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주혁 1주기..그가 남긴 영화들 9選②

[★리포트][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10.30 07:00 / 조회 :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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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주혁 / 사진=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스틸컷

믿을 수 없던 이별. 어느덧 배우 고(故) 김주혁의 1주기다. 그가 남긴 몇몇 영화들을 돌아보며 고인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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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싱글즈' 스틸컷

◆싱글즈(2004)

그때였던 것 같다. 김주혁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눈에 들어온 것이. 영화 '싱글즈'는 그 때만 해도 '노처녀' 소리를 쉽게 듣던 나이 스물아홉, 자유롭고도 위태했던 여자 나난의 이야기를 현실적이고도 유쾌하게 또 사려깊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 영화를 떠올리다 한번 더 숨을 돌리게 되는 건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리운 얼굴이 또 하나 있기 때문이다. 위암 투병 끝에 2009년 세상을 떠난 고 장진영. 그녀가 바로 생기발랄한 스물아홉 나난 역을 맡았더랬다. (김주혁과 장진영은 이듬해 '청연'에서 다시 연인으로 출연했다.) 나난의 곁에 든든히 서서 척 어깨를 내어주던 훤칠한 남자친구가 바로 김주혁이었다. 나난의 무엇이든 보듬어 줄 것 같은 사람. 내 어깨도 기대고 싶은, 든든하고 따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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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스틸컷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5)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란 아주 긴 제목의 흐뭇했던 영화에서 김주혁은 홍반장을 연기했다. 그 때는 '츤데레'라는 말이 없었다. 작은 어촌, 동네 아주머니나 할 만한 반장이란 직함을 달고서 무심한 척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사람. 도움 청한 이가 미안해 할까봐 몇 푼 받을 뿐, 바람 없이 베풀던 그 '츤데레' 남자에게서 많은 이들이 김주혁을 느꼈다. '구탱이형'으로 불리던 '1박2일' 속 그에게서도 그 수줍음이, 그 따뜻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김주혁이 떠난 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쉬워하고 허전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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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스틸컷

◆광식이 동생 광태(2006)

극과 극 형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또 다른 로맨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김주혁이 맡은 형 광식은 사랑 앞에 세상 둘도 없을 만큼 소심하고 굼뜬 남자였다. 그녀가 너무 소중해 무려 7년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걸고 심사숙고하던 그는 결국 그녀를 놓치고 만다. 김주혁을 추모한 지난 '1박2일'은 김주혁과 가장 닮은 캐릭터가 담긴 작품으로 '광식이 동생 광태'를 꼽았다. 삶에서든 사랑에서든 말 한마디 쉽게 걸지 못했던 사람이라며. 남 앞에서 노래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던 김주혁은 '홍반장'에서도,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특히 광식이 그녀를 보내며 부른 '세월이 가면'은 여운이 깊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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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스틸컷

◆아내가 결혼했다(2008)

제목부터 도발적이었던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김주혁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아내를 둔 남편을 연기했다. 일부일처제 대한민국에서 능히 두 남자를 제 품에 둘 만한 여주인공 인아 역 손예진의 매력이 출중했지만, 사실 공감이 갔던 건 김주혁이 연기한 덕훈 쪽이었다. 머리를 쥐어뜯을 만큼 괴로워하면서도 그녀가 없다는 상실감보다는 그녀 곁에서 괴로움을 끌어안는 게 나았던 남자는 따지고 보면 더 사랑해서 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김주혁은 말도 안되는 상황에 놓인 절박하고도 가엾은 남자를 탁월한 균형감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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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방자전' 스틸컷

◆방자전(2010)

'방자전'의 김주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헉 소리나는 베드신을 품은 '방자전'은 춘향도 이몽룡도 아닌 몽룡의 노비 방자의 관점에서 '춘향전'을 그려낸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다. '방자전'은 춘향을 지고지순한 열녀가 아니라 신분상승을 위해 통큰 베팅을 했던 여인으로, 방자를 춘향을 먼저 사로잡을 만큼 주인보다 잘난 노비로 그리며 발칙한 전복을 꾀했다. 다채로운 섹드립에 더해진 노출과 정사도 파격적이었다. '방자전'은 따뜻하고 때론 답답했던 로맨스물 속 김주혁 자체에 대한 전복이기도 했다. 그는 강렬하고도 베드신을 소화해내며 자신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지를 드러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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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컷

◆비밀은 없다(2015)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김주혁과 손예진은 '비밀은 없다'로 다시 호흡을 맞췄다. 비평가의 찬사를 받은 손예진의 열연 곁엔 여전히 든든했던 김주혁이 있었다. 그에게도 도전이 아니었을까. '비밀은 없다' 속 김주혁은 허울 좋은 훈남 정치인의 외피를 썼지만 알고보면 추악한 속물이다. 이전 어떤 영화 속 모습과도 달랐으나 아무 이질감 없이 캐릭터 안에 녹아났다. 로맨스를 걷어내고도 여전히 강렬했던 그의 존재감을 확인했달까. 돌이켜보면 '여배우 기근'보다 '여배우 영화 기근'이 심각했던 한국 영화에서 김주혁의 존재는 퍽 특별했다. 그는 홀로 빛나기보다 작품과 함께 빛나길 택하곤 했다. 그런 그와 함께 한 여배우들은 유독 반짝이는 빛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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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스틸컷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배우보다 연출자의 인장이 짙게 새겨지곤 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조차 김주혁의 존재감은 도드라졌다.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김주혁은 다시 '찌질한' 남자가 됐다. 그간의 이미지를 영리하게 이용한 변주나 다름없다. 거듭된 의심과 혼란을 겪고서 다시 마주한 여자친구에게 신앙 고백이라도 하듯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털어놓으며 행복하게 수박을 받아먹는 김주혁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너무 진짜같아 입을 떡 벌렸더랬다. 그는 이 영화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이유영과 실제 연인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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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공조' 스틸컷

◆공조(2017)

2017년 설 극장가에서 최종 승리를 거둔 각 잡힌 북한 형사와 남한 형사의 합동 수사극. 그 사이 오롯한 존재감을 발휘했던 김주혁이 있었다. 그건 우리가 몰랐던 김주혁이었다. 남한으로 숨어든 북한 범죄조직의 리더로 분한 김주혁의 카리스마는 현빈과 유해진, 극과 극의 두 상대와 너끈히 맞설 만큼 강렬했다. 구릿빛 피부와 탄탄한 복근에 거친 액션까지, 비주얼부터 완전히 달라진 그의 악역에선 섹시함까지 묻어났다. 새로운 시작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럴 줄은 몰랐다. 그 해 가을이 깊어가던 10월 30일 사고가 났다. 그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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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독전' 스틸컷

◆독전(2018)

해가 바뀐 뒤에도 그가 남긴 작품들이 하나하나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반갑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흥부:글로 세상을 바꾼 자'에서 허허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뒷모습이 작별 인사처럼 느껴졌다면, '독전'은 그가 스크린에 새겨놓은 강렬한 마침표 같다. 어떻게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조선족 마약상 진하림이 된 김주혁은 신스틸러 그 자체였다. 독한 캐릭터의 향연 속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유난히 빛난다. 배우 김주혁도, 허허실실 구탱이 형도, 로맨스 영화 속 기대고픈 남자도 아닌 진하림이 거기 있었다. 스크린 속 그에게선 터져나올 듯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가 남겨놓은 영화들을 되새기며 위안하는 것은 1년 뒤에도 또 그 1년 뒤에도 변함없을 스크린 속 김주혁을 볼 수 있다는 것 뿐. 그의 1주기를 맞아 가슴 따뜻했던 배우를 다시 추모한다. 주혁 배우님. 안녕.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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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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