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은 되고 '아가씨'는 안된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심사록을 살피니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10.30 10:29 / 조회 : 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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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선정 심사 회의록을 살펴보니 '아가씨'가 블랙리스트의 희생양이란 보도가 오히려 허구에 가까웠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 선정은 항상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영진위에서 구성한 심사위원단의 심사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이다. 특히 MB와 박근혜 정권 당시 영진위에서 발표한 심사결과에 대한 불만이 컸다.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대신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대표로 선정된 뒤 '아가씨'가 미국 여러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자 더욱 논란이 커졌다. 이 같은 논란은 영진위 심사위원 선정 방식이 불합리한 데다 심사위원 명단을 사후에도 공개하지 않아 더욱 확산됐다.

스타뉴스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실을 통해 2014∼2018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출품작 심사 회의록과 점수평가표를 입수했다. 앞서 국민일보는 이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심사위원회가 비공개회의에서 출품작을 미리 선정한 뒤 점수를 매기는 식으로 졸속 심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거의 매년 심사위원장이 "○○○을 대표작으로 뽑는데 대부분 동의하신 것 같다. 그럼 심사표에 각자 점수를 매겨주기 바란다"고 하는 식으로 진행된 걸 지적한 것.

하지만 이는 영화 심사 방식에 대한 접근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 심사는 각 심사위원들이 먼저 심사표에 점수를 매긴 뒤 합산해서 1등을 선정하는 방식과 각 심사위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1등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맞춰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있다. 정량평가와 토론평가다. 각각의 방식에 장단점이 있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에 기계적인 평가와 합산으로 결정하기보단 먼저 토론하고 그 결과에 맞춰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선호된다. 대종상이 '국제시장'에 10관왕을 몰아준 방식이 정량평가다. 토론평가를 졸속이라고 폄하하는 건 이해 부족이다.

해당 보도에선 '밀정'이 대표로 선정된 2016년 심사를 특히 문제 삼았다. 해당 심사에서 감독의 연출 역량 부문에 '인천상륙작전'과 '아가씨'에 같은 점수를 준 심사위원도 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이 의도적으로 '아가씨' 연출력을 깎아내리려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심사표를 살피면 이 심사위원은 '인천상륙작전'과 '아가씨'에 18점을 줬고, '4등'과 '우리들'에 24점을 줬다. 심사표만으론 의도를 읽기가 쉽지 않다.

심사 회의록에 심사위원들의 의도가 드러나 있다. 해당 심사는 미국 현지심사 40%, 국내심사 60%가 합산돼 최종선정됐다. 미국심사는 '아가씨' '부산행' '밀정' '4등' '우리들' 순이었다.

심사위원들은 '4등'과 '우리들'에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다만 심사위원들은 '4등'과 '우리들'이 소품이라 아카데미 후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최종 후보군에서 배제했다. 심사위원 중에선 소품이라도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며 끝까지 '4등'과 '우리들'을 민 사람들도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은 할리우드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제외됐다. '덕혜옹주'는 한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설명이 부족해 어리둥절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최종적으로 '아가씨'와 '밀정'을 놓고 심사가 진행됐다. 앞선 보도에선 한 심사위원이 '아가씨'에 대해 "잘 만든 영화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개인적 취향을 강조했다고 했다. 회의록에 기록된 이 심사위원의 말은 "'아가씨'는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주관적인 의견은 빼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좀 더 봐야할 것 같다"였다.

'아가씨'와 '밀정'에 대한 논의 중에선 한 심사위원이 '밀정'은 독창적인 반면 '아가씨'는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도 이 부분에 동의했다. 작품 완성도 면에서 '아가씨'는 제외하고 싶다는 심사위원이 있었고, "나 역시 좋게 본 작품은 아니었다"는 심사위원이 있었다. '밀정'은 투자사가 워너브라더스라는 점, 출연배우인 송강호와 이병헌이 아카데미 회원이라는 점, 이병헌의 미국소속사인 CAA 협조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돼 결국 최종적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후 채점 합산결과는 '밀정'이 81.5점이었고, '아가씨'는 72.6점을 받아 차점자가 됐다. '밀정'이 미국에서 9월30일까지 개봉을 못할 경우 '아가씨'가 출품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기자는 당시 심사와 관련해 "'아가씨'가 블랙리스트 희생양? 아카데미 후보 선정 뒷이야기"이란 기사를 썼다. 심사는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며, 영진위의 심사위원 선정이 불합리하고,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사후에 공개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가씨'가 뽑히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블랙리스트의 희생양은 아니라고 썼다. 그렇다면 '변호인' 제작자가 만들고 '변호인' 주연배우인 송강호가 출연한 '밀정'이 뽑힐 수는 없다고 썼다.

심사 회의록을 살피면 심사위원들 중에선 '아가씨'에 비호감적인 심사위원이 분명히 두 명 이상 있다. 영진위는 심사위원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스타뉴스 취재 결과 김학순 감독('연평해전'), 박현철 촬영감독('미스터고', '국가대표', 한예종 교수), 원동연 대표('광해' '미녀는 괴로워' 제작) 김선엽 교수(영진위원.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노혜진 기자(스크린인터내셔널 아시아부국장) 등이 참여했다.

심사의 불투명성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심사위원 선정의 불합리함도 개선돼야 한다. 심사위원의 역량과 자질도 지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없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는 이야기를 왜곡해선 안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영진위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 심사위원 명단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올해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선정됐다고 해서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올해 미국 현지심사 결과는 '남한산성'이 최고점이었고, '1987' '버닝' '공작' '당신의 부탁' 순이었다.

'1987' '공작' '남한산성' '당신의 부탁' '독전' '마녀' '박화영' '버닝' '산상수훈' '인랑' 등을 심사한 올해 심사위원은 김영진, 박혜은, 류성희, 이한나, 임필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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