 커플이 배 위에 탄 승객이고. 그래서 유해진 커플에 결이 있어야 훨씬 이야기가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반지가 돌면서 영화가 '인셉션'처럼 된다. 결말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는데.

▶'인셉션' 오마주가 맞다. 지금 결말이 순응적인 게 아니냐, 문제를 덮고 살라는 게 아니냐, 이런 지적들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사실 현실은 반지가 도는 순간 이미 끝난다. 오히려 반지가 돌고 난 뒤가 환상이다. 각각의 관계가 파탄이 나는 순간 관계가 발전된다. 그런 걸 담으려 했다.

-원작처럼 게이 캐릭터가 이야기에 중요한 축 중 하나다. 그런데 원작보다 '완벽한 타인'은 게이에 대해 훨씬 직접적으로 설명하는데. 정치적인 올바름을 고려한 것인지.

▶그렇다기보다 내가 게이에 대해 잘 몰라서 더 설명하려 한 것 같다. 성소수자에 대해 더 이해가 깊었다면 또 달랐을 수도 있다.

-이순재, 조정석, 라미란 등이 목소리로 출연했는데.

▶저와 제작자가 친분으로 섭외했다. 목소리를 관객이 단숨에 알아들었으면 하는 분들도 있었고, 관객이 잘 몰랐으면 하는 분도 있었다. 거기에 맞춰 각각을 섭외했다. 녹음기사가 가서 현장 녹음을 해 온 뒤 촬영할 때 그 녹음에 맞춰 연기를 했다.

-'아이 윌 서바이브' 외에는 음악이 많이 깔려 있는데도 감정을 끌어 올리는데 굳이 이용하지 않았는데.

▶최대한 배우들의 대사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음악을 많이 사용했지만 밑에서 움직이길 바랐다. 최대한 드라이하게.

-강원도 음식을 세팅했는데. 닭강정은 PPL인가.

▶그렇다. 현물 제공을 받았다. 물곰탕 등 최대한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음식이길 바랐다.

-엔딩에 사람은 '공적인 나, 개인적인 나, 비밀을 감추고 있는 나'로 구성된다는 걸 자막으로 넣었는데.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너무 설명적이지 않을까. 그러다가 영화에 어떤 부분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 고민고민하다가 넣었다.

-차기작에 TV드라마와 영화가 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병행하려 하는가.

▶그렇게 드라마와 영화를 오갈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다만 영화는 처음부터 꿈이었다. 현실적으로 방송국에 가는 걸 선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처럼 4년이 걸릴 게 아니라 좀 더 빨리 영화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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