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감독 추상미 "폴란드의 北고아들..상처의 연대 직감"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10.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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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추상미 감독 / 사진제공=보아스필름 커넥트픽쳐스


이젠 배우 추상미가 아니라 감독 추상미다.

그녀가 마흔 다섯에 내놓은 첫 장편영화는 오는 31일 개봉하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은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6.25 당시 전쟁에 집중할 수 있게 고아들을 맡아달라는 북한 측 요청으로 1500여 명의 북한 고아가 폴란드로 보내져 1959년까지 그 곳에서 지냈다는 것. 이 이야기를 장편영화 '그루터기들'(가제)로 만들겠다 결심한 추상미 감독이 오디션에 참여했던 탈북민 출신 배우 이송과 함께 폵란드로 떠나 아이들이 지냈던 프와코비체 양육원을 찾아가는 과정이 여러 인터뷰, 자료와 함께 담겼다.


◆배우 추상미가 아닌 감독 추상미

1973년생인 추상미 감독은 알려졌다시피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고 추송웅의 딸이다. 1994년 연극 '로리타'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뒤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약했지만 2008년 드라마 '시티홀'을 끝으로 이렇다할 연기 활동을 하지 않았다. 천직 같던 배우를 왜 그만둔걸까. "제가 처음 배우가 되려 했던 게 조금 의심스럽다"는 게 추상미 감독의 첫마디였다.

"걸음마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가 무대에 서신 걸 봤어오.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거의 무의식이죠. 동경할 수밖에 없고 다른걸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작가를 꿈꾸며 불문학과에 진학했지만 그 곳에서도 연극제를 도맡았고, 교수들의 권유 속에 전문 극단에 발을 디딘 그녀는 그 길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치유받지 못한 '상처'를 무대에서 치유해갔다는 추상미 감독은 "연극을 한 10년이 드라마 테라피를 받은 듯 심리 치료를 받은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스스로 품고 있던 주제를 연기로 풀어가지 못한다는 아쉬움 속에 꿈꿔왔던 삶과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미련없이" 배우로서의 삶을 떠났다.

늘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그녀가 새롭게 선택한 것이 영화 연출이었다. 연기를 하며 직접 원작을 각색하고 무대를 꾸미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던 그녀에게는 연기와 연출의 거리가 크지 않았다. 대학원에 진학했고 단편 두 편을 연출했으며, 그 사이 학교에 입학한 아들까지 키워내고서 이제 '감독 추상미'로 본격적인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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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추상미 감독 / 사진제공=보아스필름 커넥트픽쳐스


◆모성의 확장 그리고 상처의 연대

"다른 아이들이 내 아들처럼 보여요."

어머니가 된 그녀는 심한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일이 영화의 출발이 됐다. 늘 '상처'라는 주제에 골몰했던 그녀의 눈에 밟힌 이들이 힘겨운 삶을 살던 북한의 꽃제비였다. 그러던 중 폴란드로 보내졌던 북한 고아들의 실화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이미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이 이야기를 극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추상미 감독은 북한에서 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단역 오디션을 실시하면서 이들의 리서치를 시나리오에 반영하기로 했다. 폴란드를 직접 찾아가 생존해 있는 교사들을 만나볼 계획도 세웠다. 이 모두를 시나리오 작업을 위한 과정으로만 두기엔 아까워 카메라에 담기로 한 것이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시작이었다.

"이 소재를 다룬다는 데 책임감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기록을 해야하고, 육성 증언을 남겨야겠다 생각이 들었죠. 공교롭게도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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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영화엔 폴란드로 떠나기 전 추상미 감독이 노트에 '상처의 연대'라는 다섯 글자를 적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주제나 다름없는 문구다. 자료를 수집하며 접한 폴란드 교사의 인터뷰가 있었다 한다. '선생님' 대신 '아빠, 엄마'라고 부르라며 타국에서 온 동양인 전쟁고아에게 극진한 애정을 쏟았던, 지금도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던 그의 말이 추상미 감독의 가슴을 쳤다.

"왜 아이들을 사랑하셨냐 물어보니 본인들도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거기에 확 꽂혔어요. 확신했어요. 이 이유가 아니라면 60여년 지난 지금까지 저러실 수가 없다. 직관같은 게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떠올라 끄적끄적했는데, 그땐 그게 편집돼 영화 그 부분에 들어갈 줄은 몰랐죠."

막연히 그래서 연민을 품었겠지 상상하는 것과 추상미 감독이 폴란드로 떠나 눈 앞에서 직접 본 것은 전혀 달랐다. 2차대전 당시 폴란드는 패망을 확신한 나치가 몸부림을 치다시피 했던 곳이다. 폭격으로 바르샤바란 도시를 초토화시켰고, 사람들은 쌓인 시체 사이를 다녀야 했다. 폴란드의 교사들이 처음 보는 까만 머리의 동양인 아이들을 만난 건 그로부터 겨우 6~7년이 지난 때였다.

"요제프 원장님이란 분이 증언을 하시는데, 그 아이들이 내 유년시절의 일부 같았고,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해 그렇게 부르게 했다고 하셨어요.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내 삶에서 가장 의미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바로 북한의 아이들을 돌봤던 일이라고도요. 요즘도 결연아동을 돕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건 단지 선행을 베풀고 사랑을 줬던 것과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아이들에게 자신을 투영했고 그러면서 자신들도 회복할 수 있었던 경험인 거죠.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신 분을 만난 것 같아요. 영화감독으로 출발하는 저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여정이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회복되고 치유되는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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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추상미 감독 / 사진제공=보아스필름 커넥트픽쳐스


◆그리고 다시 영화감독 추상미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반도에서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았던 지난해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인도적 대북지원마저 끊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폴란드로 간 북한 고아 이야기가 과연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제작지원금을 받아 쓴 감독 겸 제작자로서의 현실적 고민도 스트레스를 더했다. 작업은 작업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남편(배우 이석준)이 매일 모니터링 고문을 당했죠(웃음)…. 2018년이 되니까 거짓말처럼 상황이 달라졌어요. 남북정상회담을 전국민 중에 가장 기뻐한 사람이 저일지도 몰라요. 그 영화가 영화제에 초청도 되고 개봉도 하네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BIFF) 첫 관객과의 대화(GV)는 추상미 감독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처음으로 일반 관객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풍 콩레이가 덮쳤던 주말, 폭우와 강풍에 GV가 취소되고 말았다. 추상미 감독은 그래도 스태프와 부득부득 극장을 찾았다. 쇠기둥이 날아다니고 간판이 엎어지는 와중이었으나 혹여 오신 관객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면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마침 '7명이 입장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고 "일곱 분이 목숨 걸고 오셨네"하며 극장에 들어섰다. 그 곳엔 목숨을 걸고 온 150여명의 관객이 있었다.

"놀란 것도 잠시 상영이 시작됐고, 일반 시사는 처음인데 이렇게 힘들게 오셔서 아무 것 없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몰래 봤더니 훌쩍훌쩍 소리가 나기에 '몰입해 보시는구나' 하고 안도를 했죠. GV 땐 한 탈북민 출신 관객께서 증언을 하셨어요. 어린이집 선생님인데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그 일을 하고 싶다면서, 폴란드 선생님이 아직도 아이들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우셨어요. 그 바람에 관객들이 다 울어버렸죠. 그 첫 시사에서 많은 힘과 위로를 얻었어요."

준비했던 극영화 '그루터기들'은 이제 시나리오 3고가 나온 상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드라마 보다 극적인 실화를 담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널리 알려진다면 당연히 극영화를 만드는 데 더 부담이 되겠지만 "그래도 좋으니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게 신인감독 추상미의 바람이다.

그녀는 "개인의 상처가 역사의 상처가 만난다"며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통일이 되어야 하는 개인적 이유가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놨다. 관객들에게도 작은 의미가 되길 바란다. "보시는 분들이 일단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로 영화를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의 상처가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으로 아름답게 전환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용기와 희망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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